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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강국으로 가는 학문정책을 위한 기초적 점검
문화강국으로 가는 학문정책을 위한 기초적 점검
  • 유초하 충북대
  • 승인 2006.08.2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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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단협.교수노조 주최 '학문정책과 연구윤리' 발제문

1. 미리 붙이는 뱀발
나는 현시기 한국사회가 당면한 국가적 위기와 발전의 계기라는 비교적 긴 호흡의 관점에서 이 글을 썼다. 따라서 이 글이 학술단체협의회가 기획한 <학문정책과 학문윤리>라는 토론회의 큰 주제에 썩 어울리는지 의문이 든다. 이번 토론회는 최근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의 사퇴라는 사태를 맞아 학인들의 윤리를 중심주제로 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발제문의 내용 가운데는 1990년대 말 이래 여러 매체에 말이나 글로 표현해온 것들을 되풀이한 것들이 많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는 몇몇 동료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서로 공유하게 된 생각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오늘 이 자리 또한 그런 나눔과 소통이 더욱 진전되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2. 학문정책 개발의 기본발상 : 학문은 사회발전의 핵심적 인프라이다.
󰊱 학문과 예술은 문화의 양대 핵심이다.
21세기 문명상황에서 국가사회의 선진성을 재는 척도는 문화이다. 문화는 윤리·도덕을 주춧돌과 대들보로 하며, 학문·예술을 기둥으로 삼는다. 윤리-도덕은 문화의 총체적 결정체이며, 학문과 예술은 문화의 양대 중심축이다. 학문과 예술은 교육과 언론에 대해 원리적으로 우선하는 위치에 놓인다. 학문·예술은 문화생산의 영역이고, 교육과 언론은 문화분배의 영역이다. 언론이 경제·정치·문화의 다양한 정보를 전파하는 통로라면 교육은 학문적 진리·지식과 생활적 지혜를 전승하는 마당이다.

󰊲 학문은 문화 영역 가운데 사회적 확산효과가 뛰어난 대표적 분야이다.
문화의 두 가지 축 가운데서도 학문은 예술에 비해 상대방에 대한 제어력이나 유인력을 더 많이 지닌다. 예술에 비해 학문은 보편성/포괄성/전체성의 담론을 이루기 쉽다. 문화적 요인이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기제로 작용하거나 여타 사회부문에 대한 관련성 내지 확산력을 발휘하는 데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정치진보/기술혁신/경영혁신/문화향유/이윤창출 등 우리가 희구하는 어떤 발전도 학문적 성과에 바탕하지 않고는 이룩할 수 없다. 이 점에서 순수학문-기초과학은 국가적 사회발전의 핵심 인프라이다. 인류가 일구어낸 어떤 성취도 학문의 영역에서 창발된 고급 지혜를 확산하고 응용한 결과이다.

󰊳 인문학은 과학의 기반이며 총합학문의 매개영역이다.
학문은 사회적 생산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며, 학문일반의 발전은 기초학문-순수학문의 발전에 기초한다. 학문생산력은 경제생산력을 양적으로 증대시킬 뿐 아니라 질적으로 비약시키기도 한다. 그 비약은 응용학문에 못지 않게 기초학문에서도 이루어지며, 원천적으로는 거의 모든 경우에 기초학문에서 출발한다. 기초학문 중에서도 인문학은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에 대해 방법적 원리, 경계획정의 기준, 발상법적 바탕 등 중요한 기반을 제공한다. 역으로, 이러한 인문학의 작업에는 사회과학·자연과학의 인식론 및 주요 이론틀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이해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3. 논의의 현실적 전제 둘, 그리고 그 이후
󰊱 대학자율성의 주체는 재단이 아니다.
지금껏 대학의 자율성은 많은 경우 주로 사립대학의 재단 곧 학교법인과 정부 특히 교육부 사이의 문제로 인식되고 논의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관행이다. 대학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빈도와 수준으로 볼 때 정부의 권력보다는 재단의 금력이 훨씬 정도가 심하고 질적으로 악랄하다. 대학의 자주성·자율성은 학교법인 곧 재단을 주체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학생‧직원으로 이루어진 대학공동체를 주체로 하고 권력과 금력을 대상으로 하여 성립한다. 이런 맥락에서 교육관계법은 근본적-발본적으로 개정돼야 한다.

󰊲 교육인적자원부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사학재단의 비리는 일부 교육관료의 비호와 수구적 정치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자행되고 있다. 따라서 사학비리의 척결은 부패 관료집단의 처단, 불의 정치집단의 척결과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부정한 사학재단- 권력기구의 유착관계를 깨뜨리고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데에는 대통령이나 정부의 개혁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양심적 교육주체들과 진보정치세력, 그리고 국민일반의 민주적 여론을 통합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만 교육개혁은 현실적 돌파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정부의 비리척결임무와 그 한계
비상시기에 비상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개혁은 그러나 상시적 형태로 지속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개혁은 부정적 요소를 도려내는 데 머물지 않고 정상적 관행을 정착시킴으로써 비로소 일단 마무리된다. 여기서 환부수술 이후의 진정한 교육의 시대, 민주‧자율‧자주 교육의 시대를 열어재끼는 과업은 대학을 대학인의 손에, 교육을 교육주체들의 손에 돌려주는 데에서 시작된다. 대학의 정상화는 재단과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대학공동체로 하여금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법제적‧관행적 여건을 마련해주는 수준에서 전반적으로 완결된다. 평상적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자주성의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담지자이자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실현할 책임의 담지자는 대학법인 또는 그 실질내용인 재단(이사장)이 아니라 교수, 학생, 직원과 총장으로 구성된 대학사회의 공동주체라는 점을 정부는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한다.

4. 학문발전을 위한 미시적 의제들
󰊱 고급학문의 독자적 생산을 위한 기초를 다져야 한다.
기술로 전화하는 실용과학에서 세계 2위를 다투는 한국은 그러나 기초과학이나 그 바탕이 되는 방법학/도구학/원리학/기반학에서 세계 10위권에 들지 못하는 처지에 있다. 학문일반의 공통적 기초인 논리학과 수학, 과학일반의 기초가 되는 언어나 컴퓨터 사이언스에서도 선도적 이론가들은 매우 적다. 세계 수준에서 아직 뚜렷한 주류적-중심적 이론이나 관점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존재론이나 매체론에서는 일종의 해설에 해당할 학습단계에 있는 듯이 보인다. 인식론이나 이론물리학에서는 세계 수준의 이론과 관점이 확산되어 있으나, 창의적 대안을 내놓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가치론에서는 전통적 감성과 유럽-아메리카적 관점 사이에서 떠돌고 있다.

󰊲 새로운 통합학문-연계전공의 영역을 강화해야 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포괄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학문영역을 확산하고, 수입이론을 넘어 세계수준의 발전에 기여할 만한 학문적 성과를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인지과학은 물론 문화연구나 서사이론 또한 아직은 한국현실의 구체적 문제를 풀어나갈 선도적 학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맑시즘도 노동의 성격 변화, 노동-자본 관계의 미묘한 변화, 각종 첨단과학의 발전에 따른 문명적 전환 등에 걸맞은 세련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 동서양의 고전에 주목해야 한다.
사물일반과 우주자연의 원천과 구조를 밝히는 일, 인간과 사회의 구조와 역동을 해명하는 일, 인간의 존재의의를 실현하고 삶의 가치를 구현하는 길을 모색하는 일 -- 이 모든 학적 과업에서 근대 이전의 고전은 여전히 소중한 빛을 발한다. 근현대가 고중세에 대해 으시대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근대 과학기술이 이룩한 성과들은 전통시대 학문-과학의 유산, 특히 인문정신을 바탕으로 꽃핀 것이다. 도구적 합리성과 기술적 효율성의 의미를 밝히고 의의를 실현하는 학문적 작업에 있어 그 원천의 거울에 비추어보는 존재론적·가치론적 성찰을 방기해서는 안 된다.

󰊴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전통에 주목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현실에 뿌리를 두지 않은 학문이 삶의 현장에 개입하고 조정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인류문화는 시간축의 ‘발전’으로 형성되는 과거극복의 ‘주류’가 지배하는 것 못지 않게, 공간축의 ‘관성’으로 보존되는 과거유지의 ‘전통’들이 다양성을 빚어내는 데에서 꽃피는 법이다. 동북아의 전통에는 초원적 절대자보다 세속윤리에 기우는 가치관, ‘마음’을 지닌 유일한 존재라는 배타적 인간관의 부재, 시공적 현실과 무관한 이론/논리/가치 등 순수세계에 대한 부정 등 유럽-아메리카와는 분위기와 냄새가 다른 관념들이 상존한다. 이성의 독단, 지성의 독재를 넘어 사랑의 감성이 충만하고 자유의 의지가 넘실대는 범생명적 화해와 공생의 21세기적 문화를 꽃피움에 있어 이제, 지난 세기 물리학의 발전에 지적 상상력을 제공한 동북아의 문화유산은 21세기 인류에게 다시 주목하기를 요구한다.

󰊵 미래지향 인문학은 방법의 측면에서 정보기술학을 융합해내야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확산은 일견 전통적 인문학을 무용지물로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러한 현상 자체가, 파편적 지식·정보들의 단순집합 이상의 통합적 주체상의 정립의 필요성을 직접 드러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전통적 인문학의 본령과 새로운 디지털정보학의 세계를 두루 관통하는 고급인력의 양성이 학계는 물론 국가사회의 수준에서 절실한 과제로 대두된다. 관념연산의 고담준론이 행하는 두뇌훈련만으로 미래사회를 기획할 수는 없다. 인문학적 내용이 비중있게 포괄되는 연계-통합 학문영역을 개발하고,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삶의 내용을 담아내고 정보기술학의 성과를 통합하는 새로운 인문학의 (정확히는 통합학문의) 영역을 개척해내고 그러한 고급 지성들을 길러내는 일은 단순히 경제적 부가가치의 확대나 기술적 능력의 고양에 그치지 않는 공동체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 의사소통 능력의 배양, 특히 글쓰기의 훈련이 중요하다.

서사이론이 전제하는 대로 인간은 말하는 존재이다. 넓은 의미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재)구성되고 (재)표현되기 이전의 ‘현실’이나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학문적 함의를 지니지 않으며, 의사소통되기 이전의 ‘생각’이나 ‘느낌’까지도 생활적 의미조차 지니지 않는다. 서사이론의 강한 관점에 서지 않더라도 학문세계에서 글쓰기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남들과 나누고 그를 통해 나를 살찌우기 위해서도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은 인간적 삶의 성립을 위해 필수적이다. 글쓰기 훈련은 초중등학생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쓸 만한’ 연구자가 되기 위해서도 올바른 글쓰기는 필요하다. 위에서 말한 새로운 일종의 통합학문으로서의 정보기술학도 실상, 예컨대 인문학도와 공학도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있는 매체의 세계를 개발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5. 학문발전을 위한 제도적 과제들
학문정책을 집중적-본격적으로 또는 좁은 의미에서 논의한다고 할 때 주된 주제가 되는 것이 제도적 과제일 것이다. 이에 관해 제시할 구체적 내용은 매우 많다. 여기서는 논의=토론의 편의를 위해 맨 처음과 맨 나중의 항목에 관해서만 약간 길게 서술하고, 나머지 항목들에 관해서는 아주 간략히 중심내용을 제시하도록 한다.

󰊰 학문편제-교육편제를 바꾸어야 한다.
학문편제-교육편제가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학문편제가 현실화되어야 하고, 교육편제가 사회화해야 한다. 학문편제는 학문 자체의 성격에 맞게 재편돼야 한다. 학문편제가 현실적으로 대학편제와 맞물려 들어가야 한다고 할 때 대학편제는 학문편제를 기준으로 재편돼야 한다. 현재의 백화점식 학과-전공 체제는 인간의 삶의 현실, 그리고 인간이 이해하는 자연의 질서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고쳐나가야 한다. 예컨대 한국에서 배출되는 불문학 박사가 프랑스보다 많은 만화같은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기초학문이 응용학문에 활력을 주도록 연계지어져야 한다. 기초학문은 그럴 능력을 갖추도록 경쟁 등 사회적 강제를 통해 자체로 강화돼야 한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수요자중심 교육 모델에서 보듯, 학생들의 구미에 맞게 기획되고 제공되는 강좌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초학문은 대다수 대학생의 일반학습과 소수의 전공학습에 복무하도록 해야 한다.
학문과 교육의 개혁을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상상력이 살아나야 한다. 정치적 발상, 사회적 통념의 일대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한 학문정책·교육정책은 책상 위의 그림일 뿐이다.

󰊰 대학의 전공별 인력수급을 위한 국가적 기획이 필요하다.
ㅇ 학문전공자의 규모를 조정하며, 첨단과학의 인력을 적정하게 양성한다.
ㅇ 학문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사회적 생산의 증대 쪽으로 교육의 비중을 높인다.
ㅇ 초중등교육은 아동발달과정에 맞는 정상적 훈련과정이 되어야 하고, 대학교육은 사회적 생산력의 제고로 이어져야 하며, 학교편제과 관련된 사회적 문제요소들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ㅇ 사회적 생산에 참여할 임무가 유보되는 청년기의 이세들이 수년 후에 담당할 사회적 임무를 수행할 준비의 몫보다 크게 (심지어 그 준비와 무관히) 사회적 생산물의 소비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국가적 낭비가 아닐 수 없다.

󰊰 학문생산기지로서의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
ㅇ 한국 학문의 (준)식민지성은 국제 수준에 못지 않게 국내 수준에서도 문제이다. 그 폐해를 줄여야 한다.
ㅇ 대학개혁의 기본방향은 교육을 사적 영역으로 내몰지 않고 최대한 공공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쪽으로 정립한다.

󰊰 국립대와 사립대의 역할을 분담시켜야 한다.
ㅇ 국립대학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되 사회발전의 초석이 되는 순수학문-기초과학의 전당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ㅇ 생존이 가능한 학과-전공 분야는 그 학문적 성과로 이익을 얻는 사적 기관들이 운영을 책임지도록 맡겨야 한다.
* 예컨대 현재의 서울대학 학부는 약간의 조정을 거쳐 인문대/사회대/자연대만으로 재구성되어야 하고, 나머지 학부들은 대학원과정에만 남기거나 사립대학으로 넘겨야 한다.

󰊰 사범대학을 폐지해야 하고, 특수대학원체제를 도입한다.
ㅇ 특수대학원제도를 확대하고, 일반대학원의 학문적 순수성을 강화한다.
ㅇ 각 학문분야를 전공한 학부졸업자를 2-3년 대학원과정을 통해 교육학 과정을 이수하도록 한다.

󰊰 교육권을 대학에까지 확대하고 일반교육을 강화한다.
ㅇ 순수학문-기초과학을 일반교육으로 확대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창출하는 국민적 역량을 높인다.
ㅇ 일반인을 위한 고급 지성강좌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확대한다.

󰊰 교육평준화의 이념을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
ㅇ 평준화의 기본은 교육받을 기회에 있으며, 제도교육에서의 성적은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ㅇ 사회적 대우에서 성별/직종/지역별 차등을 최소화하는 의식/제도/관행을 확립해나가야 한다.
ㅇ 동일직무 종사자 중 성실/근면/성취를 기준으로 한 차등대우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 선진적 연구자를 위한 새로운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ㅇ 연계-통합 학문영역을 개발하고, 지식정보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한다.
ㅇ 정보기술을 용해한 취업 보장 국립 인문대학원을 설립한다.

󰊰 학문적 성과에 대한 보상 시스템을 새로 마련한다.
ㅇ 연구지원은 비용 중심의 지원이 아니라 포상과 보상의 개념에 입각한 고급화 추동을 포함한다.
ㅇ 사전 계획을 기준으로 한 선별심사가 아니라 사후 평가를 통해 우수작을 선정하고 보급한다.

󰊰 국민적 문화향유를 높이는 학문중심 문화기구를 설립한다.
ㅇ 선진적 학문성과의 창출과 고급문화의 대중적 향유를 아울러 추진하는 제도를 개발한다.
ㅇ (가칭) <인문진흥원>은 기업과 정부가 투자하고 학자 중심 민간 독자운영을 기본으로 존립한다.

 
󰊰 학문-사상-표현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ㅇ 학문사상의 자유에 대한 학계 외부로부터의 탄압을 중단해야 한다.
ㅇ 학문은 비판정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외부로부터의 간섭은 사라져야 한다.
ㅇ 구시대적 유제를 대표하는 국가보안법은 페지해야 한다.

󰊰 대학개혁을 밑받침하는 사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대학개혁은 대학만의 개혁이 아니다. 대학교육개혁은 대학개혁으로 채워질 수 없다. 대학의 구조개혁만으로 대학과 사회의 바람직한 균형이 확립될 수는 없다.
사회적 대우의 차별성이 최소화해야 한다. 대학출신 우대라는 근거없는 사회관행을 깨뜨려야 한다. 비非대학출신자에 대한 사회적 대우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학문정책/대학정책이 어떻게 수립되고 실행되더라도 대학의 존재 자체가 전반적 사회갈등의 주요 요소로 남는다. 이런 요인들이 남아있는 한 교수연구, 학생학습, 학교행정을 아무리 개혁하더라도, 학문영역간의 상호소통, 교과과정의 혁신과 다양화, 대학모델의 다양화, 대학의 개방화, 대학운영의 민주화, 심지어 학문일반의 선진화를 달성한다고 하더라도, 전사회적 연관 속에서 대학교육이 정상화될 수는 없다.

교육개혁은 그 자체로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의 전제와 바탕이 되는 사회전반의 구조와 관행이 함께 개혁되어야 한다. 경제적·정치적 사회개혁이 교육개혁보다 선행하거나 적어도 병행되어 추진되어야 한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관점에서 교육의 정상화는 노동의 정상화와 병행하여 또는 그에 기초하여 현실화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첫째 요인은 대학생이 졸업한 이후의 위치는 원칙적으로 그리고 대부분 노동자의 자리라는 사실이다. 명확히 예견되는 미래의 과업에 대한 고려 없이 이론을 위한 이론을 공부하는 것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차세대를 이끌어갈 인간주체를 양성하는 일을 사회적 기획 없이 우발적-산발적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시대에 걸맞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개발되고 있고, 세계적 수준에서 노동과 자본의 전통적 관계위상이 변화될 가능성까지 전망되고 있다. 이런 시대를 맞아 가장 먼저 노동시간의 기준 편제가 달라져야 하며, 노동과 자본 양쪽에서 모두 새로운 시대상에 적응하고 그것을 창의적으로 변용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나아가, 대학교육은 산업발전을 위시한 사회전반의 발전경향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노동의 형태와 방식, 정치적 참여의 제도와 감시의 운동, 문화적 생산과 향유의 유형과 방식에서 오늘날은 문명적 전환으로 불릴 만큼 크게 변화하고 있다.

6. 긴절한 당면과제 넷, 그리고 시급한 정책적 상상력
󰊱 학술진흥재단 지원방식의 개혁
학진의 연구지원사업은 대상을 기준으로 볼 때 크게 세 갈래로 이루어진다. ① 전임교수를 위한 연구보조, ② 미취업 박사를 위한 과제별 전임연구비용 지원, ③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위한 연구장려가 그것이다. 이 중 ②의 사업이 가장 절실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에서 2002년 이후 시행되는 기초학문육성지원은 일단 잘 된 일이다. 그러나 그만한 재원을 계속 투입할 경우 기초학문 발전과 우수 신진연구자들 지원에 훨씬 큰 효과를 산출할 운용방식이 있다. 요컨대, 대학과 연구기관의 전임 교수-연구자로 취업하도록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③의 사업 또한 우수연구자를 확인하는 절차와 방식이 투명하고 정확하다면 최대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①의 사업은 관리방식에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요컨대 최고급 기초학문의 생산을 고무하는 취지에서 사용돼야 한다. 총체적으로, 현재 학술진흥재단을 통해 진행되는 기초학문육성 지원 프로그램은 기본개념을 바꾸어야 하며, 적어도 새로운 개념을 추가도입해야 한다. 영수증으로 증빙되는 비용(cost)이 아니라 높은 품질의 학문적 생산물에 대한 포상(award)이 기본이 되어야 하며, 적어도 연구활동에 대한 보상(reward)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경우에만 학진의 지원이 연구자와 학교에 대한 교육부의 통제와 조종의 수단이 아니라 학문발전의 촉진제가 될 것이며, 규정을 채우기 위해 노심초사하기 싫어 지원(apply)조차 하지 않는 현상이 없어질 것이다.

󰊲 교육부의 폐지 또는 개혁
대한민국 정부 부처 가운데 국민대중으로부터 가장 덜 존경받는 곳이 교육인적자원부일 것이다. 사학의 부정비리와 연관된 일부 연고집단의 문제는 일단 접어두자. 현단계 대학교육이 대중교육이라는 점, 대학생이 원칙적으로 예비노동자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교육부가 인적자원부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는 것도 일단 양해하자. 그러나 적어도, 교육에 원리적으로 우선하고 국가사회 문화의 기둥에 해당하는, 그리고 비판의식과 진보지향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과업인, 학문에 관한 정책만은 현재의 교육부 편제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교육행정의 잣대로 학문을 평가하고 통제하는 관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육부는 해체하거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국가적 핵심 간접자본으로서의 학문을 진흥시키고 학문생산기지로서의 대학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새로운 부처를 설치하여 학문과 예술을 함께 관장하도록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 경우 현재처럼 관광을 문화와 묶음으로써 문화진흥을 관광사업 육성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발상 또한 동시에 혁파돼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해체나 학문·예술 통합 담당 장관직의 신설이 어렵다면 적어도 교육 관련 업무에 관한 한 규제와 통제 중심에서 지원과 협조 중심으로 일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정책의 입안이나 의견수렴 절차는 타 기관(예: 국가학문〔교육〕위원회)에 이양하고 정책의 집행과 지원만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개편한다. 특히 사무국장을 통한 국립대학의 인사행정권과 재정권 장악, 재정교부금 차등지급을 통한 통제 등 대학통제장치를 제한하고 권한을 대폭 교육기관이나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이럴 경우에만 교육인적자원부는 정부부처로서의 존립가치를 지닐 수 있게 될 것이다.

󰊳 연구개발 투자의 체계적 관리 : 정부 출연 연구개발 기관들을 총괄하는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
학문적 성격을 지닌 연구-개발의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들은 원칙적으로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총괄적 지도-감독을 받는 체제 속에 편입돼야 한다. 예컨대 문화관광부 소속 또는 산하의 국립국어연구소/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한국문화정보센터나 교육인적자원부의의 국사편찬위원회/정신문화연구원/국제교육진흥원, 과학기술부의 한국과학기술원/한국과학문화재단/국립중앙과학관, 정보통신부의 한국데이터베이스진흥센터, 안동시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 등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교육-조사는 어떤 식으로든 학계-문화계에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나 국무총리 산하 연구회의 소관 연구기관들도 기본임무의 성격상 학문적 연구를 포함하는 경우는 학문편제에 맞게 재편돼야 하며, 그 재편에는 현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속하지 않는 연구기관들도 포함시켜야 한다. 그럼으로써만 국가적 미래설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성과를 산출할 수 있을 것이다.

󰊴 문화적 식민지성을 떨치고 학문적 자주성·주체성을 살려야 한다.
현재의 한국 학문은 국제적 경쟁력을 운위하기 이전에 전반적으로 식민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 대부분의 학문영역에서 외국의 성과를 베껴서 국내에 소비시키는 데에 급급한 지경에 있고, 특히 첨단이론과 방법론에서 그러하다. 심지어 한국사회를 변혁하기 위한 원리와 방법, 그리고 한국사회의 현실을 재기 위한 분석에서까지 외국의 이론을 완제품 형태로 들여와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10여년 전까지의 우리 실정이었다.

선행업적, 선진업적에 대한 신뢰와 의존은 학문생산자에서부터 껍데기 지식의 축적에 머물러, 학문의 낙후성과 수입비용의 증대가 악순환을 이루어왔다. 해외유학은 단면적으로는 선진 지식-기술의 도입을 산출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론과 기술에 녹아들어 있는 특정 선진국의 자국중심주의를 당사자 뿐 아니라 후세대의 의식과 관행에까지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에따라 해외유학의 비용투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문영역에서만이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지식/기술/인력/디자인/브랜드의 수입에 들어가는 비용은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계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에는 유학출신자들에 대한 실질적 특혜를 당연시하는 왜곡된 풍조가 있다. 국내파와 해외파에 대한 일괄적인 평가는 물론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학문적 생산력을 재는 데에는 현재의 단면적 능력과 함께 앞으로 발휘될 잠재적 능력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만은 누구든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기초학문을 중심으로 학문의 자주독립성을 도모해야 한다. 사회과학을 필두로, 가공조립에서의 독창성 발현, 주요 부품의 자체생산을 거쳐 플랜테이션의 전반적 국산화를 향한 전망이 열리는 낌새가 있다. 이러한 기운이 인문학과 자연과학으로 번져나가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순수학문-기초과학도 이제 수입에 의존하는 식민지적 재생산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오랫동안 이 땅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새로 출간된 서적을 재빨리 베껴서 앵무새놀음을 하거나 새로 개발된 기기를 먼저 수입해서 실험결과를 산출하는 자가 가장 우수한 학자인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 왔다. 교육도 경제도 그 자체의 영역에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방식을 취할 때 영원히 2등국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기술의 원천인 응용과학과, 그 응용과학의 기초인 순수학문을 탄탄한 기반 위에 올려놓지 않고는 언제나 기술수입국의 처지에 놓일 수 밖에 없다. 제도상의 교육과정과 기술적 교육방법을 따라잡는 방식으로는 언제나 흉내교육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 고급문화를 생산하는 기초학문 종사자들에 대해 사회적 보상을 주고 우수한 차세대 학자들을 양성함으로써 교육의 원천소스인 학문을 선진화할 때에만 교육선진국의 지위는 확보된다.

그동안 정치와 경제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두 축으로 여겨져 왔다. 정치-경제가 주요 축이라면 문화 특히 학문은 부수적이고 보조적인 축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이런 발상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국가사회 선진화의 기반이라는 점에서, 사상누각처럼 부유하고 있는 국가사회가 튼튼한 뿌리를 내리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학문은 사회구성과 국가발전의 주요한 축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문이 국가사회의 주요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향후 대한민국이 굳건하게 뿌리를 내림으로써 선진사회로 진입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 학문정책은 교육정책에 우선한다.
교육은 학문적 생산물을 전달하는 통로이다. 따라서 학문은 교육에 원리적으로 우선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육정책은 있었으나 학문정책은 없었다. 학문에 대해서는 주체적으로 생산하는 것으로 상정하지 않고 이른바 선진국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해 쓰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의 내용인 학문을 수입해서 쓰는 한 학문도 교육도 영원히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학문에서 식민지적 처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국가사회의 선진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교육에 앞서, 적어도 그와 병행하여, 학문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민족경제를 성장발전시키고 국가의 국제정치적 위상을 향상시키며 국민일반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도 학문의 고급화는 가장 긴절한 바탕요인이 된다. 요컨대 학문은 국가발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사회간접자본이다.

교육행정은 교육과제의 수행을 위한 보조-지원의 지위에 있고, 교수행위는 원천적으로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전수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적어도 대학교육에서 교육정책은 학문정책을 기준으로 작성되어야 하고, 행정정책은 교육정책을 기준으로 입안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책의 수립과 시행의 실제는 도착되어 있다. 현정부의 교육관련 정책은 정책과제의 관계위상과 우선순위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교육행정부서가 강의를 비롯한 교육활동을 관리-통제하는 지위에 있고, 학문적 연구는 강의를 준비하는 자료를 마련하는 것 이상의 의의를 지니지 못한다. 행정정책이 교육정책에 우선하며, 교육정책이 학문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도와 왜곡이 온존하는 한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학문정책이 입안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학문정책은 국가사회의 거시적 발전계획에 상응하는 방식으로 입안되어야 하는데, 가시적 성과를 추구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진정한 의미의 장기적 프로젝트의 발상이 원천적으로 빠져있다.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정부지원의 1%에 불과하고, 2001년까지 국가적 연구개발비의 0.3%에 불과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웅변한다. 그나마 그 지원은 학문적 생산을 원활하게 고무하기보다는 학인들을 정부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의도를 동반하고 있다.

눈앞에 닥친 경제/정치/북한/외교 문제가 아무리 급박하더라도, 아니 급박한 만큼 더욱, 각 분야의 정책을 장기적 비전의 바탕 위에서 짜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학문정책은 모든 정책에 우선하는 원칙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실현해나가는 최초의 제도적 장치가 (가칭) 학문예술부를 신설하여 학문 담당 업무를 교육부로부터 이관시키는 일이며, 적어도 대통령 산하 국가학문위원회와 같은 정책기구를 설치하는 일이다.

7. 경제강국-형식민주사회에서 실질민주사회-문화강국으로
21세기를 맞은 대한민국은 정치발전의 귀중한 기회를 창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누적된 압축적 경제성장의 부작용과 사회문화적 미성숙으로 인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현재의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데에는 국가정책에 있어 의사결정의 민주적이라는 주관적-형식적 원리와 국민대중의 행복이라는 객관적-내용적 원칙을 동시에 확립해야 한다. 문명의 전환기에 들어선 시점에서 우리는 양적 성장과 외형적 민주화에 걸맞은 내면적 문화역량을 채우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자존심을 동반한 국가소속감을 갖도록 하고 7천만 민족성원에게 미래행복의 비전을 줄 수 있는 합리적이고도 일관된 국가기획을 정책으로 전화해내는 데에서 학문영역의 선진적 성과는 필수적이다.

개인-계층간 갈등을 해소하고 상생을 추구하며, 국가-민족 성원 모두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긍지를 심어주는 통합적 정책은 행정-정책학/경영학/교육학 등 일부 학문분야 인사들에게 편중되어 맡겨질 때는 수립하기 어렵다. 세련된 방법적 원리와 참신한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인간애가 두루 용해된 미래형 국가발전 기획은 순수학문-기초과학으로서의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의 고급 연구역량이 함께 참여할 때 수립될 수 있으며, 특히 인문학이 매개-통합의 중심역을 담당해야 한다. 이는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서 정약용의 <경세유표>에 이르는 전통시대 국가경영철학의 공통 기반정신인 문민우위의 원칙, 그리고 세종의 <집현전>이나 정조의 <규장각> 설립-운영에 깔린 학문 중심 정치문화엘리트 양성-충원의 정신과도 상통한다.

지금껏 본격적 학문정책의 수립을 주창해온 목소리들은 두 가지 기본발상에 기초해 있다.
첫째, 학문이 국가발전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전제 아래 학문의 자주적 발전을 위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등교육 보급률은 세계 상위권에 속하나, 그 내용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교육의 내용인 학문을 수입해서 쓰는 한 학문도 교육도 영원히 후진성을 면할 수 없다. 학문에서 식민지적 처지를 벗어나지 않는 한 국가사회의 선진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교육에 앞서 학문의 선진화를 이루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둘째, 국가적 차원에서 학문발전전략과 사회발전전략을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은 경제논리나 정치논리에서가 아니라 문화논리에서 유효하게 도출될 수 있다. 지식기반사회-문화산업시대에 조응하는 통합적 국가발전기획이 지속적으로 산출돼야 한다. 인간의 본성적 구조와 현실적 역동, 그리고 인간적 삶의 가치를 원리적으로 다루는 인문학적 지혜와 상상력을 장기적 국가기획을 정책으로 성안하는 일에 동원하고 이용해야 한다.

이들 두 갈래 발전전략의 구체화를 향한 첫걸음으로 정부와 진보적 실천가들에게 우리는 우선, 서로의 연관 속에서 학문선진화와 국가발전을 도모할 두 국가기구의 설립을 제안한다. 먼저 학문의 총체적 균형발전을 위해 현재 불균형의 늪에 빠져있는 순수기초학문으로서의 인문사회과학의 발전을 추동할 (가칭) <한국인문사회과학연구원>을 설립해야 한다. 또한, 그 연구원에서 생산된 선진적이고 창의적인 학문적 이론을 평가하고 그것을 장기적 국가발전기획과 연계하여 다시 연구원에 구체적 과제를 부여하는 상급기관으로서의 대통령 산하 (가칭) <국가학문위원회>를 창설해야 한다.

[이 글은 학단협.교수노조 주최 '학문정책과 연구윤리'의 발제문 전문입니다(각주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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