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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교직을 매력적인 일자리로
대학의 교직을 매력적인 일자리로
  • 문애리
  • 승인 2023.04.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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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문애리 논설위원 /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문애리 논설위원

일견 대학의 교수직은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 적합해 보인다. 강의 시간 외에는 출퇴근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덜한 편이고,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방학이 있어 유연한 근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까?

공부하며 일하는 여성 연구자의 삶에 임신·출산·육아가 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이 눈길을 끈다. 버클리대 법대 교수 메리 앤 메이슨의 저서 『Do babies matter』(아이가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책에서 그는 대학원생부터 교수까지 여성 연구자가 처한 현실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10년간의 대규모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은 ‘불행히도, 아이 낳기 좋은 시기는 없다’였다. 대학원 시기부터 박사후연구원, 교수 임용 준비, 정교수 승진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매 단계마다 아이가 있는 여성 연구자는 지속적으로 경력을 이탈하게 된다. 자녀가 있는 여성 연구자가 정년 트랙 교수직을 구할 가능성은 남성은 물론 미혼 여성보다도 낮다. 

아이를 갖게 되면 이전까지의 연구 강도와 속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런 상황에서 육아기 여성 연구자는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연구자와 전업주부 배우자를 둔 아빠 연구자와 경쟁해야 한다. 여성 연구자는 교수 임용을 위해 지역을 옮길 상황이 되면 배우자 직장 이동이 어려워 임용을 포기하거나, 자녀의 육아를 위해 시간 활용이 유연한 시간강사나 비정규직 교원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국 연구 몰입이 가능한 연구자에 비하여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할 기회가 줄어들고, 연구비나 명성에서 뒤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경력 초기에 연구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면, 다른 학자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져서, 학계의 빈익빈 부익부, 이른바 ‘마태 효과(Matthew Effect)’가 심화된다. 

한창 일해야 할 시기가 임신·출산·육아기와 겹치는 것은 다른 직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대학 교수가 다른 전문 직종인 의사나 변호사에 비해 자녀를 덜 낳는다는 책 속의 통계를 보면, 육아가 학계 커리어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학계의 커리어 특성은 일과 삶 균형 욕구가 큰 요즘 젊은 연구자들에게 불편한 지점(pain point)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남성 연구자들은 일·가정 균형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육아에 동참하는 것이 자칫 학자로서의 열정이 부족한 것으로 비쳐질까 염려하기도 한다. 이렇게 여성은 연구와 육아 둘 다 잘하지 못한다며 자책하고, 남성은 자신의 커리어와 주변 편견 때문에 육아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못내 안타깝다.  

대학이 가족을 위한 유연한 공간이 되려면 많은 것이 개선되어야 한다. 긴급 보육 제도, 대학 내 어린이집 확대, 유급 육아 휴직, 정년 심사 유예, 시간제 정년트랙 교수 제도 뿐 아니라 육아기 연구자가 커리어를 희생하지 않고 연구라는 본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창의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대학과 사회가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여 양성한 우수한 인재가 임신·출산·육아를 이유로 대학을 떠나고,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다면, 또 반대로 커리어를 위하여 아이 갖기를 포기하는 것은 대학 경쟁력 저하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대학의 교직을 매력적인 일자리로 여기는 젊은 연구자들이 늘어나서 캠퍼스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문애리 논설위원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이사장·덕성여대 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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