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3-06-06 18:00 (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규범적 논증대화에 중요한 기여할 것”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규범적 논증대화에 중요한 기여할 것”
  •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3.04.20 08: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_『권리란 무엇인가』 번역한 이민열 방송대 교수(법학과)

저자가 말하는 권리란, 권리를 보유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되고 어떤 것을 변경하고 창설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되고 해야 하며 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변경하고 창설할 수 있는지에 체계적인 함의를 가지며 
특정한 방식과 근거로 정당화되지 않는 한 제한할 수 없어, 
무엇이 당위인가를 사고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도덕적 지위입니다.

저명한 도덕철학자인 주디스 자비스 톰슨의  『권리란 무엇인가』(이민열 옮김, 방송대출판문화원(에피스테메), 664쪽)가 마침내 국내에 번역·소개됐다. 옮긴이는 헌법학자인 이민열 방송대 교수다.

2019년 9월부터 방송대 법학과에서 헌법을 강의하고 있는 이민열 교수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향후 10년 내에 자유·평등·권리와 같은 정치철학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정립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2019년 12월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의 법(Freedom’s Law)』(1996), 2023년 2월 주디스 자비스 톰슨의 『권리란 무엇인가(The Realm of Rights)』(1990) 등을 번역·소개한 것도 그런 구상을 실천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2008)가 국내에 소개되면서 ‘정의’ 열풍이 불 때, 이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2012)를 통해 샌델의 공동체적 자아를 상정한 목적론적 철학을 비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민교육센터(civiledu.org) 대표를 맡아 공론장에서의 시민 역할을 지원하고 있으며, 2018년에는 『철인왕은 없다: 심의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발표해 민주주의에 관한 심도 있는 사유를 전개하기도 했다.

40년 동안 MIT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퇴임한 주디스 자비스 톰슨은 2020년 11월 20일 9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도덕철학과 형이상학을 탐구했던 그녀는 미국철학회가 주는 권위 있는 퀸상(Quinn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낙태에 대한 철학적 논쟁(「A Defence of Abortion」, 1971)과 트롤리 문제에 대한 성찰(「The Trolley Problem」, 1985)이다. 『권리란 무엇인가』 제7장에서도 이 ‘트롤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교수는 ‘옮긴이 해제’에서 『권리란 무엇인가』의 의미를 이렇게 자리매김했다. “이 책은 개별 법학, 법철학, 정치철학, 도덕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 권리를 부풀려 주장하지 않고 부풀려진 권리 주장은 온당하게 기각하며 반면에 정당한 권리 주장에는 그에 마땅한 응답을 해야 하는 입헌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다.” “이 책은 규범에 관한 분석적 탐구의 전통에 속하는 중요한 학문적 성취 중에서도 특별히 빛나는 몇 안 되는 고전에 속한다고 말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번역자인 이민열 교수는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의 책 『자유의 법』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월 한국법학교수회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자 원고지 2천600매를 넘는 분량(663쪽)에, 스스로도 번역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 교수를 만나 책의 의미와 번역 과정, 이 책이 우리 사회에 주는 시사점 등을 들었다. 

이민열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헌법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론장에서 시민교육센터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는데, 『탈학교의 상상력』, 『학교를 넘어서』, 『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 통념을 깨는 윤리학』,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 『철인왕은 없다: 심의민주주의로 가는 길』 등을 썼다. 『성장을 멈춰라』, 『포스트민주주의: 민주주의 시대의 종말』 등의 번역서를 냈다. 

△ 톰슨의 『권리란 무엇인가』를 번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디선가 밝히셨듯이 자유·평등 권리와 같은 정치철학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정립해보고 싶다는 구상의 실천으로 볼 수 있을까요.
“그러한 구상의 실천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구상이 어떤 의미인지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그 구상은 단순히 개념의 사전적 정의나 올바른 용법을 확립해보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며, 그 개념을 매개로 하여 이뤄지는 논증이 적합하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틀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권리란 무엇인가』를 번역한 이유는 이 책이 권리 개념을 매개로 하여 이뤄지곤 하는 사회의 규범적 논증대화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나의 권리이다’, ‘저것은 나의 권리를 침해한다’, ‘그것은 권리를 제한하기는 하지만 더 큰 이익을 위해서 정당화된다’, ‘그것은 무가치하므로 또는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므로 권리라고 할 수 없다’와 같은 주장은 규범적 논쟁에서 으레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여부가 논쟁의 결론에 영향을 많이 미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의 타당성이 중대하게 다뤄지는 정도에 비해, 그런 주장의 엄밀함에 대한 요구는 눈에 띌 정도로 희박합니다. 즉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도 그런 주장을 듣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권리 개념을 선택적·단편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잘못 이해된 권리 개념을 매개로 하여 전개되는 논증은 우리 사회의 규범적 문제를 온당하게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권리를 사소화하거나 권리에 관해 냉소적인 태도를 낳게 만듭니다. 실상은 관련된 권리에 관한 논증은 전혀 거치지 않고서, 이익이나 가치에 관한 계산이나 비중가늠을 통해 나온 결론을 수사적으로 강조할 때에만 권리를 언급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권리가 도덕적 추론에서 중요하고 고유한 의의를 갖는다면,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명도 없이, 무엇이 권리이고 무엇이 권리가 아닌가에 대한 판별도 없이, 그리고 권리 제한이 정당화되는 특별한 요건이 어떠한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권리에 관한 논의를 하고 실천을 한다는 것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달리고자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번역했습니다.” 

△ 저자 톰슨의 낙태에 대한 에세이나 트롤리 문제를 다룬 글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습니다. 톰슨은 어떤 철학자인가요? 그에게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사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주디스 자비스 톰슨은 분석철학의 전통 안에서 형이상학과 도덕철학을 탐구했던 위대한 학자입니다. 톰슨은 회계사였던 아버지와 영어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1929년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톰슨은 철학을 전공하여 1950년 바너드 칼리지에서 학사학위를, 캠브리지에서 석사학위를, 195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1964년부터 MIT 철학 교수로 정년까지 일했고, 그 뒤에도 명예교수로서 연구와 교육을 했습니다. 1992~1993년 미국철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좋음과 조언(Goodness and Advice)’라는 제목으로 프린스턴대에서 태너 강연(뛰어난 학자들만 이 강연의 강연자가 됩니다)을 한 강연자이기도 합니다. 2012년 미국철학회에서 퀸상을 받았고, 2016년에 영국왕립학회의 석학회원으로 추대됐습니다. 

톰슨은 2020년 11월에 9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행위와 사건(Acts and Other Events)』, 『좋음과 조언(Goodness and Advice)』 그리고 『권리란 무엇인가(The Realm of Rights)』와 같은 걸출한 책을 썼고, 「죽이기와 죽게 내버려두고, 그리고 트롤리 문제(Killing, Letting Die, and the Trolley Problem)」 같은 많은 후속 논의를 낳았던 다수의 선도적인 논문을 썼습니다.

톰슨이 확립한 논지들 자체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또한 그녀는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제들에 답을 내는 과정을 어떻게 하면 우아하면서도 단단하게 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모범이 되는 학자입니다.”

△ 책의 제1부는 ‘무엇이 권리인가’를, 제2부는 ‘어떤 것이 권리인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권리’가 무엇인지 정리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권리란, 권리를 보유한 사람은 무엇을 해도 되고 어떤 것을 변경하고 창설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되고 해야 하며 해서는 안 되는지 그리고 어떤 것을 변경하고 창설할 수 있는지에 체계적인 함의를 가지며 특정한 방식과 근거로 정당화되지 않는 한 제한할 수 없어, 무엇이 당위인가를 사고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도덕적 지위입니다. 
권리는 더 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되지 않는 네 가지 형식을 가집니다. 특권이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그 행위자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불평할 수 없는 지위입니다. 청구권이란 어떤 사태가 성립하도록 다른 행위자의 행위가 제약되게 하는 지위입니다. 형성권은 자신의 처분으로 권리를 변경하거나 창설할 수 있는 지위입니다. 면제권은 타인의 처분에 의해 자신의 권리가 변경되거나 박탈되지 아니하는 지위입니다. 그리고 이 권리들의 복합체인, 자유권이나 재산권 같은 복합권리가 있습니다. 권리는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그것을 제한함으로써 생기는 큰 이익이나 더 많은 가치에 의해 제한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며, 개인주의적 분배 제약과 같은 요건을 갖춰야만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는 지위입니다. 
톰슨의 해명은 톰슨의 해명은 권리가 무엇인가를 요구할 수 있는 힘이라거나, 이익을 누리거나 보호하거나 관철하는 힘이라거나, 의사(意思)에 주어진 힘이나 의사의 지배라는 해명과는 다릅니다.” 

『권리란 무엇인가』 번역한 이민열 방송대 교수

△ 2012년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론’을 비판하는 책을 내셨습니다. 당시 샌델 교수가 국내에 소개될 때도 그 유명한 ‘트롤리 문제’가 대중에게 자주 회자됐는데요. 저자인 톰슨과 샌델의 ‘트롤리 문제’를 보는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트롤리 문제란 통제를 잃은 트롤리에 치일 본선 위의 5명을 구하기 위해 5명과 트롤리 사이에 있던 덩치가 큰 1명의 사람을 트롤리 선로 위로 밀어 트롤리에 치이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5명에게 향하는 트롤리의 방향을 돌려 지선에 있는 1명이 치이게 하는 것은 허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 대해 도덕철학이 어떻게 해명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샌델은 목적론자의 일종인 완전주의 이론을 채택합니다. 샌델은 권리와 의무의 근저에 있는 것이 탁월성과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행위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는, 어떻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탁월한 삶에 기여할 것인가 아니면 미덕을 발휘하는 것인가를 물음으로써 해결됩니다. 

권리는 그것을 보장함으로써 탁월성과 미덕을 증진할 수 있는 것, 의무란 그것을 의무화함으로써 탁월성과 미덕을 증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완전주의자가 트롤리 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답을 내어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1명을 선로 위로 미는 것은 악덕이지만, 1명이 있는 지선으로 트롤리를 보내는 것은 적어도 악덕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인데, 그 근거가 그다지 확고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적어도 어떤 상황에서 전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면, 그런 희생을 강제하는 것이 목적론에서는 때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개인 간의 경계와 개별적인 도덕적 지위는 흐려집니다. 샌델의 논증에서는 권리의 고유한 내용과 구조가 어떤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톰슨은 의무론자입니다. 톰슨은 권리와 의무의 근저에 있는 것이 도덕법에 우리의 행위를 일치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각 개인의 도덕적 지위라고 생각합니다. 톰슨이 제시한 해법은 나중에 발생할 트롤리 상황에서 누가 지선 위의 1명인지 모르는 경우로 이해할 수 있는 여건에만 한정되는 해법입니다. 누가 희생될 사람인지 특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만 5명을 살리기 위해 트롤리의 방향을 돌리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 1명에 속할지 5명에 속할지 모르는 경우로 볼 수 있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트롤리를 돌리기로 하는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모두에게 우위점이 되므로, 모두의 도덕적 지위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톰슨의 해법이 의무론에서 제시된 유일한 해법은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톰슨의 해법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방해배제청구권을 갖는 개인의 도덕적 지위를 흐리거나 없는 것으로 치부하지 않으면서 진행하는 논의의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 원고지 2천600매가 넘는 분량입니다. 사실 업적평가에서는 짠 평가를 받는 게 번역 작업인데요.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또 보람이 있었다면 어떤 점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번역은 언제나 어렵습니다만, 분량이 많으면 틀린 부분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교열·교정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원문과 대조해 보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역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또 옮기기 까다로운 개념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전달할 수 있는 우리말을 고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보람이 있었던 것은 훌륭한 책을 우리말로 소개했다는 결과물 그 자체일 것입니다.” 

△원고지 2천600매가 넘는 분량입니다. 사실 업적평가에서는 짠 평가를 받는 게 번역서 작업인데요.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 또 보람이 있었다면 어떤 점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번역은 언제나 어렵습니다만, 분량이 많으면 틀린 부분이 있기 마련이므로 그런 부분을 최소화하려는 교열‧교정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번 원문 대조해 보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 오역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송구한 마음이 듭니다. 또 옮기기 까다로운 개념들을 최대한 비슷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한국말을 고심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보람이 있었던 것은 훌륭한 책을 우리말로 소개했다는 결과물 그 자체일 것입니다.” 

△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로널드 드워킨의 책 『자유의 법』을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3월 한국법학교수회 학술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방대한 저술임에도 번역을 훌륭하게 했다는 평가인데요. 혹시 선생님만의 ‘번역 노하우’가 있는지요? 어떤 번역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번역 노하우라고 부를 만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몇 가지 취하고 있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평소에 출간하지 않을 책이나 논문이라도 공부와 연습삼아 꾸준히 번역합니다. 한 줄도 번역하지 않는 날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출간할 책과 관련 있는 논문이나 책들을 평소에 연습하듯이 번역하다 보면 용어나 문장에 더 익숙해져서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 번역은 자투리 시간에만 합니다. 잠깐 시간이 나면 곧바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습니다. 적어도 학술서에 관해서는 문장의 단위요소가 가능한 한 일대일 대응관계를 보존하는 직역을 원칙으로 하되, 정확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연스럽게 윤문을 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문적 개념은 의미를 오해하지 않는 개념을 골라 번역해야 하고, 자연스러움을 핑계로 중간 중간 그 번역어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번역문의 명제를 보고 독자가 원문의 명제를 추측할 수 있어야 좋은 학술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가 당연히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의역을 솜씨 좋게 한다면서 책 전체에 걸쳐 학술서의 문장들을 역자의 이해를 짙게 투영해 바꿔놓는 것은 결코 좋은 번역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시민교육센터 대표로 공론장에서 활동도 하고 계십니다. 방문자 수도 140만이 넘는데, 이렇게 ‘시민교육’에 직접 나서신 것은 무엇 때문이가요?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시민의 활동은 분석적·경험적·규범적 문제를 타당하게 해결할 능력, 즉 체계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접근 방식을 모르고서는 무가치하거나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되기 쉽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자신이 지지하는 당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눈치의 더듬이를 세워 재빨리 파악한 다음 그 결론을 찬성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몇 가지를 들면서 계속 목소리를 높이는 식의 논쟁 태도는 민주주의를 퇴락시킵니다.

문제에 직면하면 ‘그런 문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타당한 답을 얻을 수 있는가?’, ‘그 접근 방식과 해결 방식 자체는 어떻게 정당화되는가’라는 메타적인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첨예한 쟁점에서 한 층위 위로 올라가는 이론적 상승은, 혼자만의 사고로는 이룩할 수 없습니다. 시민교육센터에서는 그런 이론적 상승을 거쳐 체계적 문제 해결 방식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제공하고자 운영하고 있습니다.” 

△ 번역이나 저술과 관련, 향후 계획도 궁금합니다. 
“『논증의 전략: 건축학적 글쓰기의 빌딩블록』이라는 책의 초고를 최근에 탈고했습니다. 어떻게 문제를 타당하게 해결하는 글쓰기에 접근할 것인지 절차별로 알려주는 글입니다. 그 다음 책으로는 『자유에 관한 일반이론』을 쓰고 있습니다. 자유의 특수한 일면만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자유에 관한 논의를 지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 개념 자체가 여러 가지인 듯 착각되고, 각자는 자신이 원하는 결론에 부합하는 뜻의 자유 개념을 수사적으로 사용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하는 태도가 만연해 있습니다. 이 책은 자유를 사실적 자유와 규범적 자유를 나누고, 규범적 자유의 내용과 구조, 그리고 그것을 제한하기 위한 정당화 요건이 무엇인지, 사실적 자유는 거기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체계적으로 규명하는 책입니다. 

번역서는 초벌번역을 하고 출판사를 찾지 못해 출간하지 못해 원고만 갖고 있는 학술서가 10여권 정도 되는데, 출판사를 찾는 대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요즘 학술번역서 도서시장 규모가 많이 줄어들어 쉽지 않습니다. 『권리란 무엇인가』와 같은 좋은 학술서를 독자들이 많이 사서 보아야 이후에도 계속 학술서가 출판될 수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한국에서 학술번역은 제대로 발달하지도 못한 채 거의 고사될 수도 있습니다.”

최익현 편집기획위원 editor@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