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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특성 연구로 맞춤의료·정밀의료 앞당긴다   
성별 특성 연구로 맞춤의료·정밀의료 앞당긴다   
  • 김혜진
  • 승인 2023.04.05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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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교수신문 공동기획_ 젠더혁신, 연구와 삶을 바꾸다② 임상의학과 젠더혁신

최근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 편향을 줄이는 젠더혁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문화적인 젠더(gender)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생명 분야는 물론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데이터를 활용하는 과학기술·산업현장·생태계 등에서도 젠더혁신이 주목받고 있다. 교수신문은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GISTeR, 소장 이혜숙)와 공동으로 총 5회에 걸쳐 과학기술과 산업현장 등에서 젠더혁신의 중요성과 동향과 앞으로의 과제를 조명해보는 연재를 마련했다.

① 기초 뇌과학과 젠더혁신
② 임상의학과 젠더혁신
③ 인공지능(AI)와 젠더혁신
④ 산업현장과 젠더혁신
⑤ 지속가능발전과 젠더혁신

최근에는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의학적 차이를 연구하는 
성차의학(性差醫學)이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성차의학은 성과 젠더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성별에 따른 질환 발현의 차이를 연구하는 분야다. 
맞춤의료·정밀의료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젠더혁신은 과학기술, 특히 임상의학 분야에서 성과 젠더 차이를 인식하고 비교하는 연구 방법을 통해 새롭고 탁월한 연구 성과 도출에 기여하겠다는 시도다. 종전까지 임상의학 역시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연구자와 연구 관점, 피실험체 등 모든 연구 과정이 성인 남성 위주로 진행되거나 성별과 젠더 차이를 큰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개발 과정에서 성별 편향을 줄여야 한다는 젠더혁신(gendered innovations) 개념이 임상의학 분야에서도 빠르게 확산하면서 기존 연구에서 간과했던 중요한 부분을 포착하거나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속속 햇빛을 보고 있다. 

골다공증은 여성 질병, 심혈관질환은 남성 질병?

성별 특성을 반영한 임상 분야의 성차 연구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는 것이 골다공증과 심혈관질환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골반 골절을 앓은 환자의 3분의 1가량은 남성이다. 하지만 골다공증이 폐경기 여성의 질병으로 간주되면서 남성의 골다공증 진단과 치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심혈관질환은 주로 남성 질병으로 간주되어 여성 심혈관질환의 진단과 치료를 지연시켰다. 특히 허혈심장질환(IHD)은 미국과 유럽 여성의 가장 큰 사망 원인으로 꼽히지만, 임상 표준이 남성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여성은 진단 지연이나 오진으로 치료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이후 성별 차이를 임상의학에 적용하면서 남성 골다공증과 여성 심혈관질환의 진단율을 높이고 치료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남성과 여성은 평균 수명이나 사망률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대수명의 경우 여성 86.5세, 남성 80.5세(2020년 기준)로 큰 격차를 보였고 사망 원인도 남성은 폐렴과 자살, 간 질환 등이, 여성은 알츠하이머와 고혈압성 질환, 코로나19 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남녀별 수명의 차이는 성호르몬이나 성염색체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성별에 따른 기관의 구조나 기능 차이에서 비롯된다. 특히 남녀 모두 사망 원인 1위가 암이지만, 암 발생률, 유병률, 예후 등은 성별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만큼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성별 특성을 반영한 분석과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암 발병률·발병 부위도 달라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의 의학적 차이를 연구하는 성차의학(性差醫學)이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성차의학은 호르몬, 유전자 등에 의한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성별에 따른 질환 발현의 차이를 연구하는 분야다. 미래 의학 방향이자 핵심인 맞춤의료·정밀의료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최용훈 교수 연구팀은 2022년 3월 여성의 위암이 남성보다 더 위험하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연구팀이 2013~2017년까지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 2천983명의 의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여성 위암 환자 중 미만형(彌滿形, 점막 밑에서 넓게 퍼진 형태) 비율이 50.5%로 남성(25.9%)의 약 두 배에 달했다.

김나영 교수는 “이 연구로 여성 위암 환자는 발견이 어려운 미만형 위암 비율이 남성보다 높고, 3기 이상에서 남성보다 예후가 나쁘며, 합병증에 의한 사망 위험이 높다는 점이 밝혀졌다”라며 “이러한 성차의학에 대한 인식과 연구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의사의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성별 차이에 따른 알레르기 질환과 약물 알레르기·부작용 등도 관심 대상이다. 이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충북대병원 강민규 교수(알레르기내과)에 따르면 약물 알레르기 역시 성별에 따라 먹는 약이 다르고 부작용과 증상에 따른 대처 방안도 다르다.

강 교수는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며 성과 젠더를 고려한 성차의학의 중요성을 갈수록 체감하고 있다”며 “보통 남녀에 해당하는 요인을 통계적으로 조사할 때 그동안 남성과 여성의 젠더 요인을 주로 정보 보정에 사용했지만, 앞으로는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가설을 세우는 과정부터 성차를 반영하고 연구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학적 성별 차이 교육·연구 체계화 필요

이러한 연구 성과와 더불어 최근 국내에서는 성차의학에 관한 학문적·학술적 논의가 활발하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는 선택과목으로 성차의학을, 고려대 의과대학도 ‘의학오디세이-성차의학’ 과목을 개설했다. 또한, 2022년 12월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원장 왕규창)과 GISTeR(소장 이혜숙)가 공동으로 기획하고 국내 35명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임상 분야에서 나타난 남녀 간 차이를 체계화한 교과서 『임상영역에서의 성차의학』(도서출판 대한의학)을 출간했다. 

이처럼 정밀한 맞춤형 치료를 위해서는 남녀 간 발병률, 임상적인 차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의학적 성별 차이에 대한 교육과 연구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공감대 확산과 더불어 임상의학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는 연구제안서 제출 시 성별 특성의 필요성과 반영 여부를 조사하는 체크리스트 작성을 요구하는 등 임상의학에서 성차의학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가는 추세다. 

여기에 더해 오는 4월 5일 분당서울대병원 성차의학연구소(소장 김나영)가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성차의학에 관한 학문적 연구와 교육 확산은 물론, 연구지원 정책에서의 성별 특성 반영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더 활발한 성차의학 연구와 지원이 필요하다.

김나영 교수는 “그동안 임상의학에서의 성차에 관해 깊이 있게 살펴볼 기회가 많지 않았고, 어떻게 치료에 접목해야 하는지 전문가들도 잘 몰랐던 게 사실”이라며 “임상의학 현장에서 성차의학 연구와 교육을 전면 도입하고, 이러한 성차의학 연구 결실을 통해 진료 과정에서 의료의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혜진 한국과학기술젠더혁신센터 선임연구원·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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