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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3] 소로의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와 『케이프코드』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3] 소로의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와 『케이프코드』
  • 교수신문
  • 승인 2023.04.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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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브라운(John Brown, 1800년 5월 9일 ~ 1859년 12월 2일)은 미국의 노예 제도 폐지론자로, 미국의 노예 제도를 철폐하기 위한 방법은 오로지 무장 봉기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졌다. 출처=위키미디어

1859년 10월, 존 브라운이 동료 21명(백인 16명, 흑인 5명)과 함께 무기고를 점령했다가 체포된다. 이 사건은 노예해방을 부정한 사람들에게는 빌미를 주고 노예해방을 주장한 사람들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즉시해방을 주장한 사람들조차 브라운에 대해 의도는 좋았지만 방법은 나빴고, 브라운의 야만적이고 무익한 시도는 지지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반면 악법에 반대하면서 브라운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에 그친다.

소로도 이 사건에 충격을 받는다. 브라운을 지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 대한 충격이다. 소로는 4백만 명의 노예를 구속하는 악정에 저항한 그의 반항이야말로 인간의 창조자, 영원한 재생자가 갖는 힘이며, 브라운을 영웅적인 노예해방자라고 본다. “누구나 부정으로 투옥하는 정부 아래서는 정의의 인간이 있을 참된 장소는 감옥이다. 소로는 자유롭고 결코 좌절하지 않는 정신의 주인에게 매사추세츠 주가 준비한 지금 가장 적절한 유일한 장소는 감옥이다”라고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에서 선언한다.

이어 소로는 미국 정부가 양심에 반하여 인명을 뺏었다고 비판한다. 이는 본래 미세한 사항만을 규정해야 할 법률가가 감히 인간을 구속하는 영원법의 해석자임을 사칭하여 미국은 이미 반이 노예의 나라이고 허위의 법률공장인 미국에서는 참된 정의를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한 조국에 대해 직면하는 용기를 가진 브라운의 행동은 필경 정신부흥을 일으키고 사람들 심장의 고동을 높이리라고 결론을 맺는다.

 

소극적 저항부터 적극적 저항까지, 소로는 저항을 주장했다

지난 연재에서 본 세 편의 글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발전, 즉 점차 타락한 국가에 대한 점차 격렬하게 변한 저항의 다양한 모습들을 다뤘다. 즉 『시민불복종』은 소극적 저항,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는 악법에 대한 저항, 『존 브라운 대장을 위한 변호』는 적극적 저항이었다. 그리고 그 어느 경우에나 악법에 대한 비판과 독립혁명정신의 계승이라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었다. 소로는 ‘절대적 선’의 ‘신의 법’에 어긋나는 지상의 악법, 가령 도망노예법은 악법으로서 신의 법에 어긋나므로 따라서는 안 된다고 본다. “왜 국가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처형하고,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며,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고 선전하는가”라고 하면서 악법을 지키지 말라고 주장한다. 『시민불복종』에서 소로는 악법에 대해 세 가지 대응, 즉 첫째 복종하는 것, 둘째 개정을 시도하고 개정되기까지 기다리는 것, 셋째 불복종하여 저항하는 것을 상정하고 셋째가 옳다고 했다. 『매사추세츠의 노예제』에서는 더욱 적극적인 저항을 주장했고,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에서는 더더욱 적극적인 반란을 인정한다.

이러한 사상은 독립운동기에 영국에 대한 저항의 논리인 혁명권과도 흡사했음을 소로의  『시민불복종』에서 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의 노예제』에서도 “우리는 상속받은 자유를 사용해야 한다. 생명을 구하려면 투쟁해야 한다”고 하고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에서는 브라운을 그리스도와 크롬웰에 비유하며 노예제의 소멸을 주장한다.

소로가 죽기 직전까지 매만진  『케이프 코드』는  『월든』에 비해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지만 최근에는 소로의 ‘정신적 발견’이라는 주제를 탐구한 또 하나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것은 『월든』까지 소로가 보여준 인간과 자연의 신성한 조화에 대한 확고한 신뢰대신 인간과 자연의 부조화, 특히 거대한 자연인 바다에 대한 공포를 난파선을 통해 이야기한 점에서 명백히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아일랜드 이민들이 타고 온 배가 난파해 145명이 죽은 현장의 비참을 묘사하면서 글로벌 제국을 통한 미국 자본주의 확장에 분노한다. 또한 거대한 바다를 앞에 두고서 과거 그곳에 도착했던 필그림들을 생각하며 상업적 식민자였고 편협한 종교인이었던 그들의 업적이 과대평가되었다고 비판하고 그들보다 더 빨리 10세기경에 그곳에 온 사람들을 찬양한다.

지에이 소프트에서 번역된 소로의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출처=알라딘.

인민 혁명을 긍정한 사회적 아나키스트, 소로

사회 개혁은 반드시 자아에서 시작된다는 소로의 견해는 그를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로 보게 하지만 이는 소로의 반자본주의, 반국가주의와 함께 인민 혁명을 긍정하는 그의 사회적 아나키스트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있다. 소로는 종래의 양분된 아나키즘 이론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최근 미셸 푸코가 탐구한 ‘자아 돌봄’을 통한 파레시아(parrhesia, 진실 말하기)와 같이 소로에서 민주적 자기의존과 결합된 실천이라는 자유의 긍정적인 실천을 볼 수도 있다. 타인을 지배하고 그들에 대해 압제적 권력을 행사할 위험은 정확히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의 욕망의 노예가 되었을 때 발생한다고 본 푸코처럼 소로는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자기 관리를 강조한다. 푸코에게 자기 관리, 즉 자치의 실천은 참여적 정치 윤리를 구성하는 데 핵심이다. 왜냐하면 자신과의 관계 외에는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의 최초이자 최후의 지점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저항의 실천으로서 자아에 대한 배려는 디오게네스에서 비롯된다. 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하는 문화, 사회, 문명 등에 의해 도입된 종속성을 제거하는 것이다. 디오게네스에게 자아에 대한 배려는 최소한의 소유물(토가, 그릇, 지팡이)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리고 생계를 구걸하며 번잡한 아테네의 빈 통에서 쪼그리고 앉는 것을 포함한 물질주의 거부와 문명적 권위에 대한 저항, 요컨대 자급자족 또는 독립성의 강조다. 황제는 태양과 같지 않고 사실상 햇빛을 차단하는 것과 같은 문화적 가치의 수용된 질서를 뒤집음으로써 아이러니를 주요 무기로 사용하는 냉소 파레시아는 권력에 대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편견으로부터의 자유와 세속적·종교적 권위에 대한 공개적 비판, 개인의 자율성과 종교적 제약으로부터 도덕의 분리와 같은 계몽주의적 민주적 이상을 제시한 디오게네스는 19세기 미국에서는 소로로 부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로는 영어나 한국어로  『의상철학』으로 번역된 칼라일의 『사토르 레사르투스Sartor Resartus』를 읽고 디오게네스를 알고 자조(Self-help), 즉 에머슨과 소로가 자립(self-reliance)이라고 부르는 것을 체득한다. 소로는 현실적으로 정부 없이 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 나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준비 부족은 개인의 개발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간섭 때문이지 개인의 능력 부족 탓이 아니라고 본다. 그가 『시민 저항』에서 썼듯이 정부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인민의 성격은 성취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시민 저항』에서 나온 이 주장은 소로 아나키즘의 또 다른 요소인 자발성, 자립성, 독립성, 자기결정성이 국가나 정부가 없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소로가 그러한 주체성을 아나키즘의 핵심 저변의 조건으로 본 점에서 혁명이나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에 의해 아나키즘이 가능하다고 믿은 바쿠닌이나 프루동이나 크로포트킨과 같은 사회적 아나키스트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데, 그렇다고 하여 이를 미국식 개인주의의 소산이라기보다도 미국식 프라그마티즘의 소산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지 모른다.

소로를 비롯한 노예폐지론자들은 흑인뿐만 아니라 서반구 전역에 걸쳐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억압한 정부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세계화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미국이라는 망토를 완전히 벗어버리려고 시도했다. 윌리엄 엘러리 채닝(William Ellery Channing)은 “인간은 국가의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다. 인간은 국가보다 나이가 많고 국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반정부 폐지론자들의 주장을 파악했다. 소로는 이러한 감정을 단 몇 마디로 요약하면서 『케이프코드』 마지막에서 케이프 코드가 사람이 설 수 있는 장소로 묘사하고 “모든 미국을 그 뒤에 두라”고 썼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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