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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2] '소로의 ‘시민불복종’과 ‘매사추세츠의 노예제’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2] '소로의 ‘시민불복종’과 ‘매사추세츠의 노예제’
  • 교수신문
  • 승인 2023.03.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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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소로의 『시민불복종』은 “‘가장 적게 통치하는 국가가 가장 좋은 국가다’라는 모토를 나는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라는 구절로 시작하여 다음과 이어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더욱 빠르고 체계적으로 실천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이 실천되면 결국은 내가 마찬가지로 믿는 ‘전혀 통치하지 않는 국가가 가장 좋은 국가다’라는 것이 된다.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면, 그들이 갖게 될 것이 바로 그런 국가다. 국가란 기껏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가는 항상 불편하고, 모든 국가는 대부분 불편하다.”

이어 소로는 군대를 비판하듯이 국가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멕시코전쟁에서 보듯이 소수 지배자가 국가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반면 인민은 그런 수단과 처음부터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이 거의 아나키즘에 가깝다는 것을 아는 소로는 자신이 아나키스트는 아니라며 ‘정부의 폐지’가 아니라 ‘더 좋은 정부이기’를 주장하면서 그것이 다수자의 정부는 아니라고 한다. 소로에게 중요한 것은 정의이지 국가법이 아니다. 그런 국가법에 의한 부정의의 사례로 소로는 전쟁에 끌려가는 군인들을 들고, 그런 정부에 반대하는 소수자를 정의의 편이라고 본다. 나아가 소로는 “정부의 폭정과 무능이 절대적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 정부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권리”인 혁명권을 인정한다.

소로는 당시의 대중과 달리 당시야말로 혁명의 시기라고 본다. 국민의 6분의 1이 노예이고, 미국 군대가 멕시코를 침략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에 대해 덕을 요구한 『월든』에서와 같이 소로는 부정한 정부와의 단절, 정부의 권위에 대한 고의적이고 신중한 부정, 법의 파괴, 정부에 대한 충성의 거부와 반항, 반역과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소수파의 힘을 믿은 소로는 인민의 도전과 정부 관리의 사직이 갖는 강제적 의미를 확인하였으나, 어디까지나 개인의 양심에 호소한다. 그는 시민불복종의 강제적인 잠재력보다도 도덕적 영향력에 주목한다.

소로의 시민불복종. 출처=알라딘.
소로의 시민불복종. 출처=알라딘.

『시민불복종』을 집필한 계기는 집필 2년 전의 감옥 사건이다. 당시 그가 바라본 주민의 비겁함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에게 미국의 대부분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기계로서, 인간성을 버리고 육체를 가지고 국가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대중에 대한 소로의 비판적 태도는 종래부터 일관된 것이지만, 이 글에서는 더욱 날카롭다. 즉 미국인은 점점 더 시시하고 이상한 존재가 되고 말았는데, 특히 집단적으로 사는 본능만이 발전하여 지성과 분명한 자기신뢰의 정신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소로는 지성과 자기신뢰 정신으로 충만한 개인을 찬양하고 언제나 양로원이나 부조금만을 기대하고, 죽을 때 화려한 장례식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보험회사의 약속만을 믿고 살아가는 대중을 경멸한다. 그래서 그는 그런 사회보장제도의 개혁만을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싫어한다.

나아가 그는 정의의 실현에 대한 대중의 비겁하고 방관적이며 타협적인 태도도 비판한다. 즉 덕이 좋다고 하는 자는 999명인데 덕을 몸에 익히는 자는 1명에 불과하듯이 정의실현에 대한 대중의 의지와 행동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투표를 비판한다. 모든 투표는 장기나 바둑처럼 일종의 승부 놀이로서 전혀 도덕적이지 못하고, 투표자는 자신의 인격을 투표와 결부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소로는 그런 대중과 구별되는 정의로운 사람은 정의를 우연의 힘에 맡기려 하지 않고, 정의가 다수자의 힘에 의해 승리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고 본다. 즉 정의의 실현은 각 개인의 비편의적인 태도, 정의의 인식에 실천을 일치시키고, 정의에 근거한 행위를 하도록 해야만 가능하다고 본다. 정의의 인식과 실행의 일치가 사물과 관계를 변혁시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혁명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소로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정의의 인식과 실행의 일치가 사물과 관계를 변혁시키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혁명적인 것이고, 이러한 혁명적 태도는 정의로운 사람들이 가져야 할 일상적인 것이며, 정부에 대한 태도는 그것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불복종』은 단순한 정치론이 아니라 도덕론이다.

소로는 ‘매사추세츠의 노예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시민불복종』에서도 자신은 정부에 대해 관심이 없고 정부와 관련되는 것을 치욕이라고 하면서 정부가 노예정부이기 때문에 내 정부로 인정할 수 없으니 관계를 끊는다는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자연 속에 몰입하여 자연 속에서 자신의 전체적 통일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노예제를 유지하고 멕시코침략전쟁을 수행했으며, 자신이 기대한 정부의 도덕화가 이루어지기는커녕 그 자신이 정부악의 공모자가 되어 버렸음을 소로는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는 비록 하룻밤이기는 하지만 투옥되기도 했고, 결국은 자연몰입의 생활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로와 같은 자연 몰입자에게 정부와의 관련이란 1년에 한번 있는 납세기로서 그것이 그가 정부와의 절연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리고 공공도로와 같은 것에 대한 세금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인두세(人頭稅)였다. 그것의 거부는 이제 무저항이 아니라 정부에 대한 의도적인 지지의 철회, 노예소유자와의 연합에 대한 의도적인 거부로서 소로가 말하는 노예폐지 자체다. 그는 부유계급의 사상을 부정하는 순수한 정의의 주장자로서 몰수될 재산을 갖지 않았고 따라서 그는 투옥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람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정부하에서 정의로운 사람에게 참된 장소는 감옥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머슨이 그에게 “왜 거기에 있느냐”라고 하자 소로는 “왜 여기에 없느냐”라고 답한 것이다.

소로의 시민불복종 개념은 간디에게 영향을 줬다. 사진=위키미디아
비폭력 평화 운동의 상징인 간디는 소로의 시민불복종 개념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진=위키미디아

그러나 소로는 정부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이 납세를 거부하고 친구인 세리가 사직하는 등 피통치자가 복종을 거부하면 혁명은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정치혁명이 아니라 개인의 도덕적 변혁을 매개로 하는 도덕적인 정치변혁의 이론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평화혁명, 자기혁명은 결국 피통치 인민 자신의 전체적 통일성의 유지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었고, 그것이 가능해져서 자기를 해방시키게 되면 자연적 정부의 변혁도 가능해진다는 믿었다. 그런데 자기혁명에 의한 정부변혁의 과정에 대해서 소로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그의 논의는 결국 독선적인 것에 그치지 않을 수 없었다.

1854년 7월, 소로는 노예제 반대집회에서 ‘매사추세츠의 노예제’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 그는 먼저 노예제에 무관심한 민중, 여론, 신문, 법원, 지사, 군인 등에 대한 불신을 피력하고 그들이 헌법보다 높은 법칙에 근거하는 미래에의 선례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면서, 권력자들에게 그 높은 법칙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요구하고 그런 요구에 불응하는 권력자에게 대한 민중과 관리의 복종거부를 요구한다. 또한 그는 민중의 감정과 그 자주집회의 가치를 인정하여 종래 『월든』까지의 철저한 개인주의적인 태도와는 달리 집단적인 민중의 적극적인 저항을 지지한다. 그래서 피케팅이나 법원 습격, 도망노예탈환 등의 적극적 수단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한다. 이는 뒤에서 보는 존 브라운의 경우보다 그 규모나 질에 있어서 상이한 것이었으나, 종래의 납세거부나 관직사퇴요구 등에 비해서는 훨씬 적극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적극적 대결을 위해 『월든』에서의 자연몰입을 거부한다. 더러운 정치는 자연도 더럽게 만든다며 일시적이지만 전력을 투구하여 정치와 대결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1849년부터는 납세거부를 중단하고 관직사직=연방해체와 신문구독거부운동을 하고 개혁주의자나 목사를 위선자라고 부르며 싫어하고 교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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