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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흔적 뚜렷한 환경오염…“인류세’ 용어 확산될 것”
인간 흔적 뚜렷한 환경오염…“인류세’ 용어 확산될 것”
  • 김해동
  • 승인 2023.03.28 0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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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본 인류세_ 김해동 계명대 교수

‘인류세’가 지질학계에서 공식 용어로 아직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사회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00년 미만의 기간 동안 퇴적층에 남겨진 인간의 흔적이 과연 지질시대에 시기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교수신문은 과학자와 인문학자 본 인류세에 대한 특집을 마련했다. 지난호 최덕근 서울대 명예교수(지질학),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에 이어 김해동 계명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가 기후변화·환경오염에 따른 인류세 담론 확산에 대해 기고했다.

 

유엔환경회의의 한 행사에서는 ‘인류세 에 온 걸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상 영하며 문제를 부각시킨 적이 있다. 사진=「유네스코 꾸리에 (Unesco Courier)」 (April-June 2018)에 실린 표지사진

“인류세로 간주되는 기간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이 너무 얇다고 하지만 양극 지방에 두껍게 쌓여있는 빙하 속에는 깊은 층에 걸쳐서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의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된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지질시대를 홀로세라고 한다. 홀로세에서도 기후가 급변하는 시기가 반복적으로 발생했지만 상대적으로 꽤 안정적인 상태가 지속됐다. 이러한 기후의 안정화가 인류문명 발달과 인구 폭증의 배경이 됐다. 홀로세는 ‘인류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었던 온전한 시기’라는 말이다.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계기로 인간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당시에 3억 명 정도였던 인구는 20세기 중반에 25억 명을 넘었고, 현재 80억 명에 이르렀으며, 2050년에는 100억 명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폭증으로 시작된 자연의 착취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생산한 제품을 먼 곳까지 빠르게 대량으로 수송할 수 있게 됐다. 산업혁명 이후에 인간은 화학지식을 이용해 플라스틱·비닐·합성섬유 등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내고 콘크리트와 같은 새로운 건축 소재를 개발하기도 했다. 20세기 중반에는 핵무기를 만들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했다. 과학기술의 성과로 물자가 풍족해졌고 인구가 폭증했다. 인간은 더욱 많은 물자와 생활 공간을 필요로 하게 됐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과의 공존을 넘어서 자연 착취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기후 위기, 지구환경 오염, 그리고 생물 대멸종 사건이 발생했고, 인류의 종말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인간이 유발시킨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간 중심의 편협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인간도 지구생태계의 일부라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인류세(Anthropocene)’ 개념이 나왔다.

인류세라는 용어는 1980년대에 미국의 생물학자 유진 스토머(1934∼2012)가 처음으로 사용하였지만, 이것이 유명해진 것은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레첸(1933∼2021)이 2000년 2월에 멕시코에서 개최된 국제환경회의장에서 현재의 지질시대를 인류세로 부르자고 제안하면서부터이다. 인류세란 과학기술문명의 폭발적인 증가로 인류가 지구환경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바꿔놓은 지질시대를 말한다.

국제지질과학연맹 산하 국제층서위원회는 2009년에 12개국 34명의 층서학 전공의 지질학자로 구성된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구성하여 현재까지 관련 연구(인류세의 정의, 인류세의 시작점과 특징 등)를 주도하고 있다. 애당초 AWG는 2021년까지 인류세 지정에 대한 공식 제안서를 국제지질과학연맹에 제출할 계획이었지만 계속 지연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경에 AWG가 인류세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대상 후보지(Golden Spike, 황금 못)를 선정하고 인류세 시작 시점을 언제로 정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투표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투표는 올해 봄에 마무리될 전망이라고 한다. 황금 못이란 인류세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특정의 지질 장소를 말한다.

인류세가 공식적으로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위원회에서 60% 이상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지질학자들 사이에서는 인류세 신설이 널리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학문적 용어를 채택하는 데에는 사회적 이슈로서 유명세보다 학문적 엄밀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현세를 인류세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무리한 일이라는 주장도 상존한다. 이 문제를 살펴보자.

AWG는 2019년 5월에 투표로 인류세 시작점을 20세기 중반으로 하는 데에 합의했다. 인류세를 규정하는 키워드로는 방사능 잔재, 플라스틱 쓰레기, 콘크리트 건축 소재, 유해 화학물질(농약 등) 등이다. 그래서 인류세의 시작은 핵폭탄이 사용된 1945년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945년에 인류세가 시작됐다고 결정한다면 아직 8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의 두께는 1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하다. 인류세가 너무 짧아서 별도의 지질시대로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말이다.

 

크루첸, 18세기 후반부터 인류세로 제안

인류세의 개념을 창안한 크루첸은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을 인류세의 시작으로 제안했었다. 대기 중의 온실가스 농도는 제임스 와트가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훨씬 뛰어넘는 새로운 증기기관을 발명해 증기기관에 대한 첫 번째 특허를 획득한 18세기 후반부터 증가 경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이 홀로세로부터 인류세를 구분하는 것에 지지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도 산업혁명 이후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으로 대기 중에 온실가스 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기후 위기가 찾아왔고 그것이 현존하는 생물종의 대멸종을 유발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있다고 한다. 아울러 인류세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물질들인 콘크리트는 1824년, 플라스틱은 1869년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인류세의 시점을 20세기 중반이 아니라 산업혁명이 시작된 18세기 후반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될지와 무관하게 인류세라는 용어는 앞으로 더욱 널리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국제학술지에 인류세와 관련된 논문이 연간 수백 편씩 게재되고 있고, 인류세를 다루는 전문 학술지도 창간되고 있다.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리우 유엔환경회의(1992)가 끝나고 10년이 지나서 개최된 요하네스버그 유엔환경회의(2012)에서는 행사를 시작하면서, ‘인류세에 온 걸 환영한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되기도 했다.

인류세로 간주되는 기간에 형성된 해양 퇴적층이 너무 얇다고 하지만 양극 지방에 두껍게 쌓여있는 빙하 속에는 깊은 층에 걸쳐서 인간에 의한 환경오염의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된다. 그린란드와 남극의 얼음코어 속에 산업혁명 이래로 메탄과 이산화탄소 농도가 뚜렷하게 증가한 공기가 확인되고, 오존홀을 만든 프레온가스의 폐해도 1945년에 사용된 핵폭탄과 후속 핵폭탄실험에서 나온 방사성 물질도 선명하게 발견된다. 해양에는 폐플라스틱 섬이 형성되고, 수많은 해양생물이 희생되고 있다. 그래서 설령 인류세가 지질학적 공식 용어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일반 대중들과 다른 학문 분야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폭넓게 사용할 것이며 먼 훗날에 지질학적 증거로도 남겨질 문제임에 틀림없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학과 교수교수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에서 대기과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기상청 기상연구관을 역임했다. 현재 대구환경운동연합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기후위기 과학특강: 도와줘요, 기후박사』, 『내일 날씨, 어떻습니까?』, 『기후변화와 미래사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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