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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와하비즘’ 탈피하는 사우디, 세속화 성공할까
[글로컬 오디세이] ‘와하비즘’ 탈피하는 사우디, 세속화 성공할까
  • 정진한
  • 승인 2023.03.2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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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작년 2월 22일을 건국절로 제정한 데 이어 올해는 3월 11일을 국기절로 지정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우디의 공휴일은 이슬람 음력에 따른 명절인 개제절과 희생절이 전부일 정도로 종교 전통 일변도였지만, 2005년 처음으로 서양력을 따르는 국가절을 제정하고 지난해에 건국절을 보태면서 반반이 됐다.

이처럼 사우디가 급속하게 이슬람 명절 대신 자국의 역사적 기념일을 진흥하는 조치를 두고 다수의 전문가들은 직접적으로는 국가 정체성의 전환을 선전한다고 본다.

보다 넓게는 역내 주도권을 쟁탈하기에 유리한 포석을 깔기 위한 조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 사우디가 건국절에 내놓은 건국원년을 1727년으로 정한 것이 국시 와하비즘 노선의 종말 선언이라는 해석마저 내놨다.

와하비즘은 이슬람 수니파의 가장 근본주의적인 종파이며 오늘날 사우디의 건국이념이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와하비즘적 색채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사진=사우디 익스패트리어츠

최근까지 사우디는 국기 하단부의 칼(사우드가의 힘)이 상단부의 샤하다(이슬람의 신앙고백 구절)을 떠받치는 형상과 같이, 왕족들과 종교학자들이 국가의 양 기둥으로 약 300년간 그 체제를 지탱해왔다. 그 기원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호한 토호 군주 무함마드 이븐 사우드와 그 일대에서 저명했던 이슬람 신학자 무함마드 이븐 압둘 와합이 결성한 1744년의 협약까지 거슬러간다.

이를 통해 사우드 가문은 왕실의 권한으로 압둘 와합 가계를 쉐이크(원로) 가문으로 우대하며 성직자의 지위와 종교활동을 보장·지원해왔고, 압둘 와합의 추종세력은 왕가에게 이슬람을 수호하는 지도자라는 명분과 정통성을 보장해줬다.

이 유착관계는 1979년 이웃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통해 가장 공고해졌다. 신정국가를 출범시킨 이슬람 혁명은 사우디를 비롯한 주변국의 세속정권을 전복하자는 운동으로 번졌고, 특히 사우디에서는 메카의 대 모스크 점거와 유혈 해산이라는 국가 초유의 위기를 촉발했다.

때문에 왕정을 유지한 채 신정국가 이란보다 더 ‘이슬람 국가다운’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했던 사우디는 여성의 운전 금지와 무타위(종교경찰)의 노상 검문, 구타, 체포, 구금, 심문 등으로 대표되는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이슬람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이러한 와하비즘적 색채를 빠르게 지워나가고 있다. 재위 초부터 반체제적 종교 지도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면서, 종교경찰의 독단적 권한 행사를 극도로 제한하며 종교계의 물리력 행사의 원천도 봉쇄했다.

왕세자는 2018년 4월 <아틀란틱>의 편집장 제프리 골드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와하비즘이란 용어는 실체가 없으며 자신을 비롯한 그 누구도 와하비즘을 정의할 수 없다는 말로 주변을 당황하게 했다.

이후에도 그는 자신의 와하비즘 부재설을 재확인하며 압둘 와합을 그저 당대의 여타 저명한 종교학자 중 한 명으로, 또 그가 생존해있다면 극단주의자들이 그를 추종하는 것과는 반대로 극단주의자들을 배척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도입된 건국절 인장은 1744년 대신 1727년을 그 기원으로, 상징하는 이미지로는 베두인 차림의 깃발을 든 인물과 그를 둘러싼 네 가지 상징물 즉 말, 대추야자나무, 시장, 매를 채택했다.

즉 어디에도 이슬람과 관련된 내용이 없는 대신 아라비아의 자연과 왕실을 비롯한 부족들의 사회와 역사가 국가 설립의 의의를 대표할 뿐이다.

이러한 왕세자의 유연한 종교 노선은 국내 인구 다수를 차지하는 청년층에게 각광받을 뿐 아니라, 역내에서 비즈니스 허브 지위를 놓고 두바이를 위시한 여타 지역과 벌이는 경쟁에도 적지 않은 보탬이 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1979년의 구도와는 반대로 이란의 정권을 흔들고 있다. 자국 못지않게 엄격했던 사우디마저 온건한 이슬람 사회로 전환되는 것을 목도한 이란의 청년들과 진보층은 이제 자국도 종교적 의무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점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우디의 현상 변경 세력으로서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금욕주의적인 와하비즘에서의 탈피일 뿐 세속국가가 아니다. 아직 왕가의 지도력에는 이슬람의 수호자라는 타이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국내외에는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세력들이 견고하기에 이들의 지원 없이 홀로 서려는 왕세자의 시도는 일견 불안하다.

하지만 사우디 미래세대의 다수는 기존 체제의 한계를 창의적 발상으로 과감하게 돌파해 나가는 그를 응원하고 있다. 

 

정진한 한국외대 아랍어과 강사

요르단대와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문명교류사와 중동학을 전공했고 한국이슬람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이슬람 세계관 속 신라의 역사: 알 마스우디의 창세기부터 각 민족의 기원을 중심으로」 등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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