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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1] '월든'과 '원칙 없는 생활'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31] '월든'과 '원칙 없는 생활'
  • 신다인
  • 승인 2023.03.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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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한국은 물론 동양에도 <월든> 정도의 ‘자연예찬서’야 너무나 많은데 왜 하필 <월든>이냐고 얼굴을 찌푸릴 분들이 계시리라. 그러나 나는 우리 전통의 자연예찬과 <월든>은 다르고, 특히 소로는 자연과 함께 저항을 말했다는 점에서 현저히 다르다고 본다. 그리고 그 저항도 단지 비폭력저항이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저항도 포함한다. 그래서 소로는 성자커녕 반역자이고, 성인커녕 무법자다. 물론 소로에게는 총도 말도 소도 없었고 시가는커녕 시가레트도 피우지 않았지만, 돈에 미쳐 서로 싸우는 썩은 악당들을 미워하고, 그들이 함께 착취하는 원주민과 흑인노예의 편을 드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소로는 실제로 도망 노예를 구출하고 캐나다로 도망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자금을 마련했으며, 밤에 숲을 이용하여 그들을 이동시키고 야간열차에 태워 보내는 서부활극의 주인공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고, 국가가 그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세를 거부하여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소로는 <월든>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내가 요구도 하지 않은 보호를 위하여 국가가 세금을 걷으려고 할 때, 내가 그것을 거부하면 국가는 도적이 된다. 반면 내가 스스로 대담하게 자유를 주장할 때, 국가는 나를 투옥했다.”

국가를 비판하는 <월든>은 간소한 생활을 찬양하고 실천한 책만이 아니다. 의식주에 대한 생각, 최소한의 옷, 하루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그리고 최소한의 집은 그야말로 당시나 오늘 사람들의 사고와 삶에 철저히 반하는 것이다. 문화와 자연의 이분법, 동물과 인간, 정신과 육체, 남성과 여성, 문명과 미개라고 하는 이원론이나, 신-천사-인간-동물-식물이라는 기독교적 계급관과 대립하는 것이었다. <월든>의 ‘야성의 이웃’이 주장하듯이 동식물을 이웃으로 삼아 윤리적으로 배려하는 것이고, 그 자신과 자연 사이의 이웃이라는 공동체는 현재의 사회질서 범위 내에 포함되지 않고 도리어 대립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주류문화에 대한 대항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서 당연히 아나키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소로의 경우 그것이 사람이 살지 않는 호숫가이듯이 카슨의 경우에는 해변이고, 에비의 경우에는 사막과 계곡이다.

월든 호수. 사진=위키미디아.
월든 호수. 사진=위키미디아.

소로는 한 마디로 반지성주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은 레이건 시대의 미국이나 오늘의 한국에서 제멋대로 회자되는 반지성주위가 아니라, 대학교육에 의해 형성된 지성주의에 의문을 던지고 ‘삶의 예술’(the art of life)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를 <월든> 앞부분에서 소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발적인 빈곤’이라고 불러야 할 유리한 고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누구도 인간생활의 공정하거나 현명한 관찰자가 될 수 없다. 농업, 상업, 문학, 예술을 막론하고 불필요한 삶의 열매는 사치일 뿐이다. 오늘날 철학교수는 있지만 철학자는 없다. 삶다운 삶을 사는 것이 한 때 보람 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그렇다.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난해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뜻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마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위대한 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성공은 군자답거나 남자다운 성공이 아니라 대개는 아첨하는 신하로서의 성공이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적당히 타협하면서 그럭저럭 살아가기 때문에 보다 고상한 인류의 원조는 될 수 없다.”

소로는 하버드대학 출신이지만 재학 중은 물론 평생 그 대학을 자랑하기커녕 극도로 경멸했다. 그곳은 규칙과 관습, 그리고 허용되는 이념만을 대변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평생 그곳 동창회의 회원이 되는 것조차 거부했다. 소로는 <월든>에서 자기가 29달러 정도로 오두막집을 지은 것을 상세히 말한 뒤 하버드는 비슷한 크기의 방에 매년 30달러를 받는다고 비난하고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관리한다면 비용이 그 10분의 1로 줄어지리라고 본다.

그 비싼 대학은 ‘삶의 예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직접 인생에 뛰어드는 것이 가장 좋다고 권한다. 이런 소로에게 천재나 위인이란 도리어 보잘 것 없는 것이고, 원주민 인디언이나 농민들이 훨씬 훌륭한 사람으로 칭찬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소로의 천재와 위인 비판은 대학과 문명과 산업 등에 대한 비판과 통한다. 그 모든 것은 지성의 소산이기 때문에 소로는 철저히 반지성이다. 그리고 소로는 <월든> 전체를 통해 지성의 향상이 아니라 내면의 각성을 촉구한다. 이는 미국의 전통인 반지성=개성=인격 중시와 통한다.

소로 당대에 미국의 지성을 대표한 철학자는 에머슨이었다. 에머슨은 소로의 선배이자 스승으로서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사실은 그 두 사람은 서로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저항을 가르친 소로와 달리 자기신뢰를 가르친 에머슨은 뒤에 비합리주의 철학자 니체나 전체주의의 상징인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쳤다. 반면 소로는 비폭력주의자들인 간디와 킹에게 영향을 끼쳤다. 19세기 전반을 함께 살았던 에머슨과 소로가 20세기사상의 중요한 기원이었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초상화 (1863)사진=위키미디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초상화 (1863)사진=위키미디아.

<월든>의 사상을 더 발전시킨 글이 <원칙 없는 생활>이다. 글의 처음에서 소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비판하겠다고 하면서 한 마디로 “이 세상은 장사꾼 세상이다” “일, 일, 일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없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인간만큼 치명적인 실패자는 없다.” 이어 소로는 황금에 미친 세상을 비판하고서 당시 사람들의 타락을 질타한다. 특히 지식인들이 대중사상, 아니 ‘무사상’에 젖어 도당을 만든다고 비난한다. 또한 뉴스나 신문이나 일상회화도 지극히 공허하고 무익하다고 비판하고 생활이 내면적, 개인적인 것이 되지 않은 탓이라고 하면서 자연을 가까이 하라고 권한다. 소로는 미국이 ‘정치적 폭군으로부터는 자유’로우나, 여전히 ‘경제적, 도덕적 폭군으로부터는 노예’라고 말한다. 이어 소로는 미국의 노예제와 상업주의 등을 엄격하게 비판한다. “소위 정치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에 비해 너무나도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것이므로 나는 사실 국가와 자신과의 관계를 분명히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어 정치나 생계는 무의식적으로 수행되어야 할 인간 이하의 식물적 소화기능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글을 맺는다.

미국인 소로는 그 19세기, 그 미국이라는 조건의 제약에 분명히 메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령 그의 평생 취미였던, 아니 가장 중요한 생활 자체였던 산책에 대해 쓴 아름다운 책도 그 내용이 단순한 ‘산책’이 아니라 ‘발걸음’(walking)으로서 동부에서 서부로 향한 것이라고 하는, 결국은 미제국주의의 발걸음일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이는 그의 책 여기저기에 나오는 이슬람이나 여타 19세기 당시에만 해도 아직 원시 야만이라는 평가를 받던 세계 여러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 역시 전형적인 제국주의 작가이자 오리엔탈리스트라는 비난이 가능하다. 이는 그의 유교를 비롯한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에서도 볼 수 있는 점이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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