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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연구의 참모습…역사부터 현대 한국어까지
어휘 연구의 참모습…역사부터 현대 한국어까지
  • 권재일
  • 승인 2023.03.24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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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연규동 선생의 우리말 어휘 이야기』 연규동 지음 | 박이정 | 440쪽

일상의 어휘법부터 우리말의 뿌리까지 풀이
정확하고 품격 있는 말글 생활로 의사소통

이 책은 일 년 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난 연규동(1963~2022)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가 컴퓨터에 갈무리해 두었던 우리말 어휘에 관한 원고를 펴낸 유고집이다. 연 교수는 언어학 전문가는 물론 일반 교양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우리말 어휘의 특성과 역사를 이야기하듯 쉽게 풀어썼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말 어휘에 관심 있는 누구든 읽어 볼 만하다.

 

연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근대국어 어휘집 연구-유해류 역학서를 중심으로」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은 역사언어학자였다. 학위논문 제목에서 보듯 어휘의 역사에 대한 연구, 역학서와 관련한 알타이어학에 대한 연구가 평생 연구의 중심 분야였다. 어휘사와 알타이어학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 언어조사와 문자학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쏟았다.

연 교수는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학생들이나 교양인들을 위한 해설 논문도 많이 썼다. 그간 저서 18편과 논문 60여 편을 썼으니 참으로 왕성한 저술 활동이었다. 이 많은 저술 가운데 미처 출판하지 못한 글도 많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규동 선생의 우리말 어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정교한 언어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우리 말글 생활에서 어휘에 관련한 꼭 필요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음이 가장 큰 특징이다. 즉, 올바른 의사소통을 위해 필요한 어휘 지식과 사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이 책에 담긴 어휘론은 어휘 역사로부터 시작하여 현대 한국어 어휘에 이르기까지 연구의 폭이 넓다. 그래서 이 책은 다음 두 부문으로 나누어서 구성돼 있다. 첫째는 현대 한국어의 어휘 편이다. 생활 속에서 살펴보는 어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1부와 제2부에서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제1부에서는 우리 일상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어휘 문제를 언어학의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풀이해 준다. 제2부에서는 어휘와 한국어 어문규범의 문제를 쉽게 풀이해 준다. 

둘째는 우리말 어휘의 역사 편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찾아보는 어휘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책의 제3부와 제4부에서는 바로 이러한 내용을 담았다. 제3부는 우리말 어휘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해 온 것을 역사언어학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풀이해 준다. 제4부는 어휘와 관련해 우리말의 뿌리와 어휘의 변천 과정을 알기 쉽게 풀이해 준다. 

 

연규동(1963~2022) 경성대 한국한자연구소 교수의 생전 모습이다. 사진=경성대 한자문명연구사업단 유튜브 캡처

이제 이 책에서 풀이한 여러 어휘 현상 가운데 흥미로운 내용 한 가지를 소개한다. 두 단어가 비슷하지만 뜻이 다른 경우가 있어 혼동하는 경우에 대한 풀이이다. 예를 들어, ‘배상’(賠償)과 ‘보상’(補償)은 남에게 물어주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배상이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손해를 물어주는 것임에 반해, 보상은 적법 행위로 인한 손실을 물어준다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손해 배상과 손실 보상으로 구분해 사용하여야 한다. ‘부실 공사에 대해서는 주인에게 배상해야 한다.그동안 제가 진 신세를 어르신께 보상하고 싶습니다’와 같이 사용한다고 했다. 

‘경신’과 ‘갱신’은 모두 한자어 ‘更新’에서 온 말로 그 뜻에 따라 읽기가 달라지는 말이다. 한자 ‘更’은 ‘고칠 경’과 ‘다시 갱’의 두 가지 뜻과 발음이 있다. 그러므로 ‘고쳐서 다시 새롭게 함’이라는 의미일 때는 ‘경신’과 ‘갱신’이 둘 다 사용될 수 있지만, ‘경신’에는 ‘종전의 기록을 깨뜨림’이라는 의미가, ‘갱신’에는 ‘계약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각각 들어 있다. 따라서 ‘세계 신기록 경신, 기록 경신’, ‘계약 갱신, 비자 갱신’ 등으로 구분돼 쓴다고 했다.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하며,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치는 모양을 ‘물비늘’이라고 구별했다. ‘매무새’는 옷을 입은 맵시를 나타내는 말이고, ‘매무시’는 옷을 입을 때 매만지는 뒷단속을 가리키는 말로 구분했다. 그러므로 ‘고운 옷매무새를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옷매무시를 잘 해야 한다’와 같이 구별해 써야 한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연 교수 어휘 연구의 참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무쪼록 독자들께서 이 책을 통해 우리말의 어휘 특성, 어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길 바라며, 더 나아가서 우리의 말글 생활이 쉽고, 정확하고, 품격 있어, 일상의 의사소통에 크게 도움이 되길 소망한다.

 

 

 

권재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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