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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챔피언의 날
1941년, 챔피언의 날
  • 최승우
  • 승인 2023.03.14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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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터 지음 | 신기섭 옮김 | 마르코폴로 | 420쪽

1941년 11월 12일, 상하이의 외국인 거리에 있는 승마 경기장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상하이 조계지 주민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즐겁게 애용해 온 경마장(Shanghai Race Club)에서 최종 결전의 무대를 마련했다.

3일간의 경주 회의는 1년에 두 번 열렸으며 수천 명의 관중이 모였다. 이 시기에 ‘외국인’ 남성만이 회원이 될 수 있었다.

항구 도시인 상하이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서구 식민지였다. 유럽 ??강대국과 미국은 아편 전쟁의 전리품으로 이 매력적인 도시의 주권을 빼앗았다.

상하이와 다른 여러 중국 도시의 서양인들은 ‘치외법권’을 부여받았는데, 이것은 그들이 현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 은행들과 다른 기업들은 이 새로운 도시로 몰려들었다. 상하이는 번영했고 세계적인 수준의 대도시가 되었다.

에어컨처럼 현대인에게도 익숙한 사회기반시설은 중국의 다른 지역보다 상하이에 제일 먼저 건설되었고 심지어 대부분의 서구 도시들 보다 더 일찍 사용되었다.

이 특별한 도시의 중심에는 경마가 있었다. 상하이 레이스 클럽의 거대한 트랙은 그 자체로 도시의 상징이었다.

챔피언의 날은 그 시즌의 경주에서 우승한 말들끼리 1년에 두 번 열리는 대회였다. 우승자는 ‘잔디의 제왕’이라는 칭호를 얻었고 그 주인은 상하이에서 특별한 명성을 얻었다.

외국에서 온 상하이정착민들은 스스로를 동서양을 연결하는 다리로 생각했다. 레이스 클럽 하우스와 도시의 건축물은 유럽과 아시아의 스타일이 혼합되었다. 트랙을 도는 말들도 경주에서 뛰는 일반적인 말이 아니었다.

상하이의 엘리트들은 조각상 같은 서러브레드가 아니라 몽골에서 들여와 지역 경매에 팔린 작은 ‘중국 조랑말’들로 경주했다.

이국적인 정취와 서구화된 상하이조차 인종주의에서 자유로울수 없었다. 경마장에서 마권을 구입하는 사람들은 중국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이들은 레이스 클럽 회원 자격에서 제외되었다.

한편, 서양에 도전하는 또 다른 아시아 국가가 있었다. 일본은 몇 세대 만에 산업화된 강국으로 변모했다.

결국 일본은 식민지가 될 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를 식민지화하려고 했고 1930년대에는 중국 해안의 많은 도시를 침략했다.

일본은 이국적인 상하이를 건드리지 않았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도시 사이에서 상하이를 평화의 ‘고독한 섬’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자신들의 침략을 유럽 식민주의에 대한 범아시아적 저항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난징의 강간’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잔인한 점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상하이의 인구는 중국인이 국제 정착지로 몰려들면서 계속 팽창했다. 인구 밀집, 인플레이션, 그리고 종종 폭격에도 불구하고, 상하이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책 제목에 언급된 ‘종말’은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했을 때 비로소 찾아왔다.

제임스 카터는 『챔피언의 날: 옛 상하이의 종말』에서 전쟁 직전의 역동적인 도시의 ‘만화경 같은 초상화’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카터는 미국의 세인트 조제프 대학의 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가장 주목할 만한 중국 역사가 중 한 사람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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