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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교실살이
철학이 있는 교실살이
  • 최승우
  • 승인 2023.03.14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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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지음 | 살림터 | 276쪽

철학이 있는 교실살이.

제 책에 관심을 품는 한 친구가 이번에 내는 책 제목이 뭔가 물어 와서 답을 했더니, ‘○○살이’라는 표현이 다소 불편하다는 뜻을 비쳤습니다.

같은 교사로서 신념이나 기질이 비슷하여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친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봐서 많은 독자들이 비슷한 생각을 품으실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다가갈 것만 같은 이 표현을 제가 굳이 쓰고자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글의 말문을 열겠습니다.

문맥상 ‘교실살이’라는 수사를 대치할 무난한 용어는 ‘학급경영’일 것입니다. 학급경영이라는 용어는 ‘classroom management’라는 외래 개념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management라는 영어 단어는 경영 외에 운영, 관리의 뜻도 있는데 어느 경우든 학생 집단을 수동적인 객체로 대상화하는 점이 유감입니다.

학급 경영자로서 교사의 이미지는 흡사 광화문 광장에서 긴 칼 옆에 차고 군중을 내려다보는 충무공 이순신을 연상케 합니다.

요컨대 ‘교실살이’라는 표현이 자조적이어서 불편하다면, ‘학급경영’이라는 용어는 반대로 오만한 교사상을 표상하는 폐단이 있다 하겠습니다.

한때는 교사의 권위가 이순신 장군의 기개처럼 드높았습니다. 그 시절에 교사는 권력자였습니다. 그게 바람직한지 여부를 떠나 교사의 의지대로 학생들을 통솔하며 학급을 수월하게 관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가고 없습니다. 교실에서 교사는 더 이상 권력자가 아닙니다. 교실공동체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꾸러기에게 훈육을 가했다간 아동학대 운운하는 학부모의 민원으로 고초를 감수해야 합니다.

교권이 바닥에 떨어진 현금의 학교에서 교사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보다 살아남기를 걱정해야 하는 실정을 생각할 때, 학급경영이란 용어는 교육적 정당성을 떠나 비현실적이까지 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살아남는 것이 교직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교실살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교사로서 자존을 지키면서 교육적으로 살아내기, 역동적인 교실 상황에서 아이들과 치열하게 부대끼는 가운데 오순도순 행복한 교실을 꾸려 가자는 의미입니다.

교실은 회사가 아니며, 교사는 사장이 아닙니다. 회사의 명운은 사장의 경영에 달려 있지만, 교실의 행복과 학생의 성장은 교사와 학생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어떤 관계망을 뜨개질해 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교실살이의 고민을 이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35년을 지나고 있는 저의 교육 실천과 그간 연마해 온 교육 이론과 나름의 소박한 교육 철학을 이 책에 풀어 보고자 합니다.

올바른 교직 삶은 철학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인간 삶에서 철학은 나침반이나 지도와 같은 기능입니다. 철학 없이 살아가는 것은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30여 년 교직 삶을 살아오면서 숱한 문제와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때론 실의와 좌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문제를 해결하며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철학의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철학은 이론을 자양분으로 세워집니다. 지성과 철학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교실살이의 철학적·이론적 기초’라는 제하의 1부의 글들이 이런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룬 담론이나 이론은 제가 임의로 선정했을 뿐 이것들이 교실 철학을 세우는 데 필수적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사족을 덧붙입니다.

2부에서는 1부에서 다룬 철학적·이론적 기초를 토대로 교실살이의 실제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하위 영역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교사의 본업이라 할 수업과 관련한 중요한 이슈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피력했습니다.

둘째는 교실살이에서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문제와 갈등을 헤쳐 가는 데 실천적으로 터득한 해법이나 나름의 지혜를 엮어 봤습니다.

셋째는 동료들이나 학부모님들과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저의 고민과 생각을 담았습니다.

철학이 있는 교실살이 3부는 교육 에세이 성격으로 평소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언론에 게재한 글들을 엮은 것입니다. 제목을 ‘삶과 교육’이라 정한 것은 삶과 교육은 같이 간다는 저의 지론을 표방한 것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앎은 삶에 뿌리 둘 때 튼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를테면, 1km의 개념을 관념적으로 머릿속에 주입시키기보다 그만한 거리의 길을 직접 걸어가서 몸으로 느낄 때 가장 깊은 앎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도 삶과 교육은 같이 가야 합
니다. 혹 우리가 수업 시간에는 생태적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면서 생활 속에서는 별생각 없이 일회용품 사용을 즐기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입니다.

도덕적 가치를 벗어난 가르침을 생각할 수 없듯이, 교사의 삶 또한 바람직한 교육 실천에 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특히 3부에 그런 사색과 성찰의 색채를 띤 글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외람되게 훈계하는 듯한 메시지가 때론 불편하게 다가갈 수도 있을 겁니다. 열린 마음으로 읽어 주
시기 바랍니다. 저희 때는 교사 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 교사들은 비범한 재능을 토대로 피나는 노력 끝에 교단에 서신 분들입니다. 요즘 젊은 선생님들은 수업도 잘하실 뿐만 아니라 업무에도 밝아서 주어진 일을 빠르게 잘 처리하십니다.

다만, 어떤 오더가 떨어질 때 일을 척척 잘 처리할 뿐 정작 그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나 고민을 품는 분을 잘 볼 수 없는 점이 유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의 역할을 쇠파리에 비유했습니다. 소의 등에 붙어 편히 쉬고 싶어 하는 소를 괴롭히는 쇠파리처럼, 우리 시대의 교직 삶에서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선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감히 그 역할을 자임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을 흔히 꼰대라 일컫는 줄 압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에도 꼰대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꼰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꼰대가 던지는 메시지가 설득력이 있는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혹 이 책에서 제가 펼친 생각이나 주장에 유감을 품고 반론을 주시거나 토론을 요청하실 분은 환영합니다. 저자 소개란에 안내된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배우는 자세로 선생님들과 따뜻한 대화의 창을 열겠습니다.

저자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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