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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에서 급조되는 대학 개혁 정책
밀실에서 급조되는 대학 개혁 정책
  • 이덕환
  • 승인 2023.03.13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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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편집인 /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편집인

지방대 소멸의 우려가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 신입생의 추가모집을 진행한 180개 대학 중 90%가 지방대다. 사정은 절박하다. 신학기 개학을 코앞에 두고 일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3차에 걸쳐 추가모집을 진행했다. 심지어 지원서를 접수하면 당일에 합격 여부를 알려주는 대학도 있다. 사실상 선착순으로 묻지마 합격증을 발급하고 있는 셈이다. 15년 동안의 반값 등록금으로 재정이 바닥나버린 현실에서 생명의 동아줄인 추가모집을 절대 놓아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대를 힘겹게 만드는 것은 신입생 확보만이 아니다. 교육개혁을 핑계로 대학에 대한 지원 제도를 몽땅 뜯어고치겠다는 교육부의 눈치를 보는 일도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교육부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던 ‘대학기본역량평가’가 폐지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밀어붙이는 대학 개혁의 정체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모든 개혁 방안이 철저하게 차단된 밀실에서 은밀하게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입장에서 대학은 개혁의 주체는 말할 것도 없고, 동반자의 자격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가 밀실에서 급조해내는 개혁 정책을 무작정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다.

당장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광역지자체를 상대로 추진하는 2조원 규모의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야말로 정책 수행의 속도가 전광석화와도 같다. 1월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처음 공개된 사업의 공모를 2월 21에 마감했다. 대학 사회는 물론이고 교육부 내부의 의견을 반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지자체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20일 만에 교육부가 던져주는 예산을 관리할 비영리법인을 지정하고, 대학지원 전담조직을 만들고, 지역 내 대학의 육성에 대한 기본적인 구상을 내놓아야만 했다.

그뿐이 아니다. 지방대는 4월 말까지 5쪽 분량의 ‘글로컬대학’ 사업계획서를 내놓아야 한다. 대학의 안과 밖은 물론 학과·교수의 벽도 허물어야 하고, 과감한 ‘대도약’을 위한 혁신 체계를 마련하고, 지역 혁신을 위한 산학협력 허브의 역할을 위한 구상을 만들어야 한다. 대학을 바닥부터 뒤집어 엎을 개혁안을 한 달만에 급조할 수 있는 대학은 없다. 교수·학생·직원의 원만한 합의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년 1천억 원의 교육부 지원금으로 당장 대학간 연합(그르노블-알프스연합대학), 학제간 융합연구(텔아비브대학), 현장 전문가 활용 연구(미텔슈탄트대학) 수준의 혁신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교육부의 주장도 구태의연한 것이다. 교육부가 강조하는 연합·융합·활용의 혁신은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성공적으로 시도해본 적이 없는 낯선 경험이다. 남의 성공 사례를 흉내 내는 혁신은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적인 선도국가의 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노동·연금 개혁과 함께 교육 개혁도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중차대한 국정 과제다. 그런데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명분 하나만으로 대학 사회에서 최소한의 의견수렴 절차도 무시하는 폭력적인 개혁은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 개혁에 필요한 예산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공모 절차를 밀어붙이는 모습도 생경하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 교육의 개혁에는 더욱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덕환 편집인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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