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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은 교수의 소비자이자 성과”…자소서로 학생 파악·시험결과도 피드백
“학생은 교수의 소비자이자 성과”…자소서로 학생 파악·시험결과도 피드백
  • 이경북
  • 승인 2023.03.15 0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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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㉑ 이경북 공주대 교수
기말고사 후 학생들이 수업과 관련된 자유주제로 수행한 팀프로젝트를 대면과 비대면으로 발표하는 모습이다. 사진=이경북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대학 생활을 시작한 20학번은 4학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굴을 마주보는 수업에 참여했다. 2020년 9월에 임용되어 첫 학기 수업부터 실시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했던 필자 역시 아직 마스크를 벗고 대면 수업을 한 적이 없다. 오직 코로나19 시대에만 강단에 섰던 필자에게는 말 그대로 ‘비정상이 정상’이었다.

학생 답안지를 통해 학생 파악, 수업 설계

필자는 시험이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자를 평가하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는 시험이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지난 수업에서 내가 놓친 핵심사항은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학습 과정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과제나 시험에서 많이 틀린 문제는 풀이영상을 제작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위한 것이 시험이고, 그 부분을 다시 복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동기를 부여해준다.

모든 학생은 과제와 시험의 감점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기에 과제와 시험지에 부분점수와 정답을 기재하고 학생들에게 이를 확인하도록 한다. 계산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점수를 많이 배점한다. 학생이 답을 틀렸더라도 문제에 대해 고민한만큼 보상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학생의 이해도와 학습별 습득력 차이를 파악하기 위해 직접 채점을 하며 수업내용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없는지도 고민한다. 또한,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익명으로 점수를 공개하기도 한다.

익명을 전제로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 점수를 공지한다. 학생들의 실명을 돌맹이간찰자, 조랭이떡, 아에이오우 등은 교수가 임의로 정한 학생들의 별명이다. 사진=이경북
익명을 전제로 학생들의 과제와 시험 점수를 공지한다. 학생들의 실명을 돌맹이간찰자, 조랭이떡, 아에이오우 등은 교수가 임의로 정한 학생들의 별명이다. 사진=이경북

5분 발표로 학생 간 지적 자극 유도

필자는 수업 전 쉬운 질문과 어려운 질문을 모두 준비해간다. 쉬운 질문은 주로 지난 수업 복습을 위한 것이고, 어려운 질문은 당일 수업 내용을 응용한 것이다. 쉬운 질문은 무작위로 지목하거나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게 제시한다. 반면, 어려운 질문은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누구나 답할 수 있게 한다.

과제나 시험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사용하거나 모범답안을 작성한 학생에게는 5분 내외로 발표해 줄 것을 사전에 요청하기도 한다. 발표하는 학생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정리하여 말할 기회를 얻게 되고, 듣는 학생은 동일한 문제에 대해 다른 학우가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배우게 된다. 코로나19 시대에 동기들과도 교류할 기회가 적다보니 팀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에게 협업하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3~4명 단위로 팀을 꾸려 기말고사 후 학생들이 정한 수업 관련 자유주제로 발표하도록 하는데, 학기중 학생들의 눈빛이 가장 빛나는 시간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유난히 수업관심도가 높고 심화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이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주도적으로 심화학습을 진행할 수 있는 ‘밀알두레’ 프로그램(공주대 교수학습지원센터 운영)을 제안한다. 2~3개월간 두레원들이 매주 활동보고서를 작성하고 마지막 소논문까지 작성해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든 참가팀에게는 소정의 활동비가 제공되고 우수팀에게는 상금과 총장상이 주어져 학생들이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이경북 교수는 공주대의 밀알둘레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에게 심화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사진=이경북

공결 학생 위한 수업 녹화, 소통 위한 오픈채팅방

“학생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가 학생을 위해 존재한다.” 미 피츠버그대학 도널드 골드스테인 교수의 교육철학이다. 그가 말했듯이 학생은 교수의 소비자이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성과다. 교육자는 학문에 대한 소비자(학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적 욕구를 만족시켜 한 과목의 수업을 이수하기 전보다 그 후가 더 나은 성과(학생)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즉, 필자의 수업을 선택해준 소비자(학생)에게 서비스 마인드는 필수다. 예를 들어, 대면수업 시 공결사유(코로나19, 예비군 등)로 결석자가 있으면, 현장수업을 녹화하여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될 수 있게 했다. 또한, 학생에게 교수는 아무래도 어렵기에 조교를 통해 수업에 대한 건의사항이나 질의 사항을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도록 오픈채팅방도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비스를 올바르게 제공하기 위해 교수는 학생을 알아야 한다. 필자의 모든 수업의 첫 시간 과제는 자기소개서다. 필자는 이 자기소개서를 통해 학생의 사전 지식 수준을 파악하고 강의와 관련한 건의사항을 파악한다. 가령, 최근에는 고등학교에서 행렬을 배우지 않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많다. 필자가 겪은 교육과정과 현재 대학생의 교육과정이 다를 뿐만 아니라,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 폭이 넓어져 학생 간 배경지식도 다르다. 또한, 강의에 대한 학생의 고민을 상세히 들어 수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참고로 활용하기도 한다.

비대면 수업 때도 필기·수강 태도 확인

실시간 비대면 수업은 온라인 수업 특성상 오래 집중하기 어려워 자주 쉬는 시간을 가진다. 무조건 휴식이라기보다 ‘일방적 강의방식’을 쉬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소모임을 활용한 토론시간이 한 예다. 3~4명의 학생을 한 그룹으로 묶어 소모임을 배정하고 각 소모임 방을 개설하여 자유롭게 토론하도록 했다. 이 시간에 학생들은 수업 중 이해가 안 됐던 내용이나 필기를 놓친 부분을 서로 묻고 답하며 잠시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복습을 하게 된다. 소모임 개설은 매번 임의로 학생을 배정하기 때문에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 간에 소통하는 기회도 된다.

이경북 교수는 판서를 보여주는 화면 오른쪽 화면을 통해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지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사진=이경북

필자는 비대면 수업 시 필기 시스템을 갖춰야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강의록만 화면에 띄워놓고 수십 분을 이야기하는 수업은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집중력 유지도 어렵게 한다. 학생들이 판서를 따라 쓰면서 강의의 흐름을 따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실시간 비대면 수업의 경우, 필기 시스템과 별도로 송출되고 있는 영상을 관찰한다. 보통 필기가 가능한 노트북으로 강의를 개설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PC로는 개설된 강의실에 접속하여 필기가 잘 보이는지, 강의록이 공유된 상태인지, 학생들의 수강 태도는 양호한지 확인한다.

이번 기고를 준비하며 지난 강의를 되짚어보니 놀랍게도 강의계획서부터 시험결과 공지까지 지도교수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만큼 대학교수는 학생들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무거운 자리임을 느꼈다. 필자는 이제 막 교수의 길을 걷게 되어 교육자로서 부족함이 매우 많다.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려고 한다.

이경북 공주대 교수(지질환경과학과)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 에너지시스템공학부에서 석유공학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석유공학회 편집이사, 대한자원환경지질학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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