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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며느리도 모르는 신당동 떡촌의 비밀
[중앙대]며느리도 모르는 신당동 떡촌의 비밀
  • 유석천 편집위원
  • 승인 2006.08.07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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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거리

서울 중구 신당동. 중부소방서를 끼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백여 미터 골목 양쪽에 스물 한곳의 떡볶이 가게가 줄지어 있다. 원조 ‘마복림 할머니네’가 1953년에 터를 잡았다고 하니 신당동 떡볶이 동네 역사는 벌써 50년이다. 춘장을 살짝 넣은 즉석 떡볶이가 인기를 끈 70년대 초부터 따져도 30년째지만 떡볶이와 쫄면, 어묵 등을 즉석에서 볶아먹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가업을 이어받는 곳이 많아 ‘마복림 할머니 막내 아들네’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런 신당동도 경제위기를 비켜가지는 못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손님이 줄고 있는 것이다. 떡볶이 동네의 토박이 주민 정씨 왈 “예전 같으면 떡볶이 동네에 차손님이 웬 말이냐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요즘은 주차까지 해주며 그들을 받기에 바쁘다”고 한다. 걸어서 십분 거리에 두산타워 등 동대문 상가로 인해 젊은이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도 떡볶이 동네의 활력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동대문 상가에서 먹고 노는 게 모두 해결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떡볶이 동네 가게 사장들의 위기의식은 날이 갈수록 높아갔을 것이다.

그래도 살아남는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그 곳은 항상 넘치는 손님으로 북적였을 터. 바로 ‘맛의 비결 며느리도 몰라’라는 표어를 걸고 당당하게 떡볶이 동네 입구에 자리한 ‘마복림 할머니네’다. 맞은편에 자리한 ‘고인돌’, ‘토박이’, ‘잘난이’, ‘우리끼리’, ‘다사랑’, ‘꾸러기’, ‘조家네’ 등의 가게는 연합하여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물론 떡볶이의 원조라는 ‘마복림 할머니네’의 인지도를 따라잡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반 식당과 별 다를 것 없는 그 곳과 차별된 분위기로 승부수를 걸면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당시가 2000년 8월경이었다.

드디어 일곱 군데의 떡볶이 가게가 자유분방하고 활기찬 공간 ‘아이러브유’로 탄생한다. 떡볶이 가게 하나가 열 평 정도의 협소했던 데 반해 일곱 군데가 합쳐지자 오십 평 남짓의 공간이 마련되었다. ‘마복림 할머니네’와 견줄만한 규모로 탈바꿈한 것이다. 가게 안에는 항상 추억의 팝송과 가요가 울려 퍼졌다. 그리하여 ‘아이러브유’는 먹는 즐거움과 더불어 DJ의 음악 소개와 통기타 가수의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휴식처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마복림 할머니네’ 못지않게 인기를 끈다.

이렇듯 신당동 떡볶이 동네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가 숨어있다. 자본주의사회는 생산과 소비수준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독점자본이 성립되면 독점자로 하여금 독점이윤을 획득하게 할 뿐 아니라 생산제한으로 실업자를 배출하고 가격의 인상으로 소비대중을 압박할 수도 있다. 만약에 신당동 떡볶이 동네의 일곱 군데 가게가 ‘마복림 할머니네’에 대응할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면 ‘마복림 할머니네’의 ‘독점이윤’을 허락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결국 피해는 소비자가 입었을 게 분명하다. 듣자하니 ‘마복림 할머니네’가 떡볶이 동네에서 가장 잘 나갔을 당시에는 주인뿐만 아니라 종업원들마저도 기세가 대단하여 손님들에게 무척 불친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러브유’의 위세로 ‘마복림 할머니네’의 불친절함이 사라졌다. 맛은 거기서 거기니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외면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친절함으로 손님을 맞았다. 허름하게 모여 있던 일곱 군데의 떡볶이 가게가 냉혹한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편을 마련한 덕분에 소비자들도 더 나은 먹거리 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오늘도 ‘아이러브유’는 신세대를, ‘마복림 할머니네’는 “그래도 원조가 낫지”라고 말하는 기성세대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두 가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한 실례이다. 그 누가 떡볶이 동네의 입구 양쪽에 마주 선 ‘아이러브유’와 ‘마복림 할머니네’를 보며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한 ‘경쟁’의 결과라고 비판하겠는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두 가게의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 중앙대 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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