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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와 경제학자의 비밀 프로젝트
역사학자와 경제학자의 비밀 프로젝트
  • 조대호
  • 승인 2023.03.06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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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학은 지금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지난 1월 정보매체 <인텔리전스 온라인>은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을 한 조(組)로 꾸려 비밀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해당 매체는 이 비밀 프로젝트에서 역사학자에게는 중국이 3년간 지속해오던 봉쇄정책이 불가피했다는 것을 증명할 근거를 찾아 정당화시키는 임무가 주어졌다고 했다. 경제학자에게는 보다 실질적인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예를 들면, 봉쇄된 상황 속에서 내수시장을 어떻게 활성화(세칭 쌍순환전략)시켜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민심을 보듬을지에 대한 실현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역사학자에게는 봉쇄정책을 정당화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고 이를 인민들의 사상무장과 결합시키는 방안을 요구했다면 경제학자는 중국 내 도시 혹은 중국 전체가 봉쇄되었을 경우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 계획은 공교롭게 필자와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인 까오샹(高翔)이 책임지고 준비한 것이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국책연구기관장급인 ‘중국사회과학원장’을 맡고 있다. 덧붙여 설명하면 그는 필자의 지난 원고에서 소개한 「명청시기 ‘폐관쇄국’ 문제신탐」을 쓴 주인공이었다. 한동안 중국 사학계가 그의 논문 때문에 크게 술렁였었다. 역사적 사실을 현실 정치와 접목시켜 도출한 다른 해석에 대한 민간과 학계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복건성에서 선전부장으로 근무한 적이 있는 까오샹은 프로파간다를 다룰 줄 아는 능숙한 관변학자임이 확실하다.

중국은 코로나 방역정책이 완화되음에도 불구하고 돌연히 학자들을 소집하여 이러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입장에서는 지난 코로나19 시기에 중국의 방역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이에 대한 역사적 정의까지 내림으로써 더 이상 다른 주장이나 의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또한,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양안(兩岸)간 유사상황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가상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역사학자에게 주어진 임무는 그동안 철통같았던 중국방역이 국가와 당 그리고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전제 아래 일련의 여러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에 있다. 쉽게 말하면 어떠한 조치든 그것은 국체(國體) 유지를 위한 것이므로 전후사정보다는 의도와 불가피성에 주목하고 결과적으로 코로나로부터 승리했다는 두 글자에 방점을 찍겠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경제학자가 맡은 바는 역사학자들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앞으로 있을 양안간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중국은 지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천연자원을 가지고 용케 살아남는 모습을 보았고, 중국의 일개 도시 봉쇄가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중국은 교훈을 얻기에 충분했다. 방역정책으로 인해 중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그동안 아랑곳하지 않고 봉쇄정책을 고수해왔다. 설령 내부의 여러 모순이 잠재하고, 지방재정이 고갈 직전인 상황이었으나 중국은 끝내 버텼다. 사실상 코로나 3년은 중국이 대만에 대한 실질적인 무력 충돌이나 여하한 다른 행위가 행해질 때 국제사회로부터의 가해질 규제에 대한 대비전(戰)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향후 5년 내외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관계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유추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의 선제적인 공격 없이는 대만 스스로가 중국에게 통일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이 무력 수단을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과 각종 규제가 가해질 것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까닭에 중국이 이토록 내수시장만으로도 버틸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에  매달린 이유도 서방의 제재에도 중국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난 청대에 중국인들은 사실 문호개방을 하지 않았어도 충분히 건재할 수 있었다. 현재 주류 역사학의 이 시대에 대한 이해는 중국의 눈을 뜨게 해준 서방의 함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문호개방은 해당 국가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는 것이지 타자에 의한 것은 강제일 수밖에 없다. 까오샹은 이 점에 주목했다. 즉, 전통적인 해석에 대한 물음표와 작금의 정치 현황에 비춰 역사를 재해석한 것이었다. 물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과 봉건왕조 청이 직면한 여러 내외적 조건은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어간다는 점에 주목했고 현 상황에서 지난 3년의 시기에 대한 정리와 함께 전민(全民)을 대상으로 한 정신적인 무장에 필요한 설득력 있는 이론이 필요했다. 그것은 고금 이래 경제학자가 아닌 역사학자들이 자주 해왔던 중요한 작업의 하나였다. 확실히 중국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이들이 이토록 프로파간다를 중시하는 것도 그 나라만의 생존방식일 것이다. 다만 역사학자들의 칼날 같고 매서운 눈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조대호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
중국인민대학 역사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시베리아지역 화교와 한인 공산주의자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근현대사가 전공이다. 주요 연구영역은 중국공산당사, 국제공산주의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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