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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준비 부족한 FTA’, 그래도 잘 하려면
시각: ‘준비 부족한 FTA’, 그래도 잘 하려면
  • 박수진 기자
  • 승인 2006.07.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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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期戰으로 가야 승산

한미 FTA에 대한 비판 중 가장 자주 제기되는 것은 ‘준비 안 된 협상’이다. ‘미비한 준비’는 한일 FTA와 비교해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다.

□ 대차대조표 하나 없어 찬성 측도 ‘걱정’= 한일 FTA는 준비기간만 5년이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일본 아세아경제연구소가 1998년 12월부터 2000년 4월까지 공동 연구를 진행, FTA 체결이 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검토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 기계 부분이 취약하고 일본은 농수산업이 취약하다는 등 취약점에 대해서도 공유하고 이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논의하는 방식이었다. 

이어 그 결과에 대한 양국 경제인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하는 ‘한일 FTA 비즈니스 포럼’을 설치해 의견을 교환한 후 이것을 오피스 레벨로 높여 ‘산-관-학 연구회’를 꾸려 한 차례 더 협상 준비를 했다. 이런 세 단계를 거쳐 최초의 공동연구 시작으로부터 5년 후인 2003년 12월 22일에 한일 FTA 1차 협상이 개시됐다.

한미 FTA에는 이런 과정이 없었으므로 당연히 순수한 경제적 플러스 마이너스에 대한 대차대조표도 없다. 남궁곤 이화여대 교수(국제정치)는 “FTA 체결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함에도, ‘이 시점에, 이런 방식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준비 부족을 탓했다. 서창록 고려대 교수(국제관계) 역시 “경제학 이론으로 보면 FTA 체결은 도움이 되고 자유무역을 통해 ‘윈윈’을 꾀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과 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전혀 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 협상의 세 번째 단계인 ‘컨설테이션’ 부족 = 결국 많은 교수들은 국민 혹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합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손열 중앙대 교수(국제지역학)는 “회담장에 나가는 것은 특정 상대국과의 FTA 체결의 득실을 따진 후에 이에 대한 국내의 합의를 받은 후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일 FTA의 경우 단지 관세율을 낮추는 수준의 고전적 FTA였음에도 많은 합의 및 연구 과정을 거친 반면, 관세 장벽 외에 비관세 장벽인 서비스·투자부문까지 협상 과정에 포함되는 한미 FTA는 제도를 바꾸는 것임에도 합의 과정이 없었기에 반발은 당연하다는 것. 김용훈 수원대 교수(행정학)도 “애초부터 국민에 대한 설득 과정 없이 대외 협상만 진행된 점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협상안을 공개하라’는 반대 진영의 주장과 ‘협상 진행 중에 협상안을 보여주는 곳은 없다’는 정부 측 주장의 엇갈림도 여기서 비롯된다. 최태욱 한림대 국제대학원대 교수(국제정치경제)는 “미국의 경우 이미 각 이익단체와 협상안을 다 조율했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지 이미 알고 있고, 당연히 협상안 공개를 요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종류의 조율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협상안 공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한다.

□ 극단적 찬반론도 준비 부족에서 비롯 = 결국 정부의 ‘준비와 설득’ 없는 협상 개시 및 진행이 양측의 극단적 반대와 지지를 낳았다. 현재 찬성과 반대는 극단적으로 나뉘어 둘 다 극단적 지점에서 찬반을 외친다. 그리고 그 근거 또한 논리의 비약이 심하다. 나프타 체결 12년 째인 멕시코의 부정적 현실이 대표적이다.

김석우 서울시립대 교수(국제관계)는 “멕시코의 경제가 나프타 체결로 현재와 같아졌다고 하는데 나프타를 체결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나을까에 대해서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며 “결국 멕시코는 FTA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논거, 즉 하나의 사례일 뿐 그것이 우리 상황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손열 교수도 “멕시코-미국 FTA는 미국의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해 멕시코의 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하는 고전적 의미의 FTA였고 지금 한국과 미국이 체결하려는 FTA는 그런 수준은 아니므로 멕시코 사례를 한국 상황과 직결시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라고 지적했다.

많은 교수들은 2차 본 협상까지 협상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정부가 보다 나은 방식으로 FTA를 체결할 수 있기 위해서는, 현재의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에서 ‘낮은 수준의 제한적 FTA’로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한, 현재 제시된 TPA 만료 시한까지로는 제대로 된 협상을 체결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장기전으로 가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박수진 기자 namu@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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