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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정치, 돈
의학, 정치, 돈
  • 최승우
  • 승인 2023.02.28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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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스타 지음 | 이종찬 옮김 | 한울아카데미 | 760쪽

미국 의학, 정치, 산업의 역사적 변동을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

미국은 서구의 선진국 중에서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다. 미국의 보건의료 문화는 문화적 특징이 비교적 비슷한 유럽과도 크게 다를 정도로 예외주의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미국 의료의 영향하에 성장해 온 한국 의료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미국 의료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미국 의료의 역사적 변천을 사회과학, 인문학, 의학의 융합적 사유의 지평에서 접근한다.

의학의 전문화, 의과대학과 의학교육, 국민건강보험, 의료수가, 기업의료 등 다양한 주제를 분석한다.

저자는 프린스턴대학 교수이자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보건정책 고문을 지내며 클린턴 보험개혁에 깊숙이 개입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보건의료 전문가다.

1982년 초판이 출간된 이래 퓰리처상(논픽션 분야), 라이트밀스상(사회학 분야), 밴크로프트상(역사학 분야)을 두루 수상한 현대의 고전이다.

이번에 나오는 책은 2017년 원서 개정판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초판 출간 이래 35년간의 미국 의료의 변화상을 50여 쪽에 달하는 에필로그에 충실히 담아내어 시의성을 더했다.

미국 의료사에 관한 현대의 고전

폴 스타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역작 『의학, 정치, 돈: 미국 의료의 역사사회학』의 원서 개정판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미국 의료의 역사적 변화상을 사회과학, 인문학, 의학의 융합적 사유의 지평에서 분석한다.

1982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되어 퓰리처상(논픽션 분야), 라이트밀스상(사회학 분야), 밴크로프트상(역사학 분야)을 두루 수상한 현대의 고전이다.

이번에 우리말로 출간되는 책은 1982년의 초판을 기반으로 2017년에 ‘에필로그’가 추가된 원서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관점

이 책이 미국 의료와 그 역사에 접근하는 관점은 세 가지다. 첫째, 미국 의료는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과정의 산물이기에, 구조적인 분석과 이야기 역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저자의 방법론적 문제의식은 사회학과 역사학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둘째, 의료의 정치학과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통해 의학을 광범위한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의료는 한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갈등이 첨예하게 일어나는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셋째, 저자는 의료의 문화, 제도, 정책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하는데, 이를 통해 의료사회학의 학문적 존재 근거가 더욱 부각된다.

이 책의 구성

760쪽에 달하는 이 책은 두 개의 ‘권(book)’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사, 권력 그리고 병원’을 주제로 하는 1권은 근대 의학이 아직 형식과 내용을 갖추기 전인 18세기부터 1930년대까지의 미국 의료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의사, 기업, 병원이라는 세 부류의 사회적 행위자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을 시장경제력으로 만들어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의사들의 승리가 힘보다는 믿음에, 권력보다는 문화적 권위에 근거한 결과라고 본다. 미국 의료의 사회구조적 변화에 영향을 미친 다섯 요인들 ― 첫째, 전문화와 병원의 성장에 따른 비공식적인 통제 체계, 둘째, 의료시장에 대한 통제, 셋째, 의사들의 자본주의적 책무로부터의 면제, 넷째, 의사에 대한 대항세력의 쇠퇴, 다섯째, 보건과 제약 시장에 대한 지배 ― 이 서로 결합해 미국 의사들의 권력 확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어서 ‘의사, 국가, 그리고 기업’은 1권의 시기 이후, 특히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의료가 어떻게 기업화되어 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국민건강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미국 의료의 기업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는데, 저자는 이러한 미국적 ‘예외주의’가 미국 의학과 의료에서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탁월하게 논의한다.

1~2권에 이어 2017년 원서 개정판에는 50여 쪽 분량의 ‘에필로그’가 추가되었다. 1982년에 이 책의 초판을 낸 저자는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에 에필로그를 덧붙여 원서 개정판을 펴냈다.

에필로그에는 초판 출간 이후 35년간 미국의 보건의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예리한 분석이 담겨 있다.

그동안 미국 의료는 어떻게 변했을까? 저자는 답한다.

“미국 경제의 25개 업종에 대한 전반적인 견해를 물어본 결과, 최악의 평가를 받은 두 민간 부문은 의료산업과 제약산업이었다.”

지난 35년간 미국에서는 의료의 기업화가 더욱 빨라졌고,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인들은 자신이 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보험료를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보건의료의 덫’에 빠진 상황이다.

저자의 이론적 입장과 주요 내용

폴 스타는 베버(Max Weber)로부터 권위의 개념을 빌려오면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베버의 사회적 권위와 구별되는 ‘문화적 권위’를 제안한다.

양자 간에는 차이가 있다. “사회적 권위는 명령을 통해 행위를 통제하는 반면에, 문화적 권위는 사실과 가치를 정의함으로써 현실을 창조해 낸다”(본문 34쪽).

양자는 가끔 서로 결합되어 나타날 때도 있지만, 사회적 권위가 문화적 권위를 꼭 수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지식 자체보다 사실과 가치의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어 권위의 이론적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의사들의 치료 능력이 향상되어 의학적 권위가 확립되었다는 설명에 비판적이다.

왜냐하면 과학기술의 발달은 의사의 자율성을 침해하거나 자본의 의사에 대한 지배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푸코(Michel Foucault)의 논의와 저자의 견해를 비교해 본다면 더욱 즐거운 책 읽기가 될 것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자본주의가 다양한 의료체계에 적합한 이념이며, 미국 의학이 자본가 계층이나 자본주의 체제의 ‘객관적’ 이해에 의해 발달한 것인지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본문 38쪽).

아울러 저자는 파슨스(Talcott Parsons)가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의사와 환자의 ‘역할기대’ 개념이 환자-의사 관계의 역사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며, 의학적 권위의 제도적 요인을 논의했던 의료사회학자 프리드슨(Eliot Freidson)에 주목했다.

“의사들이 규제의 방식을 좀 더 전략적으로 사용할수록, 의사의 권위를 지지해 주는 법의 강제력도 강도가 세어져 갔다”(본문 42쪽).

아울러 저자는 의학적 권위와 의료시장의 형성을 근본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본다. 권위에 근거해 의사들이 경제력을 확보하게 되면 의료시장의 조직과 질서를 지배할 수 있다.

여기서 의사에 대한 국가의 보호와 함께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도 의사의 시장지배력에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한 사회에서 의사의 자율성과 의료체계에서의 전략적 지위는 의학적 권위의 발달과 의료시장의 형성에 대한 함수관계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 19세기에는 의학적 권위에 거리를 두었던 미국인들이 왜 20세기부터는 의학적 권위를 추구하게 되었는가?

· 19세기에는 심하게 분열되어 재정적으로 불안정했던 미국 의사들이 어떻게 20세기에는 단결해 전문직으로 성장했는가?

· 병원, 의과대학, 클리닉 등 의료기관들이 왜 미국에서 제도적 형태를 뚜렷이 갖추게 되었는가?

· 왜 병원은 의료에서 중심적인 제도가 되었고 보건은 그렇지 못했는가?

· 왜 미국에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없는가?

· 왜 미국에서는 다른 보험제도보다 블루크로스와 상업적인 배상보험이 민간보험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 왜 미국 연방 정부는 의료조직의 변화가 없는 성장 지향적인 정책에서 성장을 규제하는 재조직 정책으로 입장을 바꾸었는가?

· 의사들은 오랫동안 근대적 기업의 통제에서 자유로웠는데, 왜 지금은 기업적 보건의료 제도의 형성을 지켜보며 심지어 참여하고 있는가?

이 책이 한국 의료에 주는 시사점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개발도상국들의 보건의료 분야에 광범위한 지원을 제공했다. 이 나라들에서 미국 의학은 본보기가 되었고 미국 의료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세계화 시대에 미국의 다국적 의산복합체와 제약회사가 세계의 의료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도 이러한 국제적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사정도 다르지 않아 1945년 독립 이후로 한국 의료는 미국 의학, 의술, 의료의 실험실이 되어왔다. 시계를 30년 전으로 돌려보면, 한국의 대기업인 현대, 삼성, 대우는 대형 병원과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데 뛰어들었다.

바로 폴 스타가 지적한 의료의 기업화 흐름이었다.

그 뒤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흐르고 이제 한국의 병원과 의료문화는 기존의 의과대학과 대학병원들이 아닌, 현대와 삼성이 세운 기업병원들과 경쟁하는 구도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저자의 예리한 역사사회학적 분석은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의학적 상황과 의료 현실을 규명하는 데,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들이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최승우 기자 kantman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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