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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역사: 나의 서양사 편력기
삶으로서의 역사: 나의 서양사 편력기
  • 김재호
  • 승인 2023.02.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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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삶으로서의 역사: 나의 서양사 편력기』 이영석 지음 | 아카넷 | 376쪽

한국 사회에서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를 가로지르는 풍경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압축적 근대의 서사에는 단절과 혼란, 갈등이 점철되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온 어느 지식인, 그것도 한 세대 이상 역사연구를 해온 역사가의 삶이라면 거기에는 조금 더 주목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객관적 진실이라는 도달할 수 없는 꿈을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존재가 역사가라고 할 때,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그의 생애와 지성사가 펼치는 풍경에 곡진한 사연이 담겨 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1953년생인 저자는 논문과 저술, 번역 등 여러 방면에서 국내 서양사학계의 내로라하는 학자로 손꼽힌다. 30년 이상, 영국 사회사, 경제사, 노동사, 사상사, 제국사, 비교사 등을 연구하면서 영국사를 중심으로 연구의 지평을 지속해서 넓혀왔다. 역사가 조지 트리벨리언의 표현을 빌자면 “기쁨을 경멸하고 근면한 날들을 살아”온 학자이며 “그의 온 생애를 만족스럽게 소진하며, 매일 아침 연인처럼 열심히 도서관과 문서고로 다가선” 학자이다.

저자의 논저목록에는 연구서 10권, 연구논문 108편, 공저 및 편저 14권, 번역서 5권 등이 올라 있다. 지방대학의 교수로서 열악한 도서관과 빈곤한 연구지원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뤄낸 이러한 학문적 결산은 ‘직업으로서의 학문’에 충실했던 학자의 성실함을 대변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연구풍토에서 서양사학자가 대면했던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측면의 내용은 무엇이었는지, 또 그러한 내용이 역사연구의 흐름에 어떤 변곡점을 가져왔는지 등을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질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의 탐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저자의 내력을 들춰보면 궁벽한 산촌에서 자라난 유년시절을 비롯해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반민주주의와 억압, 산업화와 민주화의 열풍,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돌발, 그리고 미시사와 신문화사의 유행 등이 그의 학문적 여정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게 된다. 저자는 이제 정년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과연 “나의 탐구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회고적 질문을 던져본다. 자신 삶의 경험과 역사 탐구의 과정을 연결해 ‘삶으로서의 역사’를 그려봄으로써 학자로서의 정체성과 ‘역사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럼으로써 역사 연구란 “역사가의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이 과거의 사례를 투사해 일으키는 일종의 공명현상”임을, 역사가는 자기 나름의 스타일과 자기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과거를 투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책은 어느 서양사학자의 생애사이자 역사가로서의 연구 궤적을 보여주는 지성사다. 자신이 고민하고 방향 전환하고 몰두했던 연구대상과 자신의 탐구의 열망을 젊은 연구자와 일반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가 진솔하고 촘촘하게 배어 있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자신이 처한 시대상황이 어떻게 연구 대상의 선택과 집중에 영향을 미쳤는가를 탐색하는 과정이 치밀하다.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메타-역사서술이라 부른다.

1~4장은 저자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비롯해 역사연구의 방향을 정립하게 되는 과정이, 5~11장에서는 30여 년간에 걸친 역사연구의 궤적과 방향 전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과 방황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공장법 연구를 포함해 정치사와 사회사를 거쳐 포스트모더니즘, 여성사, 미시사, 노동사 등에 이르는 탐구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는 역사학과 역사가로서 삶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통찰을 담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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