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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위기의 한국경제, 무엇이 문제인가
  • 최정표 / 건국대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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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기능 마비된 한국경제, 구조조정 목표는 시장 복원
지난 9월 18일 이른바 ‘블랙먼데이’ 이후, 한국경제가 또다른 위기상황에 직면했다는 전망이 제출되기 시작했다. 언론은 앞다투어 ‘경제위기’시리즈를 내보내고 있다. 정부는 제2 구조조정을 내년 2월까지 마치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한국경제, 과연 위기인가, 그 위기의 성격과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신문사는 ‘위기의 한국경제’를 진단하기 위해 다섯분의 경제학자들 초대했다.
최정표 교수에게는 ‘잠재적 위기’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구조조정’에 대해, 그리고, 정운찬, 이병천, 조원희, 김기원 등 네 교수에게 위기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 들어보았다.

●구조조정과 한국경제의 개혁

시장기능 마비된 한국경제, 구조조정 목표는 시장 복원

최정표 / 건국대·경제학
기업 경영에 어려움이 있고 부실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경제제도와 여건에 따라 그 해결 방법은 다를 것이다. 그런데 소위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나라에서는 그 처리 방법이 거의 비슷하다.
경영상의 문제들은 빠르게 외부에 노출된다. 말하자면 기업 형편이 빠르게 시장에 반영된다. 투명경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또 문제가 있는 기업은 대외신인도가 떨어지고 주가가 하락한다. 그러므로 그 기업은 당장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아마도 이런 것들이 시장에 노출되기 이전에 이미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에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다. 일단은 최고경영진에 대해 책임 추궁이 이루어진다. 경영실수가 분명하다면 최고경영진은 교체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책임경영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이다.
새 경영진은 철저한 구조조정으로 문제를 수습하고 기업을 정상화시킨다. 이 기업은 새로운 기업으로 탈바꿈하여 다시 시장의 신뢰를 받는다. 만약 이렇게 해서도 그 기업이 정상화되지 못하면 M&A 등에 의해 다른 기업에게 먹히거나 청산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경쟁력 있는 기업만 살아 남는다. 경쟁력이 없는 기업은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투명경영·책임경영 없는 기업

그런데 우리 나라의 기업들에서는 이런 것을 관찰하기가 어렵다. 우선 경영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외부에서는 잘 알 수가 없다. 투명경영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채권단에서도 잘 모르고 주식시장에서도 잘 모른다. 문제를 안은 채 그대로 계속 굴러간다. 더 이상 수습이 어려울 단계에 이르러서야 외부에 노출된다. 그리고 온갖 곳에서 야단법석이다. 특히 정부가 나서서 난리를 피운다. 시장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부도단계에 이르러도 최고경영진은 그대로 자리를 유지한다. 심지어는 부도가 나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책임경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무능한 경영으로 회사를 부도로까지 이끈 당사자가 그 회사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나서고 있는 형편이다. 총수라고 하는 최고 경영자는 회사가 망해도 물러가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대기업이다. 이런 대기업들이 망하면 경제에 대한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정부가 나서서 난리를 피울 뿐이다. 수습이래야 부실의 부담을 국민들에게로 떠넘기고 부실을 일으킨 당사자는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이와 같이 우리 나라에는 시장이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시장이 기업 사정을 제대로 반영해 주지도 못하고 문제가 생긴 기업에 대한 교정작업도 전혀 해 내지 못한다. 시장이 완전히 망가져 있는 것이다. 정부는 걸핏하면 시장에 맡기겠다고 하는데 시장이 아예 없는데 어떤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인지.
IMF 금융위기 이후의 기업 및 금융 구조조정에서 이미 목도한 것처럼 시장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했고, 정부 역시도 무능했기 때문에 제2의 위기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완결되어 우리 경제에 시장을 복원시켜 놓았더라면 정부가 또 나서서 제2차 구조조정을 한다고 난리 피울 이유는 없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목표를 시장 복원에 두어야 한다. 이것만이 궁극적 해결책이다. 시장복원이란 기업에 문제가 있을 때 이것을 시장에서 즉각 감지할 뿐만 아니라 이를 고쳐나가도록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장에 의한 조기경보체제와 조기 교정작업이 작동하도록 제반 제도와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겉으로 나타난 문제만 임시방편으로 때워두는 미봉책만 쓰고 있다. 지난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런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넣고도 시장복원에 완전히 실패했다. 또 50조원을 추가 투입한다고 하는데 이것도 미봉책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그 막대한 공적자금은 회수하기 어렵고 국민들은 엄청난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는 워크아웃, 법정관리, 화의 등으로 연명해 가는 기업을 다시 실사하여 회생 불가능한 기업은 퇴출 시키고, 그 외의 기업도 부실 가능성이 높으면 과감히 퇴출 시키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정부가 직접 해 낼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아마도 말로만 끝날 공산이 크다. 정부가 회생 불가능 기업과 부실기업을 가려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려낸다고 해도 퇴출 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것은 시장만이 해 낼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이 해내야 부작용이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장을 복원시키는 일에 나서야 한다. 시장은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의 확보 및 관치 청산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정부는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이 확보될 수 있는 제반 제도와 관행을 도입하는 일에 구조조정의 최우선을 두어야 한다. 현행 상법이나 제반 경제관련법제 하에서는 결코 시장이 복원될 수 없다. 이들은 대부분이 과거 정부주도 하의 고도성장기에 도입된 것들이다. 우리 경제가 이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야 할 단계에 와 있는데도 제반제도와 관행은 여전히 정부 위주로 되어있는 과거의 것들에 얽매여 있다.

관치청산 없이는 구조조정 실패

이제라도 정부는 과거의 제도를 폐지하고 새 제도를 도입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쉬운 예를 들자면 집중투표제, 집단소송제, 단독주주권 등은 우리 경제에 시장을 복원시키기 위해 필요한 제도들인데도 정부는 개혁 개혁하면서도 어느 하나 제대로 도입하지 못했다. 시장을 작동하도록 하는 새 제도를 만드는 것이 구조조정의 목표여야 한다.
정부는 1백조원이라는 공적자금을 투입케 한 부실채권에 대해서도 이 부실을 일으킨 경영진에게 아무런 책임을 묻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이런 부실경영은 계속 있기 마련이고 책임경영은 결코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는 우리 경제에 결코 시장이 복원될 수 없고, 구조조정은 성공할 수 없다.
공적자금 투입은 부실해소가 아니라 기업과 금융부문에 시장을 복원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업과 금융에 투명성과 책임성이 확실히 확보되어 모든 문제는 시장이 풀어 나가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새로운 제도와 틀을 만들고 이것들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감독하는 역할만 해야지 직접 나서서 그 제도와 틀을 운영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관치가 없어지지 않고는 시장은 복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복원되면 금융이 기업을 감시하고 기업이 금융을 순환시킨다. 기업에 부실의 징후가 있으면 조기에 경보장치가 울려 시장에서 교정작업에 들어간다. 정부는 이런과정을 그저 지켜보기만하면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시장복원과 관치청산에 최고의 가치를 두어야한다. 구조조정은 이 가치를 추구할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디제이노믹스에 대한 학계의 평가

실질정책 뒷받침 안된 ‘실체없는 이념’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신의 국정이념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이념을 내세운 바 있다. 여기에 지난 99년 12월 IMF 2주기를 맞아 내놓은 “생산적 복지”라는 개념이 추가됨으로써 이른바 디제이노믹스(DJnomics)가 완성됐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2년 반이 지난 지금, 디제이노믹스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못해 가혹할 지경이다.
지난 여름 발간된 계간 ‘다리’지에서 벌어진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치학)와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간에 벌어진 논전은 디제이노믹스의 현주소를 가늠하게 해준다. 대통령 정책기획위원회 핵심멤버로서 김대중정부의 국정이념을 다듬는데 관여한 임혁백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이념으로 내세움으로써 국가, 시장경제, 시민사회의 힘의 균형을 통해 새로운 국가운영관리의 체계모델을 제시”했다고 정리하며, “국민적 최소(national minimum)”를 보장하는 생산적 복지가 추가됨으로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상호강화하면서 발전할수 있는 물질적 조건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정부의 시장정책 또한 시장지상주의가 아니라, 국가가 시장의 규율을 강제하는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라는 것이다.
이같은 임혁백 교수의 해석에 대해 손호철 교수는 “문제는 개념이 아닌 현실”이라며, 김대중 정부의 정책은 ‘종속적 신자유주의’로 “사상 최고수준의 국내경제의 외국자본장악, 사상 최고의 재벌집중도, 사상최고의 고용불안, 최악의 사회불평등, 최다 빈민층”을 양산한 ‘현실’이 문제라고 통박한다. 손 교수는 국가에 의해 시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질서자유주의’ 자체가 이미 ‘신자유주의’라고 못박고 있다.
우리신문의 인터뷰에 응한 경제학자들의 견해 역시 손 교수의 비판과 상통한다. 정운찬 교수(서울대 경제학)는 “디제이노믹스는 중경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시장주의 학자들과 김재익 관료사단이 만들어낸 비빔밥”이라며, “지금 경제구조를 두고 볼 때, 시장주의도 민주주의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고 혹평한다. 시장주의라고는 하지만, 국가가 개입해야할 곳에는 시장논리에 맡기고, 개입하지 말아야할 곳에 개입하는 역설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디제이노믹스는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결론. 이같은 비판은 좌파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이병천 교수(강원대 경제학)에게서도 확인된다. 이 교수는 디제이노믹스가 “한국형 무책임자본주의를 신자유주의에 맡긴 것으로 정상적인 신자유주의의 노선에도 못미치고 있다”고 말하고, “초기에는 시장주의만 있었지만, 갈수록 민주주의조차 훼손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집권후반기에 도입된 ‘생산적 복지’도 도마위에 올랐다. 조원희 교수(방통대 경제학)는 “생산적 복지는 구조개혁이 만들어낸 모든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진 미봉책”이라 지적한다. 국민이 국가로부터 생계를 보장받을수 있다는 기본이념은 상당히 진보적임에도, 현실에서는정책실패를 호도하기 위한 정책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 손호철 교수 역시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잘못된 시장 맹신의 신화

김기원 교수(방통대 경제학)는 디제이노믹스의 성과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현실적 실패를 들어 비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시장은 한편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임과 동시에 극복되어야 한다는 ‘이중적 과제’를 제기한다. 시장의 완성은 근대의 완성이고, 시장의 폐해를 극복하는 것은 근대를 넘어서는 것이다.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좌파의 시각도 문제지만, 시장을 맹신하는 정부의 시각은 더 큰 문제이다”라고 지적한다. 재벌이 총수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은 전근대적인 체제이지만,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근대적 독점의 문제이므로, 근대와 근대극복의 동시적 과제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경제팀의 정책을 시장을 맹신하면서도 실제 집행은 시장에 맡기지 않은 ‘머리와 손발이 따로 노는 형국’이라고 지적한다. 시장의 맹신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김대중 정부의 대외정책이다. 글로벌화는 자본주의 자체의 속성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측면이 있지만, 세계시장은 필연적으로 견제장치로서 ‘세계정부’ 내지는 국제적 시민연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글로벌화는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 노동의 국제적 연대와 발맞추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김대중 정부가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현정권이 소수파 정권으로 태생부터 한계를 가지고 있었고, 기득권의 저항을 뚫기에는 힘이 부쳤다는 것이다. 임혁백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하고 있고, 조원희 교수나 김기원 교수 또한 김대중 정부가 “경제구조를 민주화할 수 있는 정치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단정하고 있다. 현 진념경제팀이 오랫동안의 관료생활을 통해 개혁대상인 재벌과 유무형의 유착관계를 맺어왔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현 경제팀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는 정운찬 교수는 경제팀의 교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김재환 기자>

●경제학자의 시각

관건은 구조조정,경제팀 교체해야

정운찬 / 서울대·경제학
“경제가 위기국면을 맞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경제위기는 언론의 평가와 정부의 설명처럼 단순히 유가상승, 대우차와 한보철강 매각 불발 사태 등 ‘외부충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지연과 실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기순환적인 면에서 악재는 언제나 불거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악재를 맞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구조를 만드는 경제의 체질개선이다.
우리 경제문제의 핵심은 과잉투자로 인한 과잉시설, 기업의 현금흐름의 왜곡,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들 문제의 처리가 관건인데,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은 온존하고 있고, 재벌의 과잉시설 또한 정리된 게 별로 없다. 공공부문의 개혁도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현대의 금강산 투자, 개성공단 건설에서 보듯 재벌의 과잉투자는 늘고 있는 형편이다. IMF사태를 조기졸업한 이후 정부의 경제정책은 구조조정보다 거시경제지표의 호전만을 믿고 성장위주로 치우쳤다.
이 또한 현재의 위기를 촉발시킨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경기가 호전되면서 정부의 강도높은 개혁은 재벌의 반발과 더불어 시들해졌고 이는 현재의 경제팀에 이르러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결국 구조조정의 칼날이 무뎌지면서 시장의 정부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있다. 대우차와 한보철강의 매각문제를 조기에 마무리 짓지 못한 것에서 보듯 정책의 실기 또한 적지 않았다. 관료위주의 경제팀도 문제다. 개혁보다는 보신에 치우친 관료들에 의한 재벌과 금융개혁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정부는 뒤늦게 2단계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했지만, 근본적 구조개혁에 이르기에는 미흡하다. 부문별 개혁의 완성시기를 따로 잡다가 대통령의 말이 떨어진 이후 하루아침에 내년 2월로 못박은 것도 정책이 일관되게 결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점에서 긴급한 것은 경기악화가 아니라 구조조정의 실패이며 정부부문의 신뢰저하이다. 현재 우리 경제의 관건은 성장이 아니라 구조조정이다. 정부부문의 신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경제팀은 하루빨리 교체돼야 한다.” <안길찬 기자>

재벌 소유·지배구조 혁파 과제

김기원 / 한국방송통신대·경제학
“지금 한국경제는 불안정한 구조와 취약한 위기관리능력으로 외적변수가 악재로 작용하면 위기직전의 상황으로 갈수 있는 형편이다. 그동안의 개혁 중 문제가 되는 것은 금융부문과 기업부문이다. 금융부문은 하드웨어적 측면에서는 부실처리가 제대로 안되었다는 점, 소프트웨어적으로는 부실발생을 막을 수 있는 선진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이다. 공적 자금을 투입한다면, 적기에 적정량을 투입해서, 부실자산을 깨끗이 처리했어야 했다. 금융기관이 효율성과 공공성을 확보해서 국민에게 부담이 안 가도록 자금 중개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권이 재벌의 사금고화 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지배하는 경우는 자본주의 세계 어디에도 없다.
재벌개혁은 중복투자 등 과잉생산의 문제, 재벌내부의 의사결정구조개혁, 재벌과 국민경제 사이의 균형적 발전이 중요하다. 정략적인 고려 때문에 뇌사상태의 기업을 그대로 두는 상태에서는 재벌개혁이 어렵다. 재벌의 가장 큰 문제는 황제경영과 선단식 문어발 경영인데, 이중 황제경영을 뒷받침하고 있는 소유와 지배구조의 개혁이 핵심적 관건이다. 사외이사제도 형식에 그쳐버리고, 재벌 내부의 견제,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 불법변칙세습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아 법학과 교수 40명이 삼성의 이재용씨에 대한 집단소송을 걸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재벌 내부의 집중이 심해져 삼성의 예를 보자면, 반도체만 잘못되면 한국경제가 휘청대고, 이건희가 한번 판단을 잘못하면 국민경제가 흔들리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이다. 노사관계도 선진화되어야 하는데, 지금 문제는 잘못은 정치권과 재벌총수, 관료가 해놓고 노동자들에게는 생존권을 박탈시키는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생산적이고 참여에 기초한 노사관계가 정립되어야 하고, ‘부실책임과 부담능력에 상응한 고통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의 관료들이 재벌과 오랫동안 연계되었던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인 개혁은 현정권 하에서는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한다.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이 그나마 개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0여년 이상 야인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김재환 기자>

금융종속 심화, ‘무책임’ 자본주의

이병천 / 강원대·경제학
“현재의 경제위기는 단순히 경기순환으로 설명할 수 없다. 경기의 호황과 불황은 어느 경제에나 존재한다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몇몇 외부충격과 거시경제지표만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는 우리경제의 불안정성과 구조적 모순에 있으며 지금의 위기는 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요인과 성격은 ‘금융 종속의 심화’와 ‘한국형 무책임 자본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의 젖줄인 금융이 이미 전면개방을 통해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한지 오래다. 증권시장을 고리로 세계자본시장에 국내 금융권이 연동되면서 작은 흔들림에도 국민경제가 요동치는 취약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도 국내 금융시장은 신용경색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극소수 재벌기업에는 돈이 남아돌지만 다수의 중소기업은 돈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저축과 투자의 순환 메커니즘의 실패에서 오는 국내 시장금융체제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더 위태로운 상황은 이른바 한국형 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병폐일 것이다. 일부산업을 근간으로 한 과잉중복투자, 자금흐름의 왜곡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상호견제가 이뤄져야 할 정부, 금융, 재벌간의 체제가 오히려 유착관계로 변질되면서 더욱 심화돼 왔다. 이러한 과제들이 청산되지 않으면서 국민경제 재생산의 ‘내발적 매커니즘’은 차츰 파괴되고 있고 공동화될 우려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위기는 기업금융의 동반 부실의 재생산과 한국형 무책임 자본주의 그리고 종속적 금융화가 낳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정부는 위기가 심화되자 40조원의 추가 공적자금 투입을 계획하고 있지만 금융부실과 기업부실이 나아진 것이 없는 형편에 악순환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한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를 막는 길은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정상화, 우리경제의 특수성을 감안한 새로운 정책의 방향전환과 국민경제의 모델 구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국민경제의 양극화이다. 공정한 고통분담이 상실된 채 한쪽의 희생만 강요하는 정책의 편향은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요소이다.” <안길찬 기자>

시장 아닌 정치적 해결책 필요

조원희 / 국민대·경제학
“한국경제는 낡은 집에 비유될 수 있다. 낡은 데다가 수리도 안돼 큰 비만 한번 온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외환위기 때와 같은 위기는 아니지만,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이루어진 개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경제가 장기간 침체에 빠지는 위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취약한 국내 경제구조에 고유가나 미국경제의 경착륙(hard landing)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 작용한다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개혁 초기에 부실한 은행권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시장의 신뢰위기를 극복하려는 ‘부채의 사회화’ 정책을 추진했다.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일시적으로 경제가 회복된 듯했지만,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구조의 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경기회복에 도움을 준 것은, 벤처기업에 유입된 상당량의 자금이었다. 벤처는 일종의 숨구멍으로, 벤처를 육성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한국경제의 구조에서 벤처투자는 투기로 변했고, 결과적으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구조조정 부문 중 정부의 의도가 그대로 관철된 것은 ‘노동부문’ 밖에 없다. 결국, 노동자 ‘목자르기’외에, 금융, 기업, 공공부문 모두 제대로 개혁된 것이 없다. 외환위기만 없을 뿐이지, 지금의 상황은 외환위기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재벌개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유/지배구조의 개혁인데, 껍데기 개혁안이 된 ‘사외이사제’가 보여주듯이 근본적인 소유지배구조를 개혁하지는 못하고 있다. 시장논리에 따라 개혁을 하겠다고 하지만, 노동자 같은 힘이 약한 데는 시장논리를 들이밀고, 강자에게는 정치적인 흥정의 논리를 갖다대는 게 지금의 ‘개혁’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정부가 과연 시장논리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래디컬한 정치화가 개혁의 관건이라고 본다. 문제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니,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예컨대, 재벌개혁에서 총수를 견제할수 있도록 노조대표, 채권자대표, 공익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감시이사회등을 두는 것과 같은 방안을 들수 있을 것이다.” <김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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