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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 책 요약한 PPT 요청 당연시...학생들이 책을 사겠나"
"교수들, 책 요약한 PPT 요청 당연시...학생들이 책을 사겠나"
  • 교수신문
  • 승인 2023.02.2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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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시대, 출판 저작권이 위태롭다④ 직격탄 맞은 학술출판

자연과학 분야 전문 출판사인 라이프사이언스는 지난해 9월, 종이책을 불법 복제해 유포한 학생을 고소했다. 출판사는 정가 5만 원인 책을 PDF 파일로 만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1만 5천 원에 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책의 역자와 저작권 양도 계약을 맺고 판매자인 학생을 고소한 것이다. 현재 이 사건은 기소유예 상태다. 

출판사가 저작권 침해 사건을 직접 고소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행법상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출판권과 배타적발행권을 갖고 있지만 저작권을 갖고 있는 피해자인 저자의 동의 없이는 불법 복제에 직접 대응 하기 어렵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지만, 선례를 남겨야 경각심을”

김효중 라이프사이언스 대표(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저작권 선진화추진위원회 위원)는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학생에게 개인적 악감정은 없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런 선례라도 남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수사가 진행돼야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해 대책을 세울 수 있는데, 기소유예 상태라서 이도 어려운 실정이다. 김 대표는 이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헌법 소원도 청구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불법 복제 사실이 확인되면 계속 고소할 생각이라고 했다. 

김 대표가 학생을 고소하기까지는 고민이 많았지만, 출판사의 사정이 절박했다. “600페이지가 넘는 과학 교재를 만드는데 1년 넘게 걸린다. 그림도 사야 하고, 컬러로 만들기 때문에 인쇄비도 비싸다. 학생들이 불법으로 스캔해서 온라인으로 파는 일이 늘어나면 출판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정부도 출판사에게 보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불법 복제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그냥 망할 수밖에 없다.”

출판계는 불법 복제물 생산자나 이용자의 처벌 사례가 있어야 실질적인 저작권 인식 개선이 가능하다고 본다. 책을 불법 스캔하고, 불법 PDF 파일을 사거나 소지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만 고질적인 불법 복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자출판학회장을 맡고 있는 방미영 서경대 교수(광고홍보콘텐츠학과)도 같은 생각이다. “출판 불법 복제물 생산자는 물론 이용자도 함께 처벌해야 한다. 대학교재의 불법 복제 이용자는 대학생이고 장소도 한정된다. 교재를 무단 복제하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는 법이다. 불법 복제물 생산자와 이용자를 함께 처벌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현재 불법 복제물 근절 방안은 불법 복제물 게시자나 운영자 등 생산자 처벌에 방점을 두고 있다. 물론, 저작권 교육과 홍보도 중요하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법 제25조3항에 따르면, ‘학교 또는 교육기관이 수업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공표된 저작물의 일부분을 복제·배포·공연·전시 또는 공중송신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출판계는 대학이 이 조항을 잘못 이해해 교육을 위해서는 무료로 강의자료를 올리고 복사해 쓸 수 있다고 판단해 무차별적으로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수들이 출판사에 요청하는 '책을 요약한' PPT의 경우도, 수업을 하는 데만 활용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학 내 학습관리시스템(LMS) 등에 파일을 올려 두는 것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출판사나 저작권자의 이용 허락을 받지 않고 PPT 강의자료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학생 82% ‘저작권 침해 심각하다’

학생들도 저작권 침해의 심각성을 인정한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낸 ‘2022 저작권 보호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출판 저작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응답은 학생이 82%로 가장 높았다. 20대는 78%가 심각하다고 했다. 일반인을 포함한 출판 콘텐츠 이용자는 76.7%가 심각하다고 했다.  

불법 복제물 근절 방안에 대해서도 ‘출판 불법 복제물 단속 강화를 통한 불법 복제물 삭제 조치 및 경로 폐쇄’가 1순위로 꼽혔고, 두 번째가 ‘출판 불법 복제물 생산자 처벌’이었다. 학생들은 생산자 처벌을 1순위로 꼽았다. 

저작권 침해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대상을 물어보면, ‘출판 콘텐츠 이용자’가 39.2%로 가장 많았다. 두 번째는 온라인 사이트 운영자(26.4%)였다. ‘출판 콘텐츠 이용자’라고 꼽은 응답도 학생이 40.6%로 가장 많았다. 

학술출판계의 대응이 매서워지고 있는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친 3년 동안 대학교재 시장이 붕괴 직전에 다다랐다는 현실이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코로나19 상황은 대학교재 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학술교재 출판사들은 평균 20% 이상의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2021 저작권 보호 연차 보고서에서 밝혔다.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과학기술출판협회, 한국학술출판협회는 지난 2020년 11월 6일,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에 활용되는 학술도서 출판 분야는 비대면 수업의 확산에 따라 불법 복제 및 저작권 침해 사례가 만연하고 종이책 교재의 활용도가 낮아지면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국내 대학교재 시장에서 유일하게 구매율이 높았던 간호·보건 계열도 최근 구매율이 확 꺾였다. 2022년 1학기까지는 교재 구매율이 적어도 90% 이상이었지만, 대면 수업이 다시 시작된 2022년 2학기에는 오히려, 교재 구매율이 60% 이하로 뚝 떨어졌다. 국가고시 자격증을 준비하는 간호·보건 계열 학생들마저도 교재 구매율이 확 줄어든 것이다. 출판사도 교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울지법 “출판사 권리 제한, 적정한 보상 필요”

코로나19 이후에는 ‘불법 복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됐다. 대학가의 복사집도 종이책 제본이 줄어 피해를 호소할 정도다. 무인 스캔방도 늘어나고, ‘셀프 스캔’도 성행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불법 PDF가 속수무책으로 돌아다니는 ‘디지털 불법 복제’가 만연하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은 “디지털 복제는 그 특성상 정확한 통계나 피해를 파악하기 어려워 출판사가 적절히 대응하거나 보상금을 분배받기도 힘들다”며 “서적 불법 복제 문제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2022 저작권 보호 연차 보고서에서 밝혔다. 

출판사는 그동안 불법 복제나 피해 구제에서도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5일, 주목할 만한 판결이 나왔다. ‘수업목적 복제 보상금’ 제도에서 출판사의 권리 침해를 인정하는 판결이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민사부는 저작권법에 따른 ‘수업목적 복제 보상금’ 제도가 출판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관련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출판권자의 권리를 제한해 발생하는 경제적 권익 손실은 장기적으로 출판물 확대·재생산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적정한 보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미 저작재산권자는 해당 저작물의 복제 등에 관한 권리에 관해 보통 대가를 받고 출판권자에게 설정적 승계를 해 준 것으로, 오히려 저작재산권자에 비해 출판권자의 권리가 침해된 정도가 크다고 볼 여지도 있다”라고 판시했다. 

온라인 강의 확대, PPT 요청도 늘어

이번 취재 과정에서 출판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 있었다. 바로 교수들의 교재 증정과 PPT 강의안 요청이다. 
‘디지털 불법 복제’가 만연한 현실에서, 취재에 응한 대다수 학생이 “교수님이 강의자료를 올려주기 때문에 굳이 교재가 필요 없다”고 언급했었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교수들의 PPT 요청이 5~6년 전부터 관행이 됐다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부쩍 늘어나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실태라고 했다. 교수들이 원하는 PPT는 책의 요약정리 본이다. 출판사 관계자들은 대학이 온라인 강의 확대, 혼합형 교육 등을 강화하면서 PPT 강의안 요청도 늘었다고 했다. 

한 대학출판부 관계자는 교수신문에 제보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학기 초만 되면 출판사에 교재 증정 요청을 한다. 강의용 교재 신청을 하면서 교재로 사용하지도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강의자료를 요청한다. PPT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학술출판사 대표의 말이다. “교수가 강의 전에 교재를 미리 검토한다고 PPT 자료를 요구한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니까, 보조자료나 PPT를 만들어 제공한다. 출판사에서 제공할 때는 배포는 하지 말라고 하고 건네지만, 교수가 그 PPT에 살을 붙여서 강의자료로 파일을 올린다. 학생들이 책을 사겠는가.”

지난 20일 취임한 박찬익 한국학술출판협회 신임 회장은 “대학 수업이 디지털 환경에 맞게 변화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라며 “그러나 교수들이 교수 요강에 교재를 선택해 공지하고도 교재 구매를 권하기는커녕, 오히려 PPT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저서나 교재를 출간하는 교수와 학생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출판사의 어려움을 지켜만 보다가 출판사가 하나둘씩 폐업해도 교육이나 사회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까요”라고 되물었다. 

학술출판계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전자책 플랫폼’을 구축하고, 교수와 학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용 부담을 낮춘 ‘반값 교재’부터 종이책을 사면 같은 전자책을 무료로 대여하기도 하고, 지난해부터는 학생들의 전자책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필기·노트 기능을 갖춘 대학교재 전문 플랫폼도 선보이고 있다. 학술출판계의 이런 노력도 저작권 인식 개선 없이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불법 복제가 지속되는 한, 서비스 개선이나 기술 투자도 어렵기 때문이다. 

시대 흐름 맞춰 ‘전자책 플랫폼’ 미래 대비

출판계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우선은 저작권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 강화다. 정부 차원에서 정규 교육과정으로 저작권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다. 

출판계도 디지털 학습 환경에 맞는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학술출판물 전자책 플랫폼은 대학가의 불법 복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고 있다. 

임순재 학술전자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전자책으로 갈 것”이라며 “전자책이 활성화되면 불법 복제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자책은 불법 복제·전송·판매까지 통제할 수 있고, 이 정도의 기술은 이미 확보가 돼 있다고 했다. 

학술전자출판협동조합은 학술도서 전자책 서비스 ‘아카디피아’를 운영하고 있다. 250개 출판사가 가입해 있으며, 약 2만 5천 종의 학술도서 전자책을 서비스 중이다.

임 이사장은 “무엇보다 불법 복제가 지속되면 시대 흐름에 맞는 투자 여력 자체가 사라진다”며 “근본적인 문제는 불법 복제가 저자들의 집필 의욕을 다 꺾어 버린다는 것이다. 질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콘텐츠 자체가 생성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학지사도 대학교재 전문 전자책 플랫폼 ‘캠퍼스북’을 지난해 9월 정식 오픈했다. 2021년 6월부터 1년 넘게 준비했다. 현재 1천600여 종의 대학교재 전자책을 판매 중이다. 전자책 콘텐츠를 모으고 있는 단계다. 학지사 관계자는 “불법 복제에 대한 인식 전환은 시간이 걸릴 수 있겠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오픈했다”라고 했다. 

학지사는 지난해 3월, 대학교재를 사용하고 있는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전자책 활용 실태조사’를 했다. 교수 340명과 학생 739명이 응답했다. 교수를 대상으로 저작물을 전자책으로 출판하고 유통하는 데 동의하는지를 물었더니, 4.16점(5점 척도)으로 동의하는 교수가 많았다. 동의한 이유는 ‘시대 흐름에 맞춰서’(51.8%), 교재 사용의 편의성을 위해(35.3%),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3.8%)이라고 했다. 동의하지 않는 이유도 물었다. 불법 복제 복사 위험성(20.3%), 전자책이 싫어서(4.2%), 인세가 줄어든다고 생각해서(1.5%)라고 응답했다.

전자책 강의교재 필요에 대해서는 평균 3.94점(5점 척도)으로 응답했다. 전자책 강의교재가 필요 없다는 응답에는 종이책을 선호한다(15%), 불법 복제 위험이 있다(13.2%), 사용이 불편하다(7.4%), 수업의 질이 떨어진다(5.3%) 등이 있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 2017년 3월, ‘반값 양심교재’를 내놨다. 스프링 제본으로 교재 부담을 반으로 줄인 것이다. 강의자가 마음 편하게 권하면서도 학생은 정당하게 교재를 살 방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까지는 호응이 좋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매출이 줄었다. ‘공동구매’ 상품인데, 학생들이 모이지 않아 공동구매가 줄었다.

최근 종잇값 등 원자재 값이 워낙 많이 올라 출판사 이익도 줄어들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원가를 더 낮추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종잇값이 올랐다고 ‘반값 교재’ 컨셉을 훼손할 수는 없다고 했다. 전정욱 커뮤니케이션북스 주간은 “분명히 책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학생들에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이 살 수 있는 적정 가격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지난 2009년부터 ‘리딩패킷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리딩패킷은 커뮤니케이션북스의 책과 저널에서 원하는 챕터와 논문만 뽑아 교재로 엮을 수 있는 서비스다. 강의자가 원하는 대로 편집할 수 있는 ‘편집 교재’다.

커뮤니케이션북스는 리딩패킷 서비스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리딩패킷 서비스도 개선 작업을 마치고, 올해 1학기부터 새로운 버전을 내놓는다. 모든 브라우저에서 볼 수 있고, 패킷을 전자책 형태로 확인할 수 있다. 

신다인·강일구·김봉억 기자 sh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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