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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윤리주의 신봉하는 ‘자이나교’ 기업, 기본 원칙 무너지나
[글로컬 오디세이] 윤리주의 신봉하는 ‘자이나교’ 기업, 기본 원칙 무너지나
  • 최지연
  • 승인 2023.03.02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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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최근 인도는 아다니(Adani) 그룹의 비리와 주가 폭락으로로 몹시 시끄럽다. 아다니 그룹은 항만·에너지·광산·공항·데이터 센터 등의 분야에서 굴지의 회사들을 경영하고 있는 인도 최대 기업 중 하나이다. 얼마 전까지 아디니 그룹의 대표인 가우탐 아다니는 순자산 114억 달러의 세계 4위의 자산가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의 행동주의펀드 ‘힌덴버그 리서치’의 보고서에서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서 조세 포탈을 비롯한 일가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연일 위기를 맞고 있다.

아다니 그룹은 가족 회사에서 출발한 기업이고, 아다니 가문은 매우 적극적인 자이나교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자이나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94%를 차지하는 인도에서 0.36%밖에 되지 않는 소수 종교다. 상업과 금융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인도의 유대 상인’으로 알려지기도 하는 자이나교 신자들은 부를 나누는 선행과 사회사업 등으로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그런 자이나 교도들에게 아다니 그룹의 비리는 몹시 당혹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JITO는 전 세계 자이나교 기업들의 연합이다. 세계 무역의 트렌드를 공유하고 미래 시장에 대비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지토 아흐메다바드

자이나교는 종교의 역사가 깊은 인도에서도 가장 오래된 종교로 추정되고, ‘모든 존재에는 영혼이 있다’는 물활론(物活論)에서 비롯된 불살생 개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자이나교 신자들은 생명을 해칠 수 있는 농업 대신 일찍부터 상업·무역·금융·교육·인쇄업 등에 종사해왔던 것도 그런 교리 때문이었다. 그리고 산업 구조의 역사적 변천에 따라 현재 자이나교 신자들은 인도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0.3%의 자이나교가 인도 세금의 3분의 1을 내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고행주의 전통에 따라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이 가장 강조하는 계율은 불살생·불투도(不偸盜)·불망어(不妄語)·불사음(不邪婬)·무소유(無所有)의 5가지다. 불살생계를 지키기 위해 철저하게 채식을 실천하기 때문에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소고기·돼지고기 문제에서 자유롭고, 거짓말과 도둑질, 음행을 금하는 계율 때문에 도덕적으로 바르다고 알려져서 인도에서도 이미지가 좋은 편이다. 그리고 무소유 계율의 실천으로 많은 것을 보시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공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자이나교의 상인들은 그들의 전통적인 새해 첫날(서양력으로 10~11월 중) 새로운 장부 첫 장에 인드라부티 가우타마라는 자이나 성자의 이름을 쓴다. 그가 많은 수행자 무리를 이끌고 만행을 하던 도중, 나눠 먹을 음식이 거의 없게 되자 신통력으로 모든 수행자들에 음식을 나눠 줬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것이다. 작은 투자로 많은 이윤을 만들고자 하는 상인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다. 상업에 대한 그들의 노하우는 오랫동안 축적돼 온 것이고 자신의 종교에 대한 프라이드 덕분에 신자들 사이의 유대 관계도 매우 좋다. 전 세계 자이나교 기업들의 연합인 JITO(Jain International Trade Organization)를 통해서 세계 무역의 트렌드를 공유하고 미래 시장에 대비한다.

즉 자이나교 상인들은 무소유계를 부분적으로 지키면서도 자신들의 이윤 추구에 매우 적극적이고, 자신들이 축적한 많은 재산은 다시 보시 등의 다른 계율 실천에 사용한다. 생명 존중, 환경 문제, 그린에너지 사업 등에 적극적인 것도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이나교 기업들은 이윤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면서도 기업의 사회적 윤리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기업 윤리의 대표적인 예인 ESG 즉 환경, 사회적 기여, 지배구조를 기준으로 할 때, 자이나교 기업들은 자이나교의 종교적 신념에 부합하는 환경문제와 사회적 기여 면에서 매우 모범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배구조 면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윤리 의식이 필요해 보인다. 자이나 상인들은 전통적으로 가족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현대에 이르러 주식회사 체제로 또는 국영 기업으로서 경영되고 있기 때문에 종교적 신념을 초월해 사회적 책임을 지닌 기업 윤리가 더욱 요구된다.

 

 

최지연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자이나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에 출강하고 있다. 산스크리트 고전을 바탕으로 한 인도 철학을 연구하고 있으며 인도 사회와 관련된 종교 연구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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