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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그늘이 너무 깊다 … ‘따끔한’ 비평 필요
스승의 그늘이 너무 깊다 … ‘따끔한’ 비평 필요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7.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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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창작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2) 미술

요즘 대학생들의 졸업작품을 두고 일부에선 “기발하다”고 추켜세우기도 하나, 다른 한 켠에선 “너무 안일하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편안한 매체에 안주해 실험의식이 없다는 진단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는 “학생들의 창의적 시각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만난다. 가령, 식탁에 놓인 것을 그리라 하면, 나이프, 포크, 접시 등 다양하게 그리지만 “인식의 각도에선 큰 차이가 없고, 형태나 기법 차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강수미 홍익대 강사(미학)는 “4학년임에도 가령 ‘어려움’이란 주제를 ‘고독’이나 ‘아련함’ 따위로밖에 다뤄내지 못한다”라며 ‘자기의식의 부재’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한다.

이는 고등학교 입시교육과 대학제도교육 한계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을 의미하는데,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창겸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비디오아트)는 “학교에서 배운 패턴화 된 것들을 졸업후 스스로 실험하고 극복하는 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라고 털어놓는다. 김용익 경원대 교수(서양화)는 “매년 여러 대학에서 오는 졸업작품 카달로그를 보면 지도교수가 누군지 알 수 있다. 교수들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에 학생들이 창작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지적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매체실험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A씨는 교수들의 작품성향이 “편협하다”며 불만을 나타낸다. 그에 따르면, 현재 홍익대 실기과 교수들의 작품경향은 주로 60년대 미니멀리즘이나 하이퍼리얼리즘 회화에 집중돼 있는데, 교수들의 영향 때문에 3~4학년생들의 창작품이 대부분 평면회화에 한정된다고 한다. 문제는 과제 규정이 4백호 작품 2점을 제출하도록 되는 등 평면회화 기준으로 돼있으며, 설치작품 등 여타 매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한다. 결국 학생들이 쉬운 방법으로 평면회화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 더욱이 ‘엉뚱한’ 시도를 한 작품들에 대해 “재밌다/재미없다”, “이게 장난하는 거니”라는 식의 코멘트가 이어지다 보니,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대학에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기도 하다. 배종헌 위덕대 교수(복합장르)는 “상당수 대학이 70~80년대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며 현 대학교육의 뒤처짐을 짚어낸다. 즉 형식적·이론적 위계가 무너진지 오래며, 사진, 영상, 오브제, 인터넷 미술 등 다양한 매체실험이 이뤄지고 있는데 일부 대학은 그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지 못한 것. 물론 ‘실험을 한다’는 작품 중엔 이미 해외에서 시도됐던 걸 표피적 차원에서 모방하거나 표현방법의 고민없이 직설으로 표현하는 등, 한 평론가의 말처럼 “심각한 수준”의 작품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안일한 방법으로 지도하는 교수들의 탓”도 크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듯하다.

특히 동양화과 학생들이 느끼는 불합리함은 더 크다. 2년전 서울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B씨는 “새로운 매체실험을 하려 하자, 교수가 기존의 동양화와 관련된 내용을 담으라고 권해 타협선상에서 졸업작품을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털어놓는다. B씨 뿐만 아니라, 중앙대 등 동양화과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얘기는 “동양화과는 보수적”이라는 건데, 이는 먹과 종이 다루는 법만 익히는 데도 4년이 다 흘러간다는 것이다. 김선두 중앙대 교수(동양화) 등은 “기초를 바탕으로 한 창작”에 중점을 두며 “어줍잖게 익혀선 제대로 된 응용이 나올 수 없다”라고 강조하는데, 학생들은 이에 수긍하면서도 ‘새로운 실험’에 대한 또 다른 강박 때문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아가 동양화과는 사상과 역사 등 이론과 실기의 연관성이 중요한데, 서울대 B씨의 경우 “매번 氣韻生動과 같은 이야기만 들어, 오늘날 나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에 대한 접합지점을 찾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즉, “자기 자신의 문제를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커리큘럼은 동양화과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창작은 주로 3~4학년에 하지만 그 바탕이 되는 작업은 1~2학년 기초수업에서 이뤄지므로 1~2학년 커리큘럼도 중요하다. 기초교육 하면 누구나 한예종의 ‘파운데이션’을 꼽는데, 철저하고 전문적인 교육으로 소문이 나있다. 파운데이션은 입체, 평면, 드로잉으로 나뉘는데 ‘낯설게 하기’의 여러 방법으로 충격을 가해 고정관념을 깨고 기초를 쌓는 과정이다. 하지만 김용익 교수는 한예종은 최고의 질을 유지하지만, “고급담론만 있어 예술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부족해 보인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수업방식이 정반대인 경원대 회화과와 비교해보면 좀더 드러나는데, 경원대의 경우 1~2학년 때 기초수업이란 게 거의 없으며 마냥 풀어줘 스스로 깨우치도록 한다. 졸업작품전도 한예종처럼 까다롭게 하지 않고 ‘졸업전시가 밥 먹여주냐’와 같은 주제로 열어 오히려 목숨 걸고(?) 반기를 드는 진풍경도 연출하고 있다. 경원대 졸업생들의 경우 실제로 서울대-홍익대 양대 산맥을 무너뜨리고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경원대 스타일’을 구축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수업 품평회 방식에 대한 개선도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서울대 B씨의 경우 수업에서 토론은 거의 없었고, 외부강사의 비평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또 비평을 하면서 “좋습니다”, “아니, 저게 뭡니까”와 같이 인상적으로 툭툭 던져지는 평가로 인해 실질적인 비평적 효과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홍익대 회화과의 A씨도 “밀도가 낮다”, “완성도가 낮다/높다”, “이게 작품이니”라는 식의 “제멋대로 코멘트”가 수업시간에 이어지면, “교수의 권위 때문에 대응은 하지 못하고 그냥 무시하는 편”이라고 털어놓는다.

어쨌든 이처럼 뒤쳐진 대학의 현실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시도들도 포착된다. 그 중 하나로, 박병춘 덕성여대 교수(동양화)는 올해부터 외부 평론가, 미술관계자를 섭외해 학생들 작품을 비평하도록 하고 있는데, “한정된 몇 명의 교수들의 견해만 반영되면 매너리즘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이로써 학생들의 작품이 몇몇 교수의 성향에 한정되지 않고 좀더 다양한 이들의 평가를 들어 자유롭게 뻗어나가도록 하겠다는 다짐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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