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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誤讀 넘어 ‘조작’ 의도까지
루쉰 誤讀 넘어 ‘조작’ 의도까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6.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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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쟁점_전형준 서울대 교수, 레이 초우의 ‘루쉰 왜곡’ 비판

▲레이 초우(Rey Chow) ©
전형준 서울대 교수가 ‘문자문화와 시각문화: 문화연구의 루쉰관에 대한 한 검토’(현대비평과이론 24호)라는 글을 통해, 루쉰에 대한 최근의 평가절하에 대해 반비판을 하고 나섰다. “20세기 내내 마오이즘으로 신격화돼 오독됐던 루쉰문학이 요즘 또 다른 수난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그는 얼마 전 번역된 레이 초우 美 브라운대 교수의 ‘원시적 열정’(정재서 옮김, 이산)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놓고 분석하고 있다.

레이 초우는 이 책에서 루쉰이 문학을 하게 된 계기가 ‘영화’를 본 후의 충격 때문이라고 말한 뒤, “20세기 초 중국 지식인들에게 영화의 등장은 언어/문학기호가 지위를 상실하는 획기적 순간이었다”라고 일반화하고 있다.  전 교수는 이것을 루쉰 오독을 넘어 자기 논리의 취약함을 정당화하기 위한 ‘조작’으로까지 보고 있다.

이 책에서 레이 초우는 루쉰의 첫 소설집 ‘외침’의 서문에 등장하는 ‘환등기 사건’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있다. ‘환등기 사건’이란 루쉰이 일본 의학전문학교 유학시절 수업시간에 중국인이 러시아 스파이 노릇을 하다 일본군에게 참수되는 "영화"를 보고, 의학보다 국민정신개조가 더 시급함을 깨달아 문학으로 전향했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레이 초우는 루쉰이 쓴 ‘電影’을 ‘lantern slides’로, ‘畵片’을 각각 ‘slides’, ‘film’, ‘films’로 옮기고 있다. 어쨌든 film이나 slide는 당시 슬라이드(정지사진)였지, 영화(동영상)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날  film은 cinema/movie와 더불어 주로 ‘영화’를 의미하게 됐다. 레이 초우는 처음엔 ‘slide’라고 하다가 은근슬쩍 단어를 ‘film’으로 바꾸고, 심지어는 ‘newsreel(뉴스영화)’로 감싸버리고 있는데, 전 교수는 이런 번역과정이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라고 파악한다. “문자문화에 대한 시각문화의 우위를, 그 중에서도 영화를 특권화하려는 것”이라고 말이다.

전 교수가 보기에 그것은 단지 환등기의 체험이었을 따름이다. 또 여러 연구에서 드러나듯 루쉰은 전부터 이미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 초우는 ‘영화’가 바로 결정적인 문학으로의 전향 계기이며, ‘문학으로 도피했지만 시각이미지가 가하는 위협은 루쉰을 괴롭혔을 것’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전형준 교수가 비판의 텍스트로 삼고 있는 레이 초우의 국내 번역저서 ©

전 교수는 레이 초우의 이런 해석이 ‘시각문화의 우월성’이라는 신화구축에 봉사한다고 비판한다. 이를 위해 레이 초우는 모든 문학을 ‘모더니즘 문학의 엘리트주의’와 동일시하며, 중국의 전통문학-신문학 사이의 단절을 무시하는 愚를 범하고 있다. 비판이 정당화되려면 근간이 되는 텍스트를 제대로 봐야 한다는 전 교수는 루쉰을 오독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는 한 영상우월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잘 제시하는 듯 보인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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