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대의 위기는 우리나라 고등교육 전반의 문제와 결부돼 있는 만큼, 전문대를 비롯해 4년제 일반대학과 함께 고등직업교육의 발전 방향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라 종전의 직업교육체제에 대한 개선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고등단계의 교육기관은 설립목적과 달리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대의 현실을 중심으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것인지 공론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일시 : 2006년 6월 29일 오후 4시
●장소 : 교수신문사 회의실
●사회 :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정치학)
●참석자 : 김덕규 경북대(한국공학교육인증원 부원장, 전자전기공학), 양한주 동양공업전문대학 기획처장(기계설계), 이정표 한양여대(교육학), 한석수 교육인적자원부 전문대학정책과장
●진행·정리 : 김봉억 기자
“4년제 대학과 직업교육기관 구분 무너져”
▲최영진 주간 © |
양한주 : 먼저 전문대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여건(아래 표 참고)에 있는가를 꼭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문대는 교육비가 낮아도 직업교육을 시킬 수 있으며, 교육여건이 나빠도 직업교육은 달성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모든 운영 기준이나 등록금이 정해졌다고 보여집니다. 내실있는 직업교육을 할 수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전문대에 진학해도 희망이 없다는 겁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열악한 교육여건에서 ‘교육을 받은 결과가 좋지 않다’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는 현실에서 누가 전문대에 지원하려고 하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학령인구마저 점점 감소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정표 : 고등교육의 43%를 차지하는 전문대의 수업연한을 묶어 두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사회가 고도화되고, 앞으로 인력 수요가 상당 부분은 고학력을 요구하는 지식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전문대를 2 ~ 3년제로 묶어 놓으면 아무리 교육과정이 좋고, 특정 분야에 고도의 인력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에 인력수준을 맞추는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사회 : 국가정책과 연관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교육부의 정책적 차원의 설명도 필요할 것 같은데요.
한석수 : 전문대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의 변화와 큰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최근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기존의 기술인력과 기능이력에 대한 수요는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위기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볼때는 ‘교육의 숲’을 제대로 가꾸기 위해서는 여러 나무들이 골고루 섞여 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 전문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전문대 나름대로 정체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 : 정부에서는 전문대 자체의 몫과 역할을 많이 강조하고 계시군요.
“직업교육, 사회양극화와도 연관”
▲양한주 교수 © |
사회 : 전문대 자체에서는 직업교육의 위기에 대해 책임은 없습니까. 각 대학마다 발생되는 교권침해 사례나 법인의 전횡이 많은데 이 가운데 전문대의 비중도 높거든요. 그동안 전문대가 너무 태만하지 않았나 하는 자성을 할 수 도 있지 않나요.
양한주 :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정원모집에 지장이 없고, 대부분 사립 전문대이다 보니까 경영자인 이사장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들 위기의식이 대단합니다. 지방의 전문대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서울의 전문대 보다 2 ~ 3배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정확보가 안되니까 전문대 교수중에는 연봉 2천만 원이 안되는 교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로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생존위기를 돌파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수도권의 전문대 조차도 어떻게 돌파구를 열어갈까 고심하고 있습니다. 한때 호황기에 사전 준비를 못하고 사전 투자를 못한 것은 인정합니다.
“질 관리 시스템없이 자구노력 탓할 수 없다”
▲이정표 교수 © |
한석수 : 한가지 생각해 볼 것이 초중등학교에서는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잘 들어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물론 고등교육에서는 자기 주독적인 학습이 중요하지만요. 실제로 학생들의 수준에 맞는 교육을 하려고 대학에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이점도 짚어 봐야 합니다. 교육부의 전문대 지원 방안 중에 하나가 6억 원을 확보해 교재개발 지원을 할 예정입니다. 우선, 기초 국영수 과목을 수준별로 교육할 수 있는 교재를 보급할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부가적인 노력이 자체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사회 : 최근에 학과별로 수업연한을 자율적으로 조정해 전문대 교육을 다양하게 해야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많이 해결될 것 같습니까?
양한주 : 우선 할 수 있는 조치가 지금 현재 고등교육법을 크게 고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전공심화과정을 활성화 하는 것입니다. 전공심화과정의 기본 개념은 ‘스쿨 투 웍, 웍 투 스쿨’입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서 사회에 진출한 뒤에 필요하면 다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현재는 비학위과정으로 1년만 할 수 있습니다. 현장 경험을 했던 사람이 다시 들어와서 계속 교육을 받았는데 학위 인정을 안해준다면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진학하는 사람이 없어요. 현실화하고 활성화한다면 1단계 해소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학사학위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체제가 형성돼 있습니다. 왜 직업교육쪽의 계속 교육은 안되는지 의문입니다. 이미 4년제 대학과 직업교육기관과의 구분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4년제 대학도 이미 직업교육 영역의 학과들을 개설하고 있습니다. 과연 4년제 일반 대학의 역할은 무엇이고, 전문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일부 4년제 대학은 연구 개발 인력을 양성하고 나머지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직업교육기관들은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체제로 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사회 : 김 교수님, 한국공학교육인증원에서 부원장을 맡고 계신데요. 공학인증원에서 추구하는 것도 산업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력양성이 목표 아닙니까. 그렇다면 양 교수님이 말하는 틀과 상충되는 것 같은데요. 4년제 대학과 전문대가 어떻게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김덕규 교수 © |
“산업계 요구따라 기술수준 나누자”
사회 : 다양한 기술수준에 따라 2년, 3년, 4년과정이 필요한 분야가 있을 것입니다. 요구되는 기술수준에 맞춰 교육과정을 만들고, 현장의 피드백이 반영된 엄격한 인증제를 실시한다면 교육의 질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김 교수님의 주장입니다.
이정표 : 최근엔 ‘주문식 교육’이 강조되면서 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력수준이 우리처럼 4년제 대학이냐, 전문대냐에 따라 나눠지는 것은 이제 어울리지 않습니다. 직업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반 4년제와 달리 교육과정 자체도 실무중심, 현장중심의 교육과정이 중요합니다. 실습위주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4년제 대학과의 차별화를 이뤄야 하는 것입니다. 일의 수준이 낮으면 전문대, 높으면 4년제 대학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형태라고 봅니다.
사회 : 그렇다면 4년제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정표 : 4년제 대학은 연구와 학문을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교육과정부터 컨텐츠상의 차별화를 이뤄야 합니다. 예를 들면 호주에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2년제 형태의 TAFE가 있었는데 빅토리아주에서 TAFE에 학사학위를 제공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정부는 ‘어차피 평생학습사회다. 수요자 입장을 생각하면 개방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육과정을 달리했습니다. 그래서 4년제 일반 대학은 전통적인 학사학위 중심으로 운영하고, 기술변화나 직업변화가 엄청나게 빠른 영역은 TAFE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중복을 피하면서 학사학위를 주는 방향으로 결정됐습니다.
사회 : 현재 4년제 대학에서도 실무교육을 강조하고 있지 않습니까. 15개 정도만 연구중심대학으로 운영하고, 나머지는 직업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현재 정부의 입장입니다.
“교수-학생-기업체 겉도는 게 문제”
김덕규 : 교수는 학생을 보고 있고, 학생은 기업체를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기업체와 교수가 연계되든지, 아니면 기업체와 학생이 연계돼야 뭔가 피드백이 돼서 소통이 일어나고 점점 좋아질텐데요. 지금은 교수와 학생, 학생과 기업 현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수요자 중심 교육’은 상당히 위험한 요소도 있다고 봅니다. 기업체가 현 시점에 당장 필요한 주문자 교육을 시키면 당장 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학생이 평생동안 생존할지 여부는 의문입니다.
이정표 : 산업계도 사실 금방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직업교육이라고 해서 단순 기능이나 기술만을 가진 인력이 아니고, 직업교육 내에서도 기초학력은 필요하거든요.
사회 : 어쨌든 기존의 4년제 대학과 전문대가 지향하는 폴리테크닉의 개념차이가 좀 드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제도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문제입니까.
한석수 : 무엇보다 우리의 문화도 고려해봐야 합니다. 폴리테크닉은 핀란드를 비롯한 유럽지역이나 캐나다에서 많이 제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교육시스템은 미국쪽에 좀 더 가까운 게 사실입니다. 핀란드가 운영하는 폴리테크닉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겠지만 우리한테 딱 맞아 떨어지는 제도인지는 깊이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폴리테크닉 형태만 너무 이상적인 모델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가요. 수요자들 입장에서는 별로 안좋아할 수도 있거든요. 이공계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전문대만 직면하고 있는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과학이나 수학, 공업 보다는 인문사회쪽을 선호하고 있고, 전통적으로도 인문사회쪽을 선호하는 문화도 참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회 : 폴리테크닉 도입은 곤란하다는 얘긴가요.
한석수 : 아닙니다. 그 이전에 사회의 관심이 높아져야 합니다. 지난 5월에 전문대학정책과에 와서 보도자료 두편을 냈는데, 기자들도 전문대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하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아무튼 교육부의 정책 방향은 3년제 학과 자율화와 전공심화과정에 학사학위를 줄 수 있도록 고등교육법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올해 정기국회때는 통과시킬 계획입니다. 3년제 학과 자율화와 전공심화과정이 잘 연계돼 전문대가 특성화시킨다면 4년제 대학과도 경쟁력있는 학사학위 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전문대 전공심화과정도 상당히 활성화 될 것입니다. 이같이 이미 수업연한 자율화도 가능하게 만들어 놨습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6-3-3-4 학제에 대해 내년부터 광범위한 논의를 거칠 계획입니다. 이때 전문대의 수업연한 자율화도 포함시켜 공론화해 보자는 것이 교육부의 입장입니다.
사회 : 오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문대를 살리자는 것이 아니라 고등직업교육을 정상화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방향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때 더 보완하고 추가해야 사항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정표 : 전문대에 계신 분들이 전문대의 발전방향을 핀란드의 폴리테크닉 형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반드시 그렇다고 보지는 않아요. 각 전문대의 여건과 보유하고 있는 자원, 지역사회의 요구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폴리테크닉 형태로 갈 수 있는 전문대는 그쪽으로 가고, 평생직업교육을 실시할 수 있는 백화점식 형태의 ‘커뮤니티 칼리지’ 형태로 운영되는 기관도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평생학습과 평생능력개발이 중요시 되면서 누군가는 이 기능을 담당해야 합니다. 저는 전문대가 이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복지차원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해 줄 직업교육과 여성, 지역사회 주민들이 언제든지 가서라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기관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전문대가 지향해야 할 것은 폴리테크닉과 커뮤니티 칼리지 형태를 어떻게 접점을 잘 맞춰나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회 : 고등직업교육의 발전을 위해 큰 틀에서 어떤 입장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발상이 필요합니까.
▲한석수 전문대정책과장 © |
양한주 : 4년제 대학도 이미 직업교육으로 많이 전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4년제 대학과 전문대의 역할이 중복되고 있는 모습 중에 하나가 바로 4년제 대학이 운영하고 있는 사회교육원, 평생교육원이 전문대 정규과정보다 훨씬 더 인기를 끌며 운영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4년제 대학의 역할이 뭡니까. 평생교육원은 직업교육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역할은 전문대가 맡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만 유독 전문대 이후의 교육과정이 단절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문대와 산업대가 교육과정이 연결돼 전문대 졸업생이 계속 교육을 위해 산업대로 진학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산업대도 일반 대학화하고 있습니다. 전문대 졸업생들은 계속 교육의 과정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4년제 대학과 전문대로 구분 지어 보지 말고, 전체 고등교육체제에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초점을 둬야 합니다.
한석수 : 현재도 연계 교육과정이 있습니다. 실업고와 전문대,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이 연계 교육과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돼 있습니다. 실제로 연계 교육과정을 운영하면 4년제 대학에 편입할 때 정원의 3%정도는 편입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이 통일된 교육과정을 만들면 학사학위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선의의 라이벌이죠. 4년제 대학과 전문대가 적극적으로 연계 교육과정을 추진하고 대화를 해야 합니다.
이정표 : 저는 의견이 좀 다른데요. 장기적으로 본다면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연계 강화가 바람직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단선형 학제인데, 지금 임시방편적으로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연계를 통해 학생들에게 일관성있는 지원은 필요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본다면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색깔이 없어지는 겁니다. 직업교육과정은 듀얼시스템으로 전문대, 산업대, 폴리테크닉 등의 형태로 나름대로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형태로 표준화된 직업교육과정의 개발이 돼야 합니다. 사실, 4년제 대학도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있어 전문대와 색깔 구분이 없어진지 오래됐습니다. 정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할 것은 직업교육에 대한 정체성과 시스템으로 연계시켜 나가는 노력이 계속 이뤄져야 합니다. 4년제 대학이 상당부분 취업중심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런 대학들이 직업교육기관으로 넘어 올 수 있는 형태의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상당수의 인력을 직업교육쪽으로 유입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학제는 명분에 빠져 있어서 국가적 차원의 개편이 필요합니다.
김덕규 : 기본적으로 규제 철폐라든가, 시장기능에 맡기는 것은 큰 흐름으로서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렇더라도 정부의 역할은 필요하거든요. 직업교육도 국가전략분야로 봐야 합니다. 시장에만 맡길 일이 아닙니다.
한석수 : 정부는 교육의 숲을 잘 가꾸어 가겠습니다. 고르게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하지만, 외부에서 봤을때 키 작은 나무를 사랑할 수 있게 하고, 선호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역시 전문대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