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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사회의 소산
문학예술작품은 작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사회의 소산
  • 김병희
  • 승인 2023.02.24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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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17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널리 알려진 이 말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더 절실하게 들어맞는다. 작가는 자신이 겪은 시대를 작품에 충실히 반영하기 때문에그 시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헝가리 태생의 마르크스주의 예술사학자인 아르놀트 하우저(Arnold Hauser, 1892~1978)는 예술작품이란 시대와 사회의 관계 속에서 태어난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선사시대부터 대중영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흥미롭게 설명했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치고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이 책에서 하우저는 문학예술작품이 작가의 개인 창작물이 아니라, 사회구성체의 공동 창작물이라고 주장했다. 작가는 사회를 대신해 기록했을 뿐이라는 것.

창작과비평사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광고
(조선일보, 1977. 10. 18.)

창작과비평사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광고에서는 고뇌하는 하우저 박사의 모습과 “또 중판(重版)! 경이적 인기(人氣)!”라는 헤드라인이 가장 눈길을 끈다(조선일보, 1977. 10. 18.). 이 책의 ‘현대 편’은 백낙청과 염무웅이 공동 번역해 창비신서 제1권으로, ‘고대·중세 편’은 백낙청이 단독 번역해 창비신서 제12권으로 발행했다. 광고에서는 각각 305쪽과 330쪽인 두 권을 동시에 소개하며 책값 1,500원도 명시했다.

광고에서는 “시각(視角)의 혁명(革命)…문학과 예술을 보는 우리 관점에 근본적 혁신을 가져온 현대의 고전!”이라고 설명하며, 이 책이 보는 각도의 혁명을 유발했다고 강조했다. ‘현대 편’에 대해서는 “19·20 세기의 서양문화를 철저한 사회사적 관점에서 해부한 세계적 명저.

<창작과 비평>지에 연재되어 선풍적 화제를 모았고 한국 문단과 학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필독의 교양서”라고 설명했다. ‘고대·중세 편’에 대해서는 “선사시대의 원시 예술부터 고대 오리엔트문화, 그리스·로마의 문학과 예술 및 중세문화에 이르는 서양의 미술사·문학사·정신사 및 사회사를 명쾌하게 분석 체계화한 이 방면 유일의 역서(譯書)”라고 했다. 

창작과비평사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 편』
초판의 표지 (1974)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할만한 이 책은 1951년에 영문판이 나온 이후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됐고, 문학과 예술에 대한 전 세계 지식인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는 1966년에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책의 마지막 장인 ‘영화의 시대’가 번역 소개된 이후, 1974년에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현대 편』이 출간됐다. 이 책이 창비신서(創批新書) 제1권으로 나왔다는 점은 한국 지성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15년 만인 1981년에 완역됐고 두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의 최종본이 확정됐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은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문학과 예술을 사회학적 상상력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우저는 예술을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하던 이전의 견해를 부정하며 예술작품을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제 활동의 일환으로 간주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문학예술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예술을 신비의 영역으로 간주하며 관념론적 이데아를 중시하는 미학적 관점이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예술 순수의 영역이 아닌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경제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사회학적 관점이다.

두 번째 관점을 지지한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문학예술작품을 개인의 열정과 창작혼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일갈했다. 그는 문학예술작품이 작가 개인의 창작물이 아니라 시대정신과 사회구성체의 집단 무의식의 소산임을 깨닫게 하면서 사회사로서의 문학예술작품을 보는 각도를 바꿔야 한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더욱이 이 책은 문학예술 향유자의 비중을 예술가나 예술작품과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선사시대에는 사냥꾼이 곧 예술가였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냥할 동물의 모습을 동굴에 벽화를 남겼기 때문이다.

중세 시기에는 특권층만 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지만, 근대에는 일반 대중도 예술을 즐길 수 있게 됐다는 것. 르네상스 시대에는 길드에 소속된 장인들이 아틀리에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집단으로 예술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예술 창작을 사적 영역으로 끌어왔다. 그는 집단 창작을 거부하고 조수들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작품을 완성했다. 따라서 미켈란젤로는 최초의 현대적 예술가였다. 그의 고집이 개인 창작의 시대라는 예술사의 획기적인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책에서는 고대의 동굴벽화에서 현대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예술양식의 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2016년에 나온 최근의 개정판은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끄’,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같은 부제로 4권으로 출판됐다. 문학과 예술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하고, 문학예술작품이 시대와 사회의 소산임을 오롯이 확인할 수 있는 대장정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예술 민주화로 나아가는 시야를 넓혀보자.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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