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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 의존 줄어드는 혁신 교수법…지속적인 저작권 교육 중요”
“교재 의존 줄어드는 혁신 교수법…지속적인 저작권 교육 중요”
  • 강일구
  • 승인 2023.02.2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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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전환 시대, 출판 저작권이 위태롭다③ 강의콘텐츠가 달라지고 있다

학생들이 강의실에 들어서면 태블릿PC나 노트북을 꺼낸다. 종이책을 펼치는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코로나 19이후 대학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디지털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지정교재가 사라지고, 학생들 간의 불법스캔이 늘고 있다. 교수신문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저작권을 무시한 ‘불법 PDF’ 등이 속수무책으로 돌아다니는 디지털 ‘불법복제’ 문제를 주목한다. 국내외 대학 학생들의 교재 이용 실태를 확인해보니, 교재를 대체하는 ‘강의자료’가 늘고 있는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교수들이 말하는 대학교육과 강의 콘텐츠의 변화, 저작권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미네르바스쿨에는 지정교재 자체가 없다. 트렌드에 따라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자료들이 달라진다. 대부분 전문적이고 다양한 기사(article)를 많이 보고, 주요하게 많이 활용되는 자료가 있다면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정도다. 미네르바스쿨에서 자체적으로 작성한 글을 많이 읽는다. 현재 한동대 수업에서도 학생들에게 기사를 제공한다. 내가 저술한 책을 부교재로 사용하지만 주교재로 교과서를 쓰거나 다른 곳에서 만든 책을 교과서로 만들지는 않는다. 책은 학생들에게 일부분만 보라고 하는 정도다.” (정두희 한동대 ICT 창업학부 교수)

“(기존 단일) 교재 시대는 이제 가지 않았나 싶다. 물리, 화학처럼 그간 축적된 이론과 케이스가 정립된 내용을 담은 책은 교재로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은 단일 교재만으로 배울 수 없다. 지식의 반감주기가 빠르고, 디지털리터러시가 필요하겠지만 도처에 학습자료가 널려있어 ‘학습 큐레이팅’이란 말까지 나온다. 그간 교수와 교사의 역할은 정해진 지식을 한 방향으로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상황에서 학습자의 목적에 맞게 지식을 끌어다 쓸 수 있어야 한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올려놓고 필기하는 모습은 이제 새롭지 않다. 교수들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 산업에 맞춰 새로운 교수법을 도입하고 교과서 밖에서 학습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세종대

미네르바스쿨에서 객원교수를 지냈던 정두희 한동대 교수와 태재대학 설립에 참여한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의 말은 앞으로 수업의 풍경이 어떠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짐작하도록 한다. 그러나 교재가 사라지는 것은 혁신적인 교수법을 통한 인재양성이 목표인 미네르바스쿨이나 태재대학 뿐만 아니라, 일반대학의 강의실에서도 벌어지는 엄연한 현실이다.

학생들이 책상에 노트북과 태블릿PC를 올려 두고 교수가 제공한 ‘강의자료’를 보며 수업을 듣는 것은 이제 일반적인 수업 풍경이 됐다. 교수가 강의자료를 디지털 콘텐츠로 올려 두면 학생이 태블릿PC 등을 활용해 강의 내용을 정리하는 모습은 비단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전면화되며 생긴 변화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기를 꾸준히 요구했고, 교수 또한 여러 미디어를 활용하며 플립드 러닝, 블렌디드 러닝, 프로젝트 기반 러닝 등 다양한 수업을 시도하면서 생긴 자연스런 풍경이다.

2020년 출판단체 연합세미나에서 ‘디지털 시대, 학술출판산업의 콘텐츠 전략’을 발표한 박기수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과)는 “단일 교재 중심으로 수업을 하면 그게 학생들로부터 더 문제가 된다”라고 말한다. 교수가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특정 교재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자료의 활용이 일반화됐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교재에 나오는 것을 설명하면 ‘그게 무슨 공부냐’라고 한다”라고 말했다. 교육방법과 수업 콘텐츠 자체가 변하면서 교재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다.

서울시립대 교수학습지원센터장을 맡았던 황지원 교육대학원 교수는 수업에 대학교재를 활용하는 데 있어 구조적 한계를 짚는다. 젊은 교수를 중심으로 교재 중심의 수업을 깨려는 움직임이 형성된 것과 더불어 대학교재도 최신의 학문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교재 지정은 하되 학생들에게 이를 구매하도록 이야기하지 않는다. 최신 자료나 논문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과서라는 게 계속 맞는 게 아니다. 지난해에 쓴 책도 오늘 시점에선 달라질 수 있다. 대학교재는 사실을 확인하고 진도를 편하게 나가는 데 유용하지만, 이것이 최신 지식인지는 장담하지 못 한다”라며 “교재를 활용하더라도 계속 업데이트를 한다. 젊은 교수들은 자기 자신의 전공 분야라고 하면, 최신 논문이나 자신이 만든 자료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목원대 경영학과장을 맡고 있는 구정모 교수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학생의 수가 줄고 있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교수가 해야한다는 점과 함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변화도 이야기한다. 구 교수는 “대학생들이 줄어든다. 학생들의 요구에 맞춘 수업을 해야 한다”라며 “새로운 트렌드나 기업현장의 생생한 내용을 바탕으로 강의를 하지 않으면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지 않아 강의가 폐강된다”라고 말했다. 

한수연 상지대 교수(항공서비스학과)도 마찬가지다. 한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항공산업이 빨리 바뀌었다. 코로나19 전에는 교재를 구입하도록 독려했지만 현재는 교재를 참고만 하고 사회적 이슈를 중심으로 강의자료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수자나 학생들이 교재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점차 흐려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암기 많은 공대서도 교재 의존줄 수도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내용이 많아 교재 의존 비율이 높았던 공학 분야에서도 변화의 흐름이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교수의 특성과 분야별로 차이는 있지만, 산업 변화에 맞는 강의를 하기 위해 교수들이 다양한 자료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전상은 경북대 교수(신소재공학부)는 학생들이 전공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교재를 구매해 공부하는 것을 독려한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최신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교재 외의 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 교수는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을 하는 것을 학생들은 익숙해 하고, 특정 분야의 흐름을 잡는 데도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배터리 등 응용분야를 가르치려면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과거에는 대학교재 중심으로 수업을 해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만든 자료를 활용해 수업하는 방법에 학생들도 적응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이 산업‧지역현장에서 발생하는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IC-PBL 교수법 또한 교실에서 교재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양정아 한양대 IC-PBL센터 책임교수는 “수업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IC-PBL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교재라는 게 의미가 없어지긴 한다. IC-PBL강의는 학생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교수가 가이드를 해주는 것이다. 텍스트로 된 교재의 활용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공학교육 자체가 이런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IC-PBL수업이 간호대와 의대에서 넘어왔기에 암기가 중요한 다른 분야도 비슷하리라 본다”라고 말했다.

『IC-PBL을 위한 일반물리학실험』을 쓴 정희준 한양대 교수(응용물리학과)는 공학이나 자연 과학은 교재의 권위가 유지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IC-PBL 수업이 활성화 될수록 수업에서 교재 활용이 줄어드는 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 교수는 IC-PBL은 학생들의 예습을 전제로하고 또 도서관이나 현장에서 다양한 자료를 찾아야 하는 수업 방식이기에, 심화전공을 배우는 3~4학년 같은 경우에는 교재 활용도가 적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한양대ERICA에서 운영하고 있는 IC-PBL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기관(대학) 수는 153개이고, 참여자 수는 1천96명이다.

한편, 전면 대면수업이 다시 시작돼 교재중심의 수업으로 돌아가려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기술의 변화가 원인이었다. 국어교육학과 한 교수는 ‘챗지피티(chatGPT)’ 등으로 인해 교수법을 확실히 바꾸지 않으면 애매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임용고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교재중심 수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수업방식을 토론이나 매주 한 페이지씩 특정 주제에 대해 글을 쓰게 했는데, ‘챗지피티’ 이후에는 과제를 내주는 게 무의미할 수 있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학생들 강의자료 외부 배포 염려”

대학들은 저작권과 관련해 이중 방지책을 마련하고 있다. 외주업체를 활용해 강의자료를 확인하거나 대학이 자체적으로 교수의 강의자료에 저작권 침해 소지가 없는지 확인하도록 주지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교수 스스로도 교재나 논문의 저작자이기에 저작권 문제와 관련해 상당한 경각심을 갖고 있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도 출처 표시를 하거나, 저작권 침해 소지가 있는 자료라면 직접 제작하는 등의 수고를 한다고도 했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도 “저작권과 관련해선 ‘폰트’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만큼 경각심이 높다”라며 “교재 한 권을 놓고 한 학기 수업을 운영하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학교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강의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정한울 광운대 교수(전자공학과)는 “저는 회로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회로를 100% 직접 그린다. 그리는 게 힘들 경우에는 공개된 그림을 많이 가져다 쓴다”라고 말했다.

박기수 한양대 교수는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수가 책의 일부를 발췌해 학생에게 공유하는 일이 있었고 나도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같은 행위를 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학생에게 선의로 자료를 공유하더라도 이것이 외부로 유출됐을 때 교수가 더 큰 타격을 받는다”라고 말했다. 북스캔 등을 통해 교재를 나눠주더라도 오프라인에서 제한되게 퍼질 수 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디지털 자료가 얼마나 확산돼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것이다. 박 교수가 소속된 한양대는 저작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자료는 강의자료에서 제외토록 하고 있고 자체제작이 아닌 경우는 외부 업체에서 엄중하게 검증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전자출판학회장을 맡고 있는 방미영 서경대 교수(광고홍보콘텐츠학과)는 “저작권 침해는 처벌이란 제도적 대응만이 아니라 교육과 홍보도 중요하다”라며 교수들이 지속적으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나 수업시간 때도 지속적인 저작권 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과 홍보, 교육 등은 불법복제물을 이용하는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라고 말했다.

강일구 기자 onenin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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