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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학생, 상호작용 넘어 상호의존 관계로
교수‧학생, 상호작용 넘어 상호의존 관계로
  • 임대근
  • 승인 2023.02.1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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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코로나 시대, 최고의 강의⑲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임대근 교수가 '한국어-중국어 비교(발음과 어휘)' 수업에서 중국어 발음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2음절 성조 결합(4성과 1성, 4성과 2성)과 그 사례를 설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임대근

코로나19가 세상을 덮친 2020년 초에 나는 두 번째 연구년을 맞아 들떠 있었다. 그러나 해외로 나가 밀린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은 틀어지고 말았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던 감염병의 유행은 학교 교육의 혼란을 몰고 왔다. 교수와 학생의 위치가 정확히 구획된 사각형 공간 안에서 지식을 전수하던 전통적인 수업의 형식은 온라인 비대면이라는 변화를 맞이했다.

고백하건대, 연구년을 보낸 덕분에 수업 현장을 떠나있던 나는 그런 변화를 남의 일 보듯 했다. 코로나19는 곧 끝날 테고, 머지않아 그전처럼 교실로 돌아가게 되리라 믿었다. 물론 1년이 지나도록 변화가 없는 상황에 그런 기대는 깨지고 말았다. 교실로 복귀하면서 가졌던 당혹감은 배가되었다.

팬데믹은 대학 교육 현장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전면 온라인 교육은 때로는 실시간 접속으로 때로는 동영상 제작으로 시도됐다. 교수에게 주어졌던 교실의 주도권은 급격히 약화되고 학생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수업에 참여해야만 효과를 낼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대학 교육이 지식과 정보를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제 교수와 학생은 상호작용(interaction)을 넘어서서 상호의존(interdependency)의 단계로 나아가만 했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에 더욱 심각해졌다. 팬데믹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온 교수와 학생은 이전과는 다른 존재였다. 교육의 변화, 즉 교육 인프라와 교육 콘텐츠의 변화 속에서 교수와 학생은 새로운 교육을 만들어가야 하는 동반자가 되었다. 교수와 학생이 함께 만드는 교육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은 불가결한 형식 가운데 하나일 수밖에 없다.

동영상을 수업의 단위로 인식…동영상마다 학습목표 있어야

사실 이런 변화는 코로나19가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 대학 교육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예견된 것이었다. 내가 속한 대학은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해 전부터 새로운 단과대학 설립을 논의했다. 코로나19는 마침 그런 논의를 가속화했고, 2년 전 글로벌 창의융합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융합인재대학을 신설했다. 융합인재대학은 전통적인 ‘학과’나 ‘전공’ 개념을 쓰지 않으면서 학생이 주도적으로 3개의 선택모듈을 이수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선택 가능한 모듈은 모두 12개다. 외국어(영어, 아랍어, 중국어), 국제전략(EU, 미국‧영연방, 중동‧이슬람, 중화권), 문화산업콘텐츠(테크노미디어디자인, 패션‧관광, 게임‧한류), 융합비즈니스, ICT‧AI가 그것이다. 창의융합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새로운 교육 방법이 접목되어야 했다. 외국어 사고 수업, 토론 중심 수업, 문제발굴 및 해결 수업, 현장 중심 강의, 실무 적용 강의, 블렌디드 러닝 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임 교수도 학생과의 소통에 있어 즉시성과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카카오톡 단체방을 활용했다. 학생들은 이 '톡방'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은 수업 동영상 자료 이외에 피피티 자료에 대한 학생의 요청과 이에 대한 응답 및 학생의 반응이다. 사진=임대근
임 교수도 학생과의 소통에 있어 즉시성과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카카오톡 단체방을 활용했다. 학생들은 이 '톡방'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사진은 수업 동영상 자료 이외에 피피티 자료에 대한 학생의 요청과 이에 대한 응답 및 학생의 반응이다. 사진=임대근

중국어와 문화콘텐츠 관련 모듈을 담당한 나는 블렌디드 러닝에 집중했다. 블렌디드 러닝이라는 개념은 꽤 오래된 것이다. 플립드 러닝(flipped learning)도 비슷한 용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두 용어가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블렌디드 러닝은 여러 수업의 형식을 뒤섞는 경우를 모두 아우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 교실과 현장의 결합, 이론과 실습의 결합 등 혼합형 수업이 그 사례에 포함된다. 플립드 러닝은 ‘거꾸로 수업’ 또는 ‘역진행 수업’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대체로 동영상 강의를 사전에 제공하여 학생이 이를 학습하게 한 뒤, 교실에서는 질문과 답변, 상호 토론 등 형식의 수업을 수행하게 된다.

‘한국어-중국어 비교’ 수업은 1학기에는 발음과 어휘를 중심으로 2학기에는 어법과 표현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온라인 수업에 적응한 중국어 초급 학습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 성격을 감안하여 과감하게 플립드 러닝을 채택했다. 동영상 제작은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의 도움을 받았다. 온라인 교육을 통해 익숙해진 화면 구성이 도움이 됐다. 필요할 경우 간단한 편집을 거쳤다.  

중국어 관련 지식을 24개 주제로 나누어 주차별로 15분 안팎의 동영상을 2개씩 제공했다. 플립드 러닝을 위한 동영상은 전달하고 싶은 지식의 단위를 짧게 나누는 방법이 중요하다. 학생들은 하나의 동영상을 수업의 단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동영상 하나당 중요한 학습 목표를 한 가지씩 제공해서 집중을 유도했다. 최근 숏폼이 유행하면서 짧은 영상콘텐츠를 선호하는 추세에 맞추어 동영상의 길이도 최대 20분을 넘기지 않으려고 했다.

동영상은 1주일 전에 제공했다. 학습 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동영상을 업로드하는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교실에서 만나면 동영상 강의에 관해 간단한 질문과 답변 시간을 가졌다. 이 단계에서 학생이 실제로 동영상을 시청하고 학습했는지를 확인하는 간단한 퀴즈 풀이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어 발음과 표현을 1대 1로 반복 연습했다.

수업이 끝난 뒤에는 SNS 커뮤니티를 활용하여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학습 내용을 질문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SNS 커뮤니티는 기존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습관리시스템(LMS)이 갖지 못하는 즉시성과 친밀감을 더할 수 있어서 유용했다.

플립드 러닝에는 교수‧학생 신뢰 중요

플립드 러닝은 동영상 자료가 남아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교수의 설명을 반복해서 학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영상은 전통적인 수업에서 교재를 담당하던 책의 역할을 대신하는 강의 교재가 된 것이다. 동영상 시청에 익숙한 학생에게 지속적으로 보존 가능하고 반복적으로 재생 가능한 수업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은 플립드 러닝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플립드 러닝은 그 명칭대로 ‘러닝’을 강조하면서 학생의 주도적 행동을 요구한다. 이는 대학 교육이 지식과 정보의 일방향 전달 방식에서 교수와 학생의 쌍방향 상호의존 방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강조되는 표현이다. 이제 교수의 ‘티칭’에만 의존하는 교육은 지나갔다. 교수와 학생은 상호의존 관계를 형성하면서 함께 가르치고 함께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수와 학생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중요한 규범들을 수업 설계에 미리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동영상의 저작권을 보호해야 할 의무, 동영상을 활용한 사전 학습을 수행해야 할 의무를 확인하고, 자율적인 학습이 수행되어야만 학습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코로나19는 대학 교육 변화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대학 교육은 이미 대전환과 혁신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디지털 전환과 맞물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융합하는 수업의 형식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플립드 러닝은 이미 ‘뉴노멀’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의 주도권과 능동적인 참여를 강조하면서 주체적인 사고를 거듭하게 하는 수업 형식으로서, 플립드 러닝의 수준을 높이면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임대근 한국외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중국영화, 문화콘텐츠 담론, 문화정체성과 스토리텔링을 연구를 교육하고 있다. 현재 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 회장,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최근 지은 책으로 『착한 중국 나쁜 차이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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