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7:45 (금)
‘건축’ 속의 ‘도시’ … 동네 골목길 연상
‘건축’ 속의 ‘도시’ … 동네 골목길 연상
  • 최재석 한라대
  • 승인 2006.07.0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건축비평_렘 쿨하스의 ‘서울대미술관’

리움미술관의 ‘블랙박스’로 새로운 건축철학을 보여줘 화제가 됐던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의 건축을 1년 반이 지난 지금 서울대미술관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가 1996년 5월 서울대 현장을 방문하고 설계에 착수했으니, 꼭 10년 만에 준공된 셈이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양호한(?) 자연림을 보호해야한다는 관악구청의 견해와 입장을 달리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2년 후의 1998년 설계안에서는 조경림도 보호하고 지형적 특성을 살려 작은 언덕과 언덕을 연결하는 브리지 컨셉을 모토로 했고, 4년이 지난 2002년에는 또 다른 수정안이 제안됐으나 실행되지 못했다. 올해 완공된 형태는 그 세 번째 제안이었다.

기본 컨셉은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커뮤니티 관계의 설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건물 전체로 보면 단순한 직육면체의 매스(mass)를 지형의 형세(현 부지는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은 지형임), 인간의 동선, 그리고 내부공간의 확장을 고려한 변형 프로그램으로 원래의 자연환경과 건축이라는 인공물이 부담없이 겹쳐지는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러한 시도는 외벽의 솔리드(solid)한 부분과 창문의 보이드(void)한 부분의 적절한 프로포션으로 파사드의 흐름을 통해 자연과 인공의 통합을 꾀했다. 뿐만 아니라, 건축물로의 접근에 대한 고려에서 건축물이 가지는 수직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건축물의 매스 일부를 지상에서 띄워, 자연과 건축물이 교차되고 이곳에 인간의 흐름을 아우르는 공유공간이 형성되도록 배려했다.

미술관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외부에서 풍기는 흐름은 내부로도 이어져 있다. 앞으로 툭 튀어나온 캔틸레버(cantilever: 발코니와 같이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 하부의 경사로를 따라 안으로 유도되고, 안에서는 계단과 경사로가 적절하게 분배되어 이를 통해 관람객들을 전시관 상부로 끌어올리고 있다.

건축물은 중심 코아에서 각 방향으로 튀어 나온 구조물의 힘을 받도록 집중돼있고, 외관은 H형강의 틀에 불투명한 U-glass를 덧씌워, 틀과 유-글래스의 절묘한 중첩이 옛 여인네의 속치마를 연상케 할 정도로 부드러운 멋을 지니게 했다. 이런 광경은 3층에서 관람을 끝내고 중정의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도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이곳은 벽 표면의 요철(凹凸) 스크린에 천창의 빛이 반사되면서 미묘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4개 층이 통으로 오픈된 중정은 코아에 접해 있으며, 이곳으로 모든 기능이 통합돼있다. 중정의 천창으로부터 유입되는 자연채광은 지하실까지 비추고 있는데, 다만, 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받고 있는 3층 전시공간은 천창으로 유입되는 빛의 양이 지나치게 많아 미술품을 감상하기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통로의 전시공간은 그림을 감상하기에 좁고,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다가도 이동거리가 짧아 아쉬운 점이 남아 있다.

렘 쿨하스는 바로 이러한 것을 노린 것일까. 관람객과 미술품으로 한정된 기존의 전시공간보다는 뭔가 불안정하고 블특정한 다수의 흐름을 통해 자연스러운 공간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또한 일상성의 재미와 특정한 미술품 감상이라는 이중적 코드를 융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1층에서 3층으로 이동하면서 2층의 다목적홀을 통과하게 된다. 다목적홀은 캔틸레버의 실내공간으로 이곳에 계단형의 불규칙한 오픈 스테이지를 만들고 경사로를 따라 3층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필자가 방문할 당시 이곳에서 두 여학생이 천창의 밝은 빛을 받으며 마주앉아 즐겁게 퍼즐게임을 즐기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이런 모습은 3층의 전시공간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은 기존의 획일적 수평공간이 중층공간으로 변형되면서 다양화되는 추세라 하겠다.

또한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하나로 오픈된 중정은 감싸는 듯한 계단과 경사로, 그리고 그 내부로 다시 한번 감싸 도는 중층적 접근으로 유기적 통합이 이뤄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렘 쿨하스의 공간적 특징은 ‘건축 속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우리 동네의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내부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같으면서 서로 이어져 있어 미로와도 같다. 한참 이동하다보면 이곳을 본 곳인지 아닌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근대적 공간구조와 사뭇 다른 양상이 존재한다.

이러한 렘 쿨하스의 건축적 접근을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클라이언트와의 상호이해에 있다. 자칫 클라이언트와 부딪칠 수 있는 것들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건축가의 의지를 살려가는 여유를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대지가 갖는 특성을 그 지역의 시간과 분위기라는 역사성에 인위적 건축물의 개입으로 인한 단절을 흐름이라는 지역적 맥락에서 접근하려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부공간에서 시선과 빛을 의식하면서, 필요에 의한 공간을 흐름으로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의 전개가 가능하도록 배려했다.

렘 쿨하스는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선생님의 건축철학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하나의 철학을 갖는다는게 비생산적인 일이죠. 변화하는 사회에서 철학은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그의 건축언어를 통해 과거지향보다는 시대를 인식하고 그 곳의 역사를 함축하는 현실에 더 무게를 두고 도시 건축적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정신을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최재석 / 한라대·건축공학

필자는 일본 橫浜國立大에서 ‘되오 반 두스부르흐와 ‘더 스테일’ 건축운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네덜란드 근대건축’ 등의 저서가 있다.

렘 쿨하스(Rem Koolhaas, 1944~ )는
하버드대 건축학부 교수인 렘 쿨하스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나, 저널리스트인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 식민지 인도네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0대에 협동설계조직인 OMA를 설립하고 ‘정신착란증의 뉴욕’(1978)을 출판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최근에는 프리츠커 건축상 (2000)과 RIBA 금메달(2004)을 수상했다. 주요 건축물로 ‘중국국영방송본사사옥’, ‘미국 로스엔젤레스박물관’, ‘리움미술관’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