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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영혼을 위한 길 찾기 
허기진 영혼을 위한 길 찾기 
  • 김병희
  • 승인 2023.02.09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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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광고로 보는 시대의 표정16  이문열의 『그해 겨울』과 『사람의 아들』

바둑판 앞에 마주앉아 “몇 급 정도 두시죠?”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길만 조금 알아요.” 길만 알다니. 길을 알면 다 아는 거 아닌가? 불쑥 바둑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길 찾기에 대한 소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문학평론가나 문학연구자들은 소설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1979)은 종교 소설로, 『그해 겨울』(1980)은 성장 소설로 구분하고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그 둘을 묶어 ‘길 찾기 소설’이라 부르고 싶다.

원래 『사람의 아들』은 계간지 <세계의 문학> 1979년 여름호에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게재됐다가 다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종교의 길을 묻는 이 소설에서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져, 무엇이 바람직한 신의 면모인지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곧이어 출간된 『그해 겨울』에서는 갓 스물에 접어든 젊은이가 삶이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방황하는 성장 과정을 그렸다. 신을 찾든 자신의 존재를 찾든 두 소설에서는 그 무엇을 찾아 헤매는 허기진 영혼이 이야기를 이끌어갔다.

민음사의 『그해 겨울』과 『사람의 아들』 광고(동아일보, 1980. 1. 8.)

민음사의 광고에서는 팔짱을 끼고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가의 모습과 함께 『그해 겨울』(1980)과 『사람의 아들』(1979)이란 소설 제목을 같은 비중으로 부각시켰다(동아일보, 1980. 1. 8.). “이제 그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회고적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해 겨울』에서는 성장기 젊은이의 방황과 고통이 생생하게 녹아있다.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철저한 절망 위에 기초한다고.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 젊은 날의 방황에 주목한 길 찾기 소설이다. 

광고의 위쪽 지면에서는 평론가 송재영의 평문을 광고 카피로 차용했다. “불안·고독·절망·방황- 이를테면 이런 젊음의 열기가 문면(文面) 가득히 배어있는 ‘그해 겨울’은 이데아적 세계를 열망하는 정신적 모험의 여정표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해 겨울’은 지난 세기의 서구 낭만주의를 연상시켜 주기도 한다.

가령 <샤또브리앙>의 ‘르네’와 같은 순결성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책값 1,800원도 소개했다. 좁은 지면에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의 단편소설 『르네(Rene)』(1802)까지 언급했으니 집중력을 흩트리는 아쉬운 측면도 있다. 

민음사 『사람의 아들』 초판의 표지(1979)

지면 아래쪽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제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란 사실을 강조하며, 책 광고에서 자주 하듯이 신문의 서평을 카피로 차용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기독교의 신(神) 개념을 중심으로 진실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신을 추구하며 성경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작중의 주인공은 그리스도가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신(神)의 아들’ 또는 ‘말씀의 육화(肉化)’에 지나지 않으므로 육체를 가진, 인간의 진정한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또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의 능력 이상을 요구했으므로 인간의 절망을 가중시켰으며 특히 십자가는 인간의 절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책값 1,700원이란 정보도 빠트리지 않았다.

다들 알다시피 『사람의 아들』은 민요섭이 시체로 발견되자 남경사가 살인 사건을 수사하며 민요섭을 살해한 조동팔과 민요섭의 관계를 추적하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소설인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했다. 남경사는 범인을 찾기 위해 관련자들을 찾는 와중에, 민요섭이 아하스 페르츠라는 전설적 인물에 대해 쓴 『쿠아란타리아 서(書)』라는 소설을 발견한다. 민요섭이 소설을 쓰며 끝까지 비판하려 했던 대목은 신의 독선에 관한 문제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이런 질문에서 ‘무엇’을 재빨리 포착하면 좋을 텐데 그 무엇은 절대로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의 아들』에서는 메시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그해 겨울』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에 도전하는 젊음의 무모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도록 했다. 

소설에서는 각각 신이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젊은 날의 방황을 통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정해진 답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고달픈 육신과 허기진 영혼을 위해 스스로 길 찾기를 시도해야 한다는 시대의 표정을 제시했다.

특히 『사람의 아들』에서는 진정한 메시아의 문제를 제기했다. 소설에서는 예수님 이전에 아하스 페르츠의 스승인 가짜 메시아 테도스가 나타나 이렇게 가르쳤다고 전했다. “우리에게 오는 자는 빵과 기적과 권세를 가지고 와야만 진정한 메시아이다.” 테도스는 인간 세상이 죄의 소굴인데도 하느님은 어떤 해결책도 주지 못한다며 회의론을 부추겼다.

하지만 기적과 권세를 가져와야 메시아라고 할 수는 없다. 소설을 읽다보면 묘하게도 부정의 부정을 통해 오히려 신앙심이 강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성(神性)은 늘 고독하겠지만 결국 허기진 영혼을 달랠 양식을 주리라는 강한 믿음이었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편집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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