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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교육 미신’
어설픈 ‘교육 미신’
  • 손화철
  • 승인 2023.02.06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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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손화철 논설위원 / 한동대 교양학부 교수·기술철학

 

손화철 논설위원

교육은 배움을 위하지만 배움을 보장하지 않는다.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야 다양하다. 선생이 잘 모르거나 알아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학생이 딴 생각을 하거나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훌륭한 선생과 학생이 만나도 어느 한 쪽이 아무 의욕이 없으면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학생으로든 선생으로든 누구든 교실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이 복잡한 함수를 이해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노력의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것도 겸허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교육과 배움을 동일시하는 교육 미신은 놀라울 정도로 많이 퍼져 있다.

필수과목 지정이 좋은 예다. 필수과목을 지정하는 것은 그 교과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 워낙 중요한 기본이어서 모든 학생이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이 그 교실에 앉아 있다 해서 저절로 배움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학생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과목이라 하여 열의를 내지 않고, 교수는 이미 잡아 놓은 학생들이라 생각하여 그들의 반응에 무감해지는 경우가 많다. 정말 중요하다 생각한다면 학생들의 의욕을 일으킬 능력이 있는 최고의 선생을 찾고 학습을 도울 조교를 많이 붙여주면 될 테지만, 보통은 형편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형편이 안 좋을 때 미신이 잘 먹힌다.

해마다 늘어나는 직장에서의 여러 가지 온라인 의무교육은 한술 더 뜬다. 법으로 정하고 이수율도 보고하지만, 컴퓨터에 교육 비디오를 돌려놓고 다른 일 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그중에 진지하게 교육에 임하는 이들이 있고, 당장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그렇게라도 성폭력 예방이나 작업장 안전의식 제고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것은 확인할 수 없는 기대의 영역일 뿐, 온라인 교육 이수증이 보장하는 바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교육 미신은 행정편의주의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넘쳐나는 교육 방법론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방법론을 써도 학생이 의욕이 없으면 배움을 보장할 수 없다. 의욕이 넘치는 학생은 선생이 조금 모자라도 잘 배운다. 그러니까 의욕이 있는 학생을 염두에 두고서 이런저런 교육 방법론을 제안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토론식 수업이 일방적 강의보다 배움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절대선이라 할 수는 없다. 일방적으로 강의해도 학생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이 있고, 토론식 수업이 학생에게 패배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더 나은 교수법을 시도하고 배우려는 노력과 특정 방법론이 교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조급증과 일반화도 교육 미신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교육하면 배움과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바람이 없이 선생 노릇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바람이 교실 안 여러 요소들의 미묘한 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기계적인 교육 미신으로 변질되면 그 피해는 엄청나다.

필수과목의 지정, 온라인 의무교육, 이런저런 교육 방법론 모두 한계가 명확한 고육지책임을 인정하고 배움이란 기적에 대한 약간의 경외심을 가지면 좋겠다. 결과에 미신적으로 집착하기보다 배움의 과정을 일구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과 태도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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