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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비평_ 정책홍보에 매몰된 관료들 寄稿 칼럼
칼럼비평_ 정책홍보에 매몰된 관료들 寄稿 칼럼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6.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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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인가 칼럼인가 … 공허한 자화자찬 많아

정부부처 관료들의 신문 기고 글 가운데 칼럼다운 칼럼을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촌철살인’ 적인 글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비평적 견해가 담겨 있는 글을 기대해보지만 그조차도 드물다. 마치 짜고 친 고스톱처럼, 여러 논거를 들어 ‘주장’하고는 있지만 기고자의 ‘주관’이 드러나지 않는 글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대개 실무 담당 사무관이 작성하고 국장이 책임지는 식으로 글쓰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지만, 그 무색무취한 정도가 공문서를 연상시킬 정도여서 어지간한 감수성을 갖지 않고는 글맛을 느끼기 힘들다.

독창적인 문체가 없는 만큼, 기고 글들을 여러 개로 유형화하기도 쉽다. 새로운 사업이 시작될 때 등장하는 ‘정책홍보형’ 글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형’ 글도 꽤 있다. 동일한 주제를 가지고 부처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여러 일간지에 기고하는 ‘릴레이형’ 기고도 간혹 눈에 띈다.

가령, 정승 농림부 농업구조정책국장의 ‘농지 임대수탁사업 1석3조’(서울신문, 2006. 4. 17)는 사업에 대한 정책홍보형 글일 뿐 아니라, 제도의 효율성에 대한 자화자찬형 글이기도 하다. 최완근 국가보훈처 보훈선양국장의 ‘국민들이 보훈선양 전면에 나서야’(한국일보, 2006. 3. 28)도 ‘미래에 대한 정신적 투자’ 사례 중 “국가유공자 발굴포상의 확대가 대표적 사례”라고 언급하는 등 자화자찬형 칼럼을 선보였다.

통계 따로 주장 따로 … 지루하고 평이한 서술

대표적인 ‘릴레이형’ 기고로는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촉구하는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지사장·팀장·실장·차장들의 칼럼들을 꼽을 수 있다. 이 기관은 이사장을 비롯해 서울지사장, 제주지사장, 부산지사장들이 지난 1년 동안에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에 거의 유사한 주제로 10여 차례 이상 칼럼을 게재했다.

일간지의 오피니언·여론팀에서 관료들의 글들이 인기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관료들이 기피하는 신문이라 요즘엔 부쩍 줄었지만, 들어와도 주로 정부의 입장을 해명하거나 홍보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자신들이 잘 한 부분만을 얘기한다”라며 관료들의 기고글이 지닌 특징을 설명했다.

관료들의 글 중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정책홍보형’ 글들이 한없이 늘어진 활시위처럼 지루한 설명으로 가득하다면, 그 다음으로 곧잘 등장하는 ‘반론제기형’ 기고 글은 긴장감을 지닌 편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이고 매력적인 글쓰기’로는 볼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선 읽는 재미가 없다. 경직된 어투에 각종 통계자료를 논지의 근거로 활용한 형식의 글이 많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이슈임에도, 자신의 정책적 판단과 가치관을 드러내지 않고 쓰려다보니, 객관적이라 여겨지는 통계 수치에 기대고 있는 것. 때문인지 통계수치와 주장이 어색하게 맞물려 있거나, 입맛에 맞는 통계만을 제시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 이미 나온 ‘정부의 결론’에 맞춰 빈약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례도 많다.

권혁세 재정경제부 재산소비세국장이 기고한 ‘(유류세 인하) 이래서 반대 - 에너지 절약 정책에 역행’(국민일보, 2005. 9. 9)만 봐도 그렇다. 권 국장은 “유류세를 인하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기고글을 통해 “유류세를 10% 인하할 경우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74원 경감되는 효과를 발생하지만 국내 주유소 가격이 자율화돼 있어 정유사에서 출고가격을 74원만큼 인하해 공급하더라도 주유소 단계에서 세금 인하 폭이 최종 소비자 가격에 모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라면서 “(…) 유류세를 10% 인하할 경우 연간 2조1천억원 가량의 정부 세입 감소가 예상되지만 그만큼 민간 소비 증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상세한 리터당 금액까지 거론하며 설명하고는 있지만, 요지는 유류세를 인하해도 소비자들이 체감하지 못할 수 있고, 세금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주장대로라면 역으로, 유류세 인하로 가격 하락을 체감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된다. 제시되는 숫자로 인해 신뢰감을 주지만, 따져보면 주장의 논거로 보기에 불충분한 측면이 많다. 수치를 활용해가며 ‘있을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경우’처럼 제시한 다음, 반대 입장을 밝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시형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의 ‘스크린 쿼터-잃는 것보다 얻을 것 많다’(동아일보, 2006. 2. 8)는 또 어떤가. 이 글에서 이 국장은 영화의 발전은 국가 경제력 향상과 상관관계가 있다면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이 1.7%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일부 전자제품은 5%대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FTA가 갖다줄 시장 확대 기회는 적지 않다. 자동차와 그 부품은 관세율이 2.5%이지만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조금만 낮춰도 큰 도움이 된다”라며 장밋빛 미래를 예시한다. 제시되는 관세율은 한미 FTA가 경제 활성화를 도울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적시된 것들이다. 그 외의 논거는 찾을 수 없다. 

미리 정한 결론에 ‘끼워맞추기식’ 논거 제시

눈여겨 볼 부분은 이 국장이 주장에 유리한 통계 수치만을 활용하고, 불리한 수치는 감췄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경우 미국에 수출할 때의 관세율이 2.5%인 점은 얘기하지만, 반대로 한국으로 수입할 때의 관세율인 8%는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의 수입 급증이 일어날 수도 있는 부분이다. 미국에서 관세율이 높은 제품은 우리나라가 생산하지 않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도 누락됐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정치학)는 “개방이 대세이고, 개방해야 좋은 것이며, 수출을 늘려야 경제가 산다는 공허한 주장을 동어반복하면서, 논거를 제시할 때도 자기네들이 유리한 것만 끌어다 쓴다”라며 관료들의 의도적인 사실 왜곡과 허술한 논리 전개 방식을 지적했다.

위에서 큰 정책방향이 정해지면, ‘끼워맞추기’를 통해서라도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관료들의 속성이기 때문에, 관료들의 글을 접할 때에는 드러난 언명 이면에 무엇이 감춰졌는지를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한다는 것이다. 통계를 활용한 글들이 곧잘 범하는 오류를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

하품이 저절로 일만한 정책홍보형 글은 그렇다 쳐도, 정부 관계자의 의도에 따라 숫자가 남용된 참신하지 않은 글을 과연 ‘칼럼’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 동향_주요 일간지 기고 글은 어떻게 선정되나

경찰관 기고가 많은 이유 … 중복투고 골치

일간지에 가장 많이 기고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일간지의 오피니언면이나 독자란, 여론면을 담당하는 관계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경찰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담당 기자들은 수많은 기고자들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지만 경찰의 이름만은 기억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신문 기고가 인사고과에 반영됨에 따라 경찰들이 많이 기고한다는 것.

그러나 많이 기고한다고 해서 다 실리는 것이 아니다. “방향지시등을 반드시 켜야한다”라는 식의 평이한 교통법규를 읖조리는 글은 실릴 리 만무하다. 명문화된 규정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글의 수준과 내용이 신문사의 암묵적 원칙과 맞아떨어져야만 게재가 결정되는 것이다.

문화일보 관계자는 “정부정책이나 사회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거나, 국민들의 불편을 지적하면서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글이 선별되고, 이후 데스크가 최종 결정한다”라고 얘기했다.

다른 주요 일간지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기고가 엄청나게 넘쳐나기 때문에 보조 인력을 여러명 둬서 1차적으로 보는데, 짜임새 있게 구성되고 시의성 있는 사회 이슈를 다룰 때 글이 실리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찰이라고 해도 참신한 제안을 담고 있으면 실리는데, 대개 교과서식으로 뻔한 얘기를 하고 있어서 선정이 잘 안 되는 편이고, 교수들의 경우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토론전문 지면인‘왜냐면’에서 시의성 있는 시사이슈와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독자기자석’에서 일반인들의 신선한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한다”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KTX 승무원 사태, 시각장애인 생존권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공공성 등을 우선시했다.

오피니언면이나 독자란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중복투고’였다. 경향신문의 담당자는 “한꺼번에 모든 신문사에 글을 돌릴 때가 많은데, 다른 매체에 기고됐을 경우 투고 취소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거나,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경우, 논거가 불확실하거나, 비방·중상하는 경우, 홍보성이 짙은 내용일 경우에 우선 배제된다. 정부 관료들의 정책 홍보성 기고 글도 여기에 속해서, 걸러지는 때가 많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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