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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거나 스노비즘이거나 … ‘성숙함’ 보고 싶다
아마추어거나 스노비즘이거나 … ‘성숙함’ 보고 싶다
  • 노이정 연극평론가
  • 승인 2006.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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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비평_40대 중견연출가 3人을 통해 진단한 한국연극의 오늘

1980년대 말 이후 해외작품들의 내한이 빈번해진 가운데 정작 한국 연극에는 예술로 볼 수 있는 연극이 거의 없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본고장 영국의 바비칸센터 무대에 “진출”했다고 매스컴에서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을 상찬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시각적 볼거리에 치중해 예쁘게 포장한 “토착형” 셰익스피어 선물세트일 뿐, 예술작품으로서 새로움은 없다. 바비칸의 피트(소극장)로 오는 11월 공연하러 가는 오태석(극단 목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한국인의 죄의식을 실어 독보적인 정신세계를 엿보게 하지만 이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한국 연극은 소비사회 법칙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아마추어리즘과 스노비즘의 늪으로 깊숙이 빠져가고 있다. 한편에선 프로페셔널이라고 착각하는 아마추어리즘이 연극을 우습게 만들고, 다른 한편에선 그저 눈요기거리인 화려한 무대가 예술로 포장된다. 지난 10여년간 연극 관련학과가 5개에서 50개 이상으로 늘었고 문화재단의 창작지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예술적 수준은 나아질 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우리 연극은 그간 지니고 있었던 역사와 인간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신자유주의 소비사회 속으로 자유낙하하고 있다. 모든 권위와 사회적 연관관계의 제거가 새로움으로 환영받고 모든 종류의 가치 추구는 촌스러움으로 인식된다.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배우들의 재롱에 가까운 유희가 가장 사랑 받는 아이템이며, 감상주의적 멜로드라마가 오늘날 우리 연극의 평균적 정서다.


유서 깊은 극단들인 ‘미추’, ‘아리랑’, ‘연희단 거리패’, ‘작은 신화’는 창단 20주년, ‘76단’은 30주년, 극단 ‘자유’는 40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우리 연극에는 왜 미래가 보이지 않으며, 성년의 징후를 보이지 못하는가.

“현실과의 경계를 지워 존재 자체가 없다”

연극과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이런 현상의 바탕에 있다. 아무 극장이라도 대관만 하면 누구라도 연극을 할 수 있는 상황, 가로 세로 10미터 이내의 작은 소극장에서 무대와 객석은 한 세계이고 관객과 배우도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배우는 연극 안으로 들어가기보다는 관객과 직접적 정서 교류를 원한다. 대중적 코드의 연극으로 관객과 승부하려는 젊은 연극 지망생들로 대학로의 극장은 넘쳐나고 이것이 약간의 세련미를 갖추면 드디어 ‘예술’이 되고 있다. 한국의 무용이 현실과 경계를 꽉 막아놓아 부패해 있다면 연극은 현실과 경계가 없음으로써 존재가 없다.


이런 연극 상황에서 우리 연극 문화를 이끌 중추 노릇을 해야 할 40대 중견 연출가들은 과연 제자리를 찾고 있는가. 최용훈, 박근형, 이성열, 김광보, 조광화 등 40대 초·중반의 연출가들은 90년대 이후 한국 연극과 생사를 함께 해왔다. 그 중에서도 최용훈, 박근형, 이성열은 10년 이상, 길게는 20년에 이르는 지속적인 연출활동을 해왔다. 그럼에도 우리 연극에서 이들의 역할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은 60년대 초반 생으로 386세대에 속한다. 1986년에 극단 작은신화를 만들어 20년 동안 활동해온 최용훈, 1986년 극단 76단에 들어가 연극작업을 시작한 박근형, 극단 목화, 산울림 등에서 활동하다 1996년 백수광부를 만들며 자기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 이성열. 이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특정 양식이나 전통에 토대를 두고 연극연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의 기반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연극써클 활동이나 극단활동이 연극을 시작한 계기다. 또한 이들은 현대 한국 사회현실에서 연극의 소재와 스타일을 끌어냈다. 이들의 연극에는 전 세대나 이후 세대에 비해 정치-사회성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마지막으로 이들의 연극은 거의 언제나 현대극, 그 중에서도 우리 창작희곡이었다. 외국작품을 하더라도 우리의 상상력으로 각색해 우리 사회 속으로 포용하고자 했다.

40대 중견 3인방의 2% 부족함

▲최용훈이 해석적 연출가로 인정받게 한 작품 ‘돐날’ ©
최용훈은 80년대 중반 대학연극 출신 젊은 동료들과 극단 작은신화를 만들어 카페순회 공연을 시작했으며 ‘전쟁음?악!1·2’(1990~91), ‘Mr. 매킨도·씨’(1993), ‘매직아이·스크림’(1995) 등 일련의 공동창작 작품을 연출했다. 제목이 말해주듯 언어유희와 배우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해 현대사회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스타카토 식으로 모았던 이 연극들에서 최용훈과 작은신화는 젊은이들의 재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정작 최용훈이 연출로 인정받은 것은 1998년의 ‘길 위의 가족’(장성희 작, 혜화동1번지)과 2001년의 ‘돐날’(김명화 작,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였다. 두 작품, 특히 30대가 된 386세대의 돌잔치날을 묘사한 후일담 리얼리즘 작품인 ‘돐날’에서 최용훈은 해석적 연출가로서 능력을 보여줬으며 작은신화의 배우들은 공동창작을 통해 닦아온 자연발생적 에너지를 작품으로 끌어들여 이 시대 가장 강렬한 연기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젊은 연극의 아이콘이 된 ‘청춘예찬 ©

연극계의 이단아로 반사회적 연극을 거침없이 만들어내던 기국서가 이끄는 76단에서 연극 수업을 시작한 박근형은 현재 한국의 중견 연출가 중 가장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1998년 ‘쥐’를 통해 ‘식인’을 주제로 한 그로테스크의 미학으로 관객을 놀라게 했던 그는 1999년 ‘청춘예찬’으로 이 시대 젊은 연극의 아이콘이 됐다. 이 작품은 파괴된 가족과 해체된 학교를 심상한 태도로 묘사하면서 사회적 가치판단에 대한 전복된 태도를 보여준다. 게다가 아무 장식 없는 맨 바닥에 요를 깔고 밥상을 차리면서 리얼리즘 연극관습으로는 불가능했던 것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 이 작품으로 한국연극의 외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 외에도 ‘만두’(1998), ‘푸른 별 이야기’(1998), ‘대대손손’(2000) 등 박근형은 주로 자작 연극을 공연해 왔는데 그의 작품의 환유적 수사학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는 가족, 세대, 아이, 식욕 등의 이름으로 연극에 편입됐다.


▲이성열의 그로테스크 가정비극 ‘그린벤치’ ©

이성열의 극단 백수광부는 처음에 극단명의 뉘앙스처럼 아마추어적 배우들로 구성됐고 이성열의 연출세계는 이 배우들과 함께 발전한다. 윤영선, 박상현, 김태웅 등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과 ‘굿모닝? 체홉’을 필두로 한 일련의 체호프 연작을 통해 이성열은 나름의 히피적 세계를 보여줬다. 그는 연극에 필수 장면으로 ‘난장’을 집어넣기로 유명한데,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인간 심리의 미묘함과 유희 본능을 충돌시키는 그만의 그로테스크다. 그에게 많은 상을 안겨줬던 2005년 ‘그린벤치’(유미리 작,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그는 탐미주의라 할 정도의 화사한 무대와 그로테스크한 가정비극을 섬세히 결합함으로써 연출가로서 성숙을 증명했다.


그런데 나름대로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이들 40대 연출가들은 아직 대극장 공연경험이 거의 없으며 20~30대 연극 초년생들의 틈바구니에서 함께 생존하고 있다. 오픈시어터의 정신을 계승한 최용훈이나 예술적 룸펜을 자처한 이성열, 기국서의 전위적 저항정신의 후예 박근형은 모두 인위적으로 구성된 특정 미학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이 이들의 정신적 건강을 증명하는 만큼이나 역설적으로 미학적 완성도의 결핍을 표상하는 것이다. 이성열은 ‘여행’(2005, 윤영선 작)에서 다시금 딜레탕티즘의 모습을 보였으며, 다작의 늪 속에서 예리한 날이 흐려지고 있는 박근형은 ‘선착장에서’(2005)의 거듭되는 개작을 통해 천재적 비판감각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요청되는 것은 더 날카로운 아방가르드의 세계다.


한편으로는 20년 전부터 지하소극장 연극으로 머물러온 우리 연극의 비루한 역사, 예술성으로 ‘초청’되는 것이 아니라 ‘대관’(돈)을 통해 유통되는 우리의 슬픈 연극 현실이 이들의 성장에 장애가 됐을 것이다. 지난 세월동안 연극인으로 생존하는 것만도 버거웠다. 이들이 터득한 생존의 법칙은 “많은 것을 얻지 않더라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작가, 배우들과 함께.

“생존이 우선인 시대는 갔다”

그러나 이제 연극 제도는 달라지고 있다.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조금씩 인정되기 시작했으며 지원제도를 통해 예술이 공공적으로 발전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가능한 만큼의 공적 지원과 최대치의 예술성 요구가 연극에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질의 풍요와 함께 성장한 젊은 연극인들을 중심으로 장식적 개념의 스타일이 난무하는 현 연극계에서 가난과 정신적 저항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이들 40대 연출가들의 존재는 분명 귀하다. 그러나 이대로는 부족하다. 그들에게서 제대로 된 성년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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