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3: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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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하다_『추상과 감정이입』] 미술사에서 추상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의 출간과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다. 이 시기는 예술가들에 의해 산업화된 도시의 추한 모습을 현실적인 주제와 왜곡된 형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때였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 미술을 이끈 그룹 중 하나인 다리파(Die Brücke)에 속한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28)와 놀데(Emil Nolde, 1867~1956)와 같은 화가들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전통적인 유럽 미술의 표현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단순화된 선이나 격렬한 색채를 통해 비사실적으로 묘사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표현주의 미술가 그룹인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는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접하며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되는데, 이 책을 읽은 이 그룹의 일원인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가 칸딘스키(W. Kandinsky, 1866~1944)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상에 대한 보링거의 인식이 자신들의 그룹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하는 추상회화의 이론적인 초석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통해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두 그룹은 현대미술사에서 각각 형상적 추상과 서정적 추상을 이끈 아방가르드로 평가한다.

책을 말하다 | 이승건 | 2023-05-26 1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