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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6건)

[이 책을 말하다_『추상과 감정이입』] 미술사에서 추상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의 출간과 직간접적인 영향이 있다. 이 시기는 예술가들에 의해 산업화된 도시의 추한 모습을 현실적인 주제와 왜곡된 형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때였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독일의 표현주의 미술을 이끈 그룹 중 하나인 다리파(Die Brücke)에 속한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1880~1928)와 놀데(Emil Nolde, 1867~1956)와 같은 화가들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불안을 전통적인 유럽 미술의 표현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단순화된 선이나 격렬한 색채를 통해 비사실적으로 묘사해 내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표현주의 미술가 그룹인 청기사파(Der Blaue Reiter)는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접하며 직접적인 관련을 맺게 되는데, 이 책을 읽은 이 그룹의 일원인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 1880~1916)가 칸딘스키(W. Kandinsky, 1866~1944)에게 보낸 편지에서 추상에 대한 보링거의 인식이 자신들의 그룹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그 결과 그들이 추구하는 추상회화의 이론적인 초석을 보링거의 『추상과 감정이입』을 통해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두 그룹은 현대미술사에서 각각 형상적 추상과 서정적 추상을 이끈 아방가르드로 평가한다.

책을 말하다 | 이승건 | 2023-05-26 10:43

[이 책을 말하다 『사랑의 현상학: 환상 없는 사랑을 위하여』] 저자는, 먼저, 철학적 현상학이 갖는 철학함의 소임(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상황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을 성찰)으로부터 과제(여러 전제를 변화시키면서, 철학하는 사람이 더는 부인할 수 없는 가정이라 할 불변하는 요소들 속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일)의 부여를 강조하고 점검한다(서언, 8쪽). 그리고 기존의 현상학은 철학함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매우 미흡했다고 평가하면서, 마침내 자신이 내 세우는 ‘새로운 현상학’(예를 들어, 신체성의 감정, 개체성의 현상학을 통해 아픔, 불안, 우울, 슬픔과 같은 인간적 고통을 인식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철학적으로 기여하고자 한 노력)이 그 역할을 위한 사유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 나선다. 물론 그 과제 중 하나가 ‘사랑을 공부하는 일’(서언, 9쪽)이라고 강조하면서, 즉 사람들이 사랑을 찾을 때 떠올리는 현상에 다가가는 일, 그리고 이 현상에 적합한 충만함과 섬세함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그 현상을 최대한 온전히 파악하는 일은 자신의 ‘새로운 현상학만이 적절히 해결’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서언, 10쪽).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은 4장(감정과 느낌으로서의 사랑)과 5장(상황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특히 7장(사랑과 신체)에서 신체현상학적 접근을 통해 섬세하게 관찰되고 독창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랑에 관한 여러 실례와 많은 문학작품들(예를 들어, 스탕달의 『연애론』(초판 1822), 386쪽 등)이 인용되고 있는데, 새삼 책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작품들과의 조우는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책을 말하다 | 이승건 | 2022-05-27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