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0: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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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㉜ 김회권 숭실대 교수(기독교학과)] 1990년대 초 소련 해체로 40년 이상 유지되던 동서 냉전 대결 체계가 붕괴되자 문명비평가들은 공산주의-집단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외치며 '역사의 종언'을 선언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가 냉전 이후 세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세계 체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은 이런 낙관주의를 대변했다. 후쿠야마는 헤겔적 의미에서 세계가 '역사의 종말'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후쿠야마의 낙관론을 상대화하는 사무엘 헌팅턴의 문명 충돌 가설이 등장했다. 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블록이 해체된 이후 공산주의 블록에 속한 역내 국가들 사이에서 한때는 공산주의적 억압 체제에 의해서 억제된 것처럼 보였던 민족주의적 갈등이 터졌다. 소련·유고슬라비아 해체 등으로 동유럽과 발칸반도에는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른 나라들이 19세기형 민족국가 건국 열정에 사로잡혀 갈등하고 투쟁했다. 헌팅턴은 이런 사태를 목격한 후, 냉전 체제 대결을 대신할 문화적 정체성 갈등, 혹은 문명들의 충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3-22 10:24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㉛ 이찬웅 이화여대 교수(인문과학원)] 애초 제안받았던 강연의 주제는 ‘21세기 예술의 사조와 경향’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 강연의 주제를 삼기에는 몇 가지 측면에서 어렵다고 생각됐다. 우선 첫 번째 문제는, 예술의 수없이 많은 장르를 다루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미술과 음악, 무용과 영화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한 다룬다 해도 너무 추상적인 얘기가 돼서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 발표의 범위를 현대 미술 중에서 주목할 만한 몇몇 작품을 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두 번째 문제는 거리의 부재와 양식의 다양화에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이 강연 제목의 ‘21세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산술적인 표기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분기점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이를테면, 역사학자들이 흔히 말하듯이, 2001년에 있었던 9·11 테러 사건을 기점으로 삼든지, 또는 미디어의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는 아이폰이 등장한 2007년을 기점으로 삼는 일 등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미술의 경우, 사정은 어떠하며, 어디를 기점으로 삼을 수 있는가? 다르게 표현하자면, 1990년대와 2000년대는 단절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가?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3-14 08:57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㉚ 신형철 서울대 교수(영어영문학과)] 간토대지진(1923) 당시 한 기쿠치 간(菊池寛)은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들 문예가에게 있어서 제일의 타격은 문예라고 하는 것이 생사존망의 갈림길에서는 골동 서화 따위와 마찬가지로 무용의 사치품임을 똑똑히 알았다는 점이다.” 재난은 반복되고 탄식도 그렇다. 동일본 대지진(2011) 당시 다카하시 가쓰히코(高橋克彦)의 고백은 한 세기 전 선배 작가의 목소리를 닮았다. “예술이니 뭐니 말할 상황이 아니다. 그것보다 우유와 가솔린의 확보가 소중하다. 이러한 사실에, 문예에 관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절망과 슬픔을 느낀다. 내가 해 왔던 일은 결국 무의미한 것이었을까?”이처럼 현실의 그라운드 제로는 그대로 문학의 그라운드 제로가 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면 문학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아니었던) 것이 되고 만다. 지금껏 사회적으로 받아온 대접이 근거 있는 것이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문학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라운드 제로’가 ‘출발점’이라는 뜻으로도 쓰이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학의 그라운드 제로는 문학이 “골동 서화”가 아니라 “우유와 가솔린”일 수도 있음을 새삼스럽게 입증하는 반론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네이버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 최승우 | 2024-03-08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