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65] 19세기 프랑스 아나키스트 운동의 주역들 프루동은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나키스트 사상가였지만 유일한 아나키스트는 아니었다. 1848년 혁명 당시 안셀므 벨레그릭(Anselme Bellegrique)이라는 무명의 혁명가는 프루동과는 완전히 별개로 '아나키는 질서다. 정부는 내전이다'라는 슬로건을 발표했다. 중앙아메리카로 사라지기 전에 그는 1850년대에 출판을 계속하여 (L'Anarchie, Journal de l'Ordre)이라는 제목의 잡지 두 호에 정부와 군대가 없이 코뮌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사회의 비전과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 박홍규 | 2021-11-15 10:10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31]풍요로운 사회보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 파리 리용 역에서 테제베를 타고 네 시간 정도 남동쪽으로 가면 도착하는 열차선의 종점이 프랑스 동쪽 끝에 있는 브장송이다. 그곳에서 자동차로 바위산을 넘어가면 바로 스위스 국경이고 그 너머에 베른과 취리히가 있다. 브장송은 17세기에 프랑스령이 된 곳으로 전통적으로 파리 정부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아나키스트를 비롯하여 반골들이 활약한 곳이었다. 브장송 역에서 나와 강을 향해 비탈길을 지나 강변길로 내려가면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 1809~1865)의 생가가 나온다. 그곳에서 한참을 가면 굽어지는 강이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 박홍규 | 2020-07-02 10:03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29] 경제적 평등이 없는 사회적 자유는 무의미하다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즘의 선구자’라고 부르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푸리에(Francois Marie Charles Fourier, 1772~1837)는 1772년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에서 태어나 공부했으나 유럽을 아우르는 행상이 되기 위해 학업을 포기했다. 혁명적인 테러 기간 동안 그는 투옥되어 거의 죽을 뻔했으나 2년간의 군 복무를 마친 뒤 계속 상업에 종사했고, 그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당대의 부패한 문명을 대체하는 거창한 계획을 세웠다. 북친은 푸리에를 최초의 사회생태론자였다고 본다. 우주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 박홍규 | 2020-06-10 09:48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