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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생명공학의 폭주
[대학정론] 생명공학의 폭주
  • 논설위원
  • 승인 2001.08.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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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0:44:37

최근 생명공학의 고속 질주는 21세기가 생명과학기술의 세기가 될 것임을 실감케 한다. 복제양 돌리가 탄생한 것이 3년 전인데 벌써 인간복제를 기정사실로 보는 사람이 많다. 아직 밝혀야 할 문제가 많지만 인간유전체 계획이 앞당겨 끝나게 되자 이에 편승해 한몫 보려는 벤처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한국의 생명공학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일찍이 젖소와 한우를 복제한 바 있는 한 교수는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해 15개국에 특허출원까지 했다. 2년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모 대학 의료원의 실험에서 한걸음 나아간 것이다. 또다른 한 박사는 잉여 수정란을 배아 간세포로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드디어 불똥이 우리 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당사자들은 이런 연구가 난치병 치료 등 인류의 복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장담하고 있으나 그것은 동시에 무서운 재앙을 가져올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규제할 생명공학 관계법이 전혀 없다. 생명공학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심의할 국가생명윤리위원회도 없다.

연전 여야는 각각 생명안전·윤리에 관한 법안을 내놓았으나 정쟁에 휘말린 국회에서 심의도 못된 채 폐기되었다. 국가생명윤리위원회는 정부 안의 여러 부서에서 끌어가려다가 국무총리 아래 두기로 합의하는가 하더니 과학기술부 산하로 낙착이 되었다고 한다. 과학기술부는 세계에 유례없는 생명공학육성법을 만들었고 금년에 2230억원을 연구에 투자하고 있는데 윤리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더구나 문제의 연구를 한 당사자들을 위원으로 내정해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이제 한국은 선진국으로 분류되고 있거니와 개발도상국 아닌 나라에서 국가생명윤리위원회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 정도이다. 이왕 늦은 바에야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고 강력한 예산 뒷받침으로 제구실을 하게 해야 한다. 복제 말고도 위원회가 다룰 문제는 너무나 많다. 학계에서조차 유해 여부에 합의가 없는 유전자조작 농산물의 범람은 물론이고 낙태, 안락사, 장기이식 등 전통 의료윤리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여러 가지 생명공학 규제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가장 우려할 일은 생명윤리에 대한 무관심이다. 시민과학연구센터만이 앞서가고 생명안전·윤리연대모임이 있지만 환경단체들도 적극적이지 않다. 학계의 수수방관은 어쩔 것인가? 한국의료교육학회와 한국생명윤리학회가 생긴지 몇해 되나 의학·철학계의 호응은 미미하다. 이웃 일본의 생명윤리학회 회원수가 철학회와 맞먹는 것과 대조적이다. 울산대, 전북대가 생명윤리학자를 채용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생명윤리 강의조차 없는 의과대학, 철학과가 너무 많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자기들은 진리탐구만 하면 그만이고 그 결과는 인문·사회과학자들의 몫이라는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과학의 중립성 신화는 이미 깨진지 오래다. 과학자들은 과학의 사회적 충격과 윤리적 의미를 고민하고 철학자, 법학자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생명공학은 인류의 장래를 좌우할 것이다. 생명윤리는 21세기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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