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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0) 안견의 몽유도원도
한국의 美-최고의 예술품을 찾아서 (10) 안견의 몽유도원도
  • 안휘준 명지대 석좌교수
  • 승인 2006.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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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景群 꿰는 독특한 구도 … 道家적 사상의 뿌리 구현

▲안견 作 몽유도원도, 38.6×106.2cm, 견본담채, 1447년, 일본 天理대 중앙도서관 ©
한국의 산수화 가운데 쌍벽을 이루는 인물은 안견과 정선으로, 각각 조선 전기와 후기를 대표한다. 특히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시·서·화의 어우러짐과 독자적 화풍의 확립으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회화사 연구자 중 안휘준 교수는 ‘몽유도원도’를 최고로, 홍선표 교수는 ‘인왕제색도’를 최고의 산수화로 평가하는데, 이번 호에서는 ‘인왕제색도’에 이어 안휘준 교수가 ‘몽유도원도’의 뛰어난 점을 짚어보았다. / 편집자주

▲몽유도원도 왼쪽 부분 ©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화가 세 명만 꼽으라고 하면 신라의 率居, 고려의 李寧, 조선왕조의 安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들 三大家 중에서 유일하게 작품이 남아있는 인물이 안견이고 또 그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眞作이 ‘몽유도원도’이다. 따라서 ‘몽유도원도’가 지닌 역사적 의의와 회화사적 가치는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하겠다.

첫째로 ‘몽유도원도’는 詩·書·畵의 세 가지 예술이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적 미술이며 우리나라 회화사상 최고의 기념비적인 걸작품이라는 점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안견이 1447년 4월 20일(음력)에 안평대군의 요청을 받아 그리기 시작해 3일 만에 완성한 그림으로 여기에는 안평대군의 제찬과 제시, 신숙주, 이개, 하연, 송처관, 김담, 고득종, 강석덕, 정인지, 박연, 김종서, 이적, 최항, 박팽년, 윤자운, 이예, 이현로, 서거정, 성삼문, 김수온, 천봉(만우), 최수 등 21명의 당대 명사들의 시문이 각기 자필로 쓰여져 있다. 즉 안견의 그림, 안평대군의 글씨, 20여명의 대표적 문인들의 시문과 글씨가 함께 담겨져 있는 것이다. 안견은 당대 최고의 산수화가이고 안평대군은 중국에까지 필명을 날리던 그 시대 제일의 서예가였으며 찬시를 쓴 21명의 인물들 역시 대부분 일급의 명사들이다. 그 시대 시·서·화의 최고봉들이 어깨를 견주듯 참여해 만들어낸 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예를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 중에서 달리 찾아볼 수가 없다.

▲안평대군의 발문 ©

둘째로 ‘몽유도원도’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안견의 유일한 진작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산수화라는 점이다. 안견은 수많은 작품을 남겼음이 이런저런 기록들에 의해 확인되나 현존하는 진작은 ‘몽유도원도’ 뿐이다. 안견이 평생의 정력을 다해 그렸다는 ‘靑山白雲圖’도, 안평대군이 젊은 시절에 모았던 30여점의 작품들도 모두 없어지고 전해지지 않는다. 오직 몇 점의 傳稱作들이 알려져 있으나 진작으로 보기 어렵다. 그것들 대부분이 안견보다 후대의 것이거나 다른 사람의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四時八景圖’가 화풍이나 제작연대로 보아 비교적 안견의 산수화풍에 핍진하여 크게 참고가 될 뿐이다.

셋째로 ‘몽유도원도’는 그것을 낳은 세종대 문화와 예술의 경향을 다른 어느 예술작품보다도 잘 드러낸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도가적 측면과 고전주의적 성향이 주목된다. 그림에 곁들여진 안평대군의 글에서도 간취되듯이 ‘몽유도원도’는 도연명의 ‘桃花源記’에 그 사상적 토대를 두어 도가적 이상향의 세계를 담고 있다. 국초부터 강력한 억불숭유 정책을 펼치던 당시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국가의 통치와 국민의 통합을 위해 강성의 성리학적 숭유정책이 질서정연한 지배이념으로 확립되었던 그 시대의 물밑으로는 개인적 사유의 자유로움을 중시하는 도가사상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표면적으로는 성리학적 통치이념과 도덕규범에 집단적으로 매여 살면서 내면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탈피하여 개인적이고 자유분방한 사유의 세계를 추구하고 노니는 이중적 측면이 병립하였던 것이다. 억불숭유정책이 끈덕지게 영향을 미치던 유교적 조선시대 내내 도가적 측면이 강한 산수화가 가장 발달했던 것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해된다. ‘몽유도원도’는 그 대표적 구현체인 것이다. 이와 함께 인간이나 동물보다 자연을 경외로운 생명체로 보아 크고 장엄하게 그리는 중국 五代말부터 북송의 초기에 걸쳐 유행했던 巨碑派的 경향이 엿보이는 것은 세종대의 문화를 지배하던 고전주의적 경향을 배경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라 하겠다.

▲몽유도원도 중간 부분 ©

넷째로 무엇보다도 ‘몽유도원도’를 값지게 하는 것은 이 작품 자체가 보여주는 화풍상의 특징이라 하겠다. 우선 구성과 구도가 특이하다. 현실세계의 야산과 도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바위산이 갈라지는 왼쪽 하단부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어 오른쪽 상단부로 가상의 대각선을 따라 전개되는 구성은 한·중·일 삼국의 회화를 통털어 유일하다. 통상적으로는 오른쪽으로부터 왼편으로 횡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 관례이다. 또한 왼편으로부터 오른편 쪽으로 평상세계, 도원의 바깥 입구부분, 도원의 안쪽 입구, 널찍한 도원 등 4개 부분이 따로따로 떨어진 듯 이어져 있는 점도 독특하다. 왼쪽 하단부에서 시작해 오른쪽 상단부에서 절정을 이루는 대각선적 전개가 개별적으로 분리된 듯한 네 개의 景群을 꿰어주고 있는 것이다. 즉 유기적 연결보다는 시각적 연계가 화면 전체를 조화롭게 이어주고 있음이 괄목할만하다. 高遠, 平遠, 深遠의 3원이 높은 산, 넓은 도원, 깊숙한 골짜기 등에 갖추어져 있음도 엿보인다.

‘몽유도원도’의 네 개 경군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른편의 도원임에 틀림없다. 본래 도잠의 ‘도화원기’에 적혀 있는 도원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넓은 곳인데, 일정한 화면에 이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방을 산으로 둘러쌀 경우 내부 공간이 협소하게 보이고, 반대로 내부 공간을 넓게 표현할 경우 사방의 산이 작아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견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아주 효율적으로 충족시켰다. 도원을 비탈져 보이게 표현하고, 눈이 제일 먼저 닿게 되는 근경의 산들의 높이를 대폭 낮추거나 틔워서 광활한 시각적 효과를 높인 점이 그 해결방안으로 돋보인다. 안견의 창의성과 명석함이 드러나는 표현이기도 하다.

▲몽유도원도 오른쪽 부분 ©

얹히고 받힌 기이한 형태의 암산들과 그것들이 자아내는 환상적인 분위기, 오른쪽 상단에 고드름처럼 매어달린 바위들이 시사하는 方壺와도 같은 도가적 신선세계로서의 도원의 모습, 특정한 준법을 구사함이 없이 붓을 잇대어 담묵으로만 표현한 바위와 산들이 드러내는 담백한 수묵화의 전형적 양상, 담묵의 수묵화적 표현과 대조를 보이는 청색, 녹색, 홍색, 금분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복사꽃들과 그것들 주변에 감도는 아득한 煙雲 등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들이다. 특히 복사꽃은 확대경으로 보면 표현의 정확함과 섬세함, 색채와 분위기의 영롱함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총체적으로 보면, ‘몽유도원도’는 실재하는 實景을 그린 실경산수화나 진경산수화가 아니라,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도원의 모습을 듣고 상상해서 그린 상상화 또는 일종의 이념산수화라고 할 수 있다. 화풍 상으로는 북송대에 형성된 郭熙派 화풍의 영향을 수용하여 창출된 것으로 흔히 얘기하는 北宗畵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 초기 안견의 이 ‘몽유도원도’는 조선후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잘 대비된다. 먼저 안견이 조선 초기를 상징하고 정선은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거장이며, 그들이 그린 ‘몽유도원도’와 ‘인왕제색도’는 그 두 거장들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몽유도원도’가 북종화를 바탕으로 한 도가적·이념적 산수화의 세계를 구현한 반면에 ‘인왕제색도는 남종화풍을 수용하여 특정한 勝景인 서울의 인왕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산수화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뜻을 담아 그리는 寫意畵와 자연경관 등 사물의 형태를 그려내는 사실화의 세계가 대비되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도 왼편에 보이는 중부지방 특유의 야산의 모습에서처럼 사실적이고  실경적인 요소가 엿보이고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도 비실경적이고 이념적인 남종화의 측면이 엿보이는 것은 흥미롭고 참고할만하다. 두 가지 회화세계는 전체적으로는 달라도 부분적으로는 겹치는 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

안휘준 / 명지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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