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9:40 (화)
단토, 변용의 미학으로 현대예술을 읽다
단토, 변용의 미학으로 현대예술을 읽다
  • 이승건
  • 승인 2023.02.03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 책을 말하다_『일상적인 것의 변용』 아서 단토 지음 | 김혜련 옮김 | 한길사 | 2008 | 442쪽

현대예술은 기대에 찬 시선으로 작품에 다가가는 감상자들을 간혹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 연주를 위해 뚜껑을 닫고 4분 33초 동안 무음(無音)을 연주하는가 하면, 어떻게 결말이 마무리되는지 도무지 알아 챌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걸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구조의 텍스트 작품도 있다.

또한 이리 봐도, 저리 봐도, 그리고 위와 아래를 뒤집어 봐도 무엇을 그렸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추상적 표현의 회화작품들은 물론이고, 상품 진열대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공산품과 거의 같은 형태와 색채를 갖춘 오브제 작품들이 팝 아트라는 이름으로 전시장을 채우기도 한다. 특히 맨 마지막의 예로 든 작품 군(群)에 대해서는, 미술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아방가르드 예술에 뒤쫓아 오는 ‘후위예술(rear-guard)’이라 칭하며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문화로서 키치’라고 혹평한 바 있다.

그러나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열렬한 지지자 아서 단토(Arthur Coleman Danto, 1924~2013)는 「예술작품과 실재적 사물들」(Theoria 29, 1973)이라는 글에서 다종다양한 현대미술 속에서 예술의 지분을 얻고 있는 팝 아트에 대해 좀 더 넉넉한 마음으로 다원적으로 이해하길 권장한다. 더욱이 순수예술과는 다르게 팝 아트는 「일상적인 것의 변용」(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1974)이라 주장하며 이 종류의 현대예술이 갖는 미학적 의미를 달리 평가하고 나섰다.

위의 두 글을 포함해서, 단토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 예술과 비예술, 예술과 단순 표상 그리고 예술과 변용적 표상을 차례로 다루며 현대예술의 종차를 밝히려는 입장을 총 7개의 장으로 묶어 그가 이전에 발표한 논문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일상적인 것의 변용』(The Transfiguration of the Commonplace: A Philosophy of Art,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81)(김혜련 옮김, 한길사, 2008)을 출판한 바, 우리는 이 책에서 변용의 미학으로 본 현대예술에 관한 그의 입장을 더욱 깊게 만날 수 있다.  

 

 

평범한 것을 숭배하는 현대예술

책 제목과 관련해서 단토는, 자신이 이 책에 실어 놓은 철학적 성찰들의 동기가 된 예술계의 사건들은 바로 ‘일상적인 것들의 변용’, 즉 ‘평범한 것들이 예술로 변한 일’이었기에, 스코틀랜드 출신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뮤리엘 스파크(Muriel Spark, 1918~2006)가 쓴 소설 『진 브로디 양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 1961)의 한 허구적인 제목을 찬양하고 부러운 나머지 차용했다고 밝히고 있다(서문, 55쪽).

그런데 논문으로부터는 23년, 이 책으로부터는 16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저술한 『예술의 종말 이후』(1997)에서도 자신의 첫 저작인 이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책 제목에서의 변용(變容, transfiguration)에 대해 그것은 원래 종교적 개념으로 「마태오복음」(17장)에서 ‘한 인간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좀 더 상세히 설명하면서 자신은 이 개념을 ‘평범한 것을 숭배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이성훈ㆍ김광우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 컨템퍼러리 미술과 역사의 울타리』, 미술문화, 2004, 247~248쪽). 

 

단토는 현대예술에 있어서 일상적 존재의 생활세계에 속하는 대상(빗자루, 병걸이, 자전거 바퀴, 소변기 등)을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미묘한 기적을 처음 행한 작가로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을 꼽는다(서문, 57쪽). 그러나 ‘감상의 후보 지위를 갖는 인공물’(220쪽)이 한갓 사물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대접받게 된 데에는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공헌이 크다고 한다(서문, 58쪽). 그도 그럴 것이, 워홀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실크 스크린 작업으로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런 워홀의 작품세계에 대해 단토는 “팝 아트 자체는 내가, 대중적인 문화로부터 고급미술로 변용하는 상징들이라 부르는 것 속에 들어 있다. (...) 다시 말해 캠벨 수프 통조림이나 상업미술을 하나의 회화양식으로 이용하는 진짜 유화의 주제로 만들 것을 요구한다.”(이성훈ㆍ김광우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247쪽)고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팝아트가 그토록 자극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변용적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배우나 오페라 스타처럼 마릴린 먼로를 다룬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았다. 그러나 워홀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황금색 물감 바탕 위에 설정함으로써 그녀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변용시켰던 것이다.”(이성훈ㆍ김광우 옮김, 『예술의 종말 이후』, 247쪽)라고 하면서, 이번 서평의 대상인 『일상적인 것의 변용』에서 의미한 것보다도 한층 더 변용의 원래적 의미를 연상케 하는 ‘평범한 것을 숭배하는 것’의 의미를 다지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이 두 책(『일상적인 것의 변용』(1981), 『예술의 종말 이후』(1997))은 서로 참조의 관계에서 보아지면 더욱 좋을 듯하다!

 

예술작품의 감상을 위해 관련 자료를 참조할 때 친절한 안내서를 만나면 더 없이 반갑다! 단토의 『일상적인 것의 변용』 한국어 번역서 역시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현대예술에 대한 이론적 논의를 위해 원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내용들을 독자의 입장에서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책읽기의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책 뒷부분의 ‘옮긴이의 말’(425쪽~431쪽)과 책 전체 내용에 대한 맨 앞부분의 옮긴이의 해제, 즉 ‘단토의 예술철학’(21쪽~54쪽)은 이 책을 통해 현대예술의 지형과 그 이론을 탐방하고자 하는 방문객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ut pictura poesis’(시는 회화처럼, 205쪽)와 같은 미학사적 주제와 관련해서는 좀 더 상세한 옮긴이의 주석이 있었다면, 시와 회화에 관한 현대예술에서의 논의와 맞닥뜨렸을 때 독자의 낯설음은 덜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승건
서울예술대 교수ㆍ미학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