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23:20 (화)
인간은 왜 도마뱀처럼 재생 능력이 없을까
인간은 왜 도마뱀처럼 재생 능력이 없을까
  • 김재호
  • 승인 2023.02.03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성과학기술인 이야기 ㉑ 손영숙 경희대 교수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WISET)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이 시대 여성과학인 소개 캠페인 ‘She Did it’을 펼치고 있다. <교수신문>은 여성과학기술인이 본인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경력 성장을 하기 위한 다양한 이야기를 공동으로 소개한다. 여성과학기술인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생생한 목소리가 교수사회에 전달되길 기대한다. 스물한 번째는 손영숙 경희대 교수다.

 

줄기세포의 자가치유 메커니즘 규명
노화 억제·수명 연장 연구의 디딤돌

식품영양학으로 시작해 미생물학, 분자생물학에 눈을 뜨며 용기 있게 학문의 벽을 허물어온 손영숙 경희대 교수(유전생명공학과). 경희의료원 경희의과학연구원 재생의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손영숙 교수는 여성 최초로 국가지정연구실 사업에 선정됐다. 그는 기술 상용화에 성공한 줄기세포치료제 분야 최고 연구자이다. 

 

손영숙 경희대 교수(유전생명공학과)는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미생물학과에서 석사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에서 약리학·세포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와 한국줄기세포연구학회 이사이다. 사진=WISET

손 교수는 혈관재생을 촉진시키는 복합 줄기세포치료제 개발과 우리 몸의 내재성 줄기세포를 활성화시켜 노화의 방지·지연·극복을 위한 알키미스트 연구(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미래의 난제를 연구하는 혁신적인 과제), 노화 억제와 극복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총괄 책임자로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줄기세포의 기초에서 실용화·응용 분야까지 아우르는 업적과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생화학분자생물학회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 한국로레알 유네스코 여성과학상,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 과기부장관 표창, 과학기술 유공포장 등을 수상했다. 

줄기세포는 사람의 일생에서 신체 기관의 성장과 기능 유지, 질병 발생에 깊이 관여한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에서 분리하는 시기와 특징에 따라 이름과 기능이 다르다. 먼저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에서 태아가 만들어지는 배아 발생 초기(착상 전)의 배반포로부터 분리한 세포에서 유래한다.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몸속 각 기관과 조직의 기능을 담당하는 약 200종류의 분화 세포를 제공하는 모세포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생명윤리법에 따라 체외수정 착상 시 남은 잉여배아를 냉동 보관 후 기증자의 동의를 받아 연구목적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아울러, 신생아 출산 후 우리 몸에서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는 줄기세포를 ‘성체줄기세포’ 또는 ‘조직줄기세포’라고 한다. 성체줄기세포는 각 기관의 조직 내에서 소량으로 존재하면서 약 200종류의 분화세포를 끊임없이 제공해 주는 원천이 된다. 성체줄기세포의 기능이 활발하지 못하면 질병과 노화에 이르는 만큼 우리의 수명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세포이다. 

 

자가치유 기전 작동시키는 펩타이드

​손 교수는 우리 몸의 조직과 골수 속에는 성체줄기세포가 있는데, 왜 도마뱀과 같은 재생능력이 없을까 고민했다. 연구 끝에 신경전달물질 ‘펩타이드(substance-P)’가 자가치유 기전(Endogenous Healing Mechanism)을 작동시킨다는 것을 발표했다. 줄기세포의 자가치유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다. 토끼의 눈에 알칼리 화상을 입히고 손상조직과 혈액에 나타나는 변화를 관찰했다. 그때 고통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펩타이드가 증가하는 것을 보고 그 역할을 규명했다. 펩타이드는 손상된 신경세포로부터 분비된다. 그리고 혈액을 통해 골수 중간엽줄기세포를 매개로 자가치유 기전을 작동시킨다. 관련 연구는 2009년 『네이처 메디신』에 게재됐다.  

골수에는 혈구세포(적혈구, 백혈구, 면역세포)를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조혈줄기세포)와 뼈, 지방, 연골, 근육 등을 만들어내는 중간엽줄기세포, 혈관 내벽을 재생시키는 혈관전구세포가 있다. 골수에 존재하는 줄기세포가 어떤 자극에 반응해 골수 내에서 그 숫자를 증가시킨다. 이들 세포가 혈액을 통해 손상조직에 도달해 치유를 촉진하는 과정을 ‘자가치유 기전’이라 부른다. 

​줄기세포의 자가치유 기전 규명은 기초연구로서뿐만 아니라 의학 분야 응용 측면에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펩타이드의 기능은 현재 심근경색, 대동맥파열, 뇌졸중, 제1/2형 당뇨 등 다양한 허혈성 혈관질환에서 유효성이 입증됐다. 펩타이드는 줄기세포촉진제로서 골수의 성체줄기세포를 증가시킨다. 이로써 다양한 손상 회복을 촉진시키는 전문의약품 개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체외 세포배양으로 만드는 줄기세포치료제의 고비용과 저장·운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장차 노화 억제와 수명 연장 연구의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지난 30여 년간 약 200건의 논문과 40건이 넘는 특허를 등록해왔지만 예측했던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연구인 것 같다. 예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실험을 잘못했을 가능성부터 들여다본다. 인간적인 실수인지, 가설이 잘못되었는지, 내가 아는 지식에 매여 다른 가능성을 못 본 것은 아닌지, 학생들에게까지 생각을 물어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한다. 실험하는 시간보다는 실험 결과가 의미하는 것을 해석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손 교수는 “​우리 몸의 생로병사는 각 조직의 줄기세포 기능과 직결돼 있다”라며 “줄기세포의 수와 기능이 떨어지면 조직의 기능이 비정상적으로 되고 다양한 퇴행성 질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인체 내재성 줄기세포, 특히 골수의 줄기세포를 건강하게 전환시키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게 바로 인체의 노화역전 치료에서 핵심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