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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미움으로 변질되나…내것 네것을 교환하라
사랑은 왜 미움으로 변질되나…내것 네것을 교환하라
  • 임인재
  • 승인 2023.01.27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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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사랑의 심리학』 쓴 권석만 서울대 교수

“사회교환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의사소통을 통해 교환의 불균형을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석만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최근 『사랑의 심리학』(학지사)을 출간했다. 권 교수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인 ‘사랑’을 학술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싶었다”라며 “죽음과 함께 사랑은 인간에게 영원한 화두이며, 결국 사랑을 잘 알아야 인생이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부모와 자녀 간의 사랑’, ‘남녀 간의 사랑’, ‘신과 인간의 사랑’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이 분류를 바탕으로 이 책은 ‘고통스러운 사랑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사랑이 아픔과 미움으로 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사랑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물음에 답을 제시하고 있다. 

권 교수는 『현대 이상심리학』, 『긍정심리학』, 『성격심리학』, 『죽음의 심리학』 등 다양한 심리학 저서를 출간해 온 국내 임상심리학 분야의 권위자이다. 8월 정년퇴임을 앞둔 그가 왜 사랑을 주제로 택했는지 궁금해졌다. 겨울 추위가 아직 남아 있는 지난 16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권 교수를 만났다. 

 

권석만 서울대 교수(심리학과)는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석사를 했다.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출판문화원장·대학생활문화원 원장과 한국임상심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교육상(2018)을 수상한 바 있다. 『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2019), 『인간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2017) 등을 집필했다. 사진=임인재  

 

축적된 실증 연구, 심리학 지식 나누고파

우선 30년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그에게 평생의 화두가 되었던 ‘사랑’과 ‘죽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이와 함께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 증가, 높은 이혼율, 비혼주의자와 1인 가구의 급증 등 현재 한국사회를 조망하면서 이 책을 서둘러 출간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우리사회에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음을 의미한다.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지난 50여 년 간 심리학 분야에서 사랑에 관한 많은 실증적 연구가 축적되어 왔다”라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좀 더 좋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에 대한 심리학 지식을 나누고 싶어서 이번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책에는 “어렸을 때 받았던 사랑의 기억은 그 아이의 전 생애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라는 문구가 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결정짓는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주는 사랑은 매우 중요하다. 인생에서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자녀교육이기 때문에,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공부 잘하라고, 좋은 스펙을 가지라고 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학벌과 사회적 출세를 자존감의 근거로 여기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래서 아동기부터 공부를 강조하며 자녀를 자신의 방식대로 통제하려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자율성도 더 크게 가지려고 한다. 이에 따라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 심각해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권 교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괜히 연장자의 개인을 ‘꼰대, ’‘라떼’, ‘지적질’, ‘충고질’, ‘조언충’이라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들은 부모의 과도한 간섭과 통제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성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아이들은 이런 말들을 하면서 부모 세대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가 부모와 안정 애착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데에는 부모의 민감성과 반응성이 중요한데, 이는 구체적으로 부모가 자녀의 바람을 민감하게 포착하여 자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시기적절하게 반응해주는 것이다. 권 교수는 “부모는 자녀의 발달단계에 따라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자율성을 허용하면서 부모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며 조용한 후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라고 조언했다. 

 

이끌림에는 운명적 요소가 개입

그러면 성인 남녀 간의 사랑에서 상대방에 이끌리는 요인은 무엇일까. 자신과 유사한 사람에게 더 이끌리는지, 아니면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사람에게 더 이끌리는지 궁금해졌다. 남녀 간의 이끌림은 ‘유사성’과 ‘상보성’의 적절한 배합에서 비롯된다. “남자와 여자 간의 낭만적 이끌림은 많은 요인이 개입하는 미묘한 심리적 과정이다. 이 때문에 유사성과 상보성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단정하여 말하기 어렵다. 우선, 남녀 간의 이끌림에는 이미 유사성과 상보성이 개입하고 있다. ‘인간’이라는 유사성을 지니지만 ‘남자’와 ‘여자’라는 상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사성은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되고, 상보성은 서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상보성은 흔히 관계 초기의 이끌림을 촉발하지만, 결혼과 같은 지속적인 관계에서는 유사성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보성은 관계 초기에 강렬한 이끌림을 촉발한다. 그러나 관계가 지속되면 서로의 차이점 때문에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험한 이끌림(fatal attraction)의 경우처럼, 관계 초기에는 나와는 다른 부분을 지니고 있는 상대방에 강렬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진행되면 이 다른 부분이 실망이나 환멸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많은 부부가 관계 초기의 이끌림을 ‘콩깍지가 씌었다’, ‘눈이 멀었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권 교수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유사성과 상보성을 7 대 3 정도로 지닌 사람에게 이끌리는 것이 이상적이다”라며 “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더구나 상대방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기는 더더욱 어렵다. 때문에 남녀 간의 이끌림에는 상당히 우연한 운명적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남녀 간의 사랑이 잘 유지되기 위한 요건은 무엇일까. 사회교환이론을 바탕으로 현대인이 사랑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해관계에 예민한 현대인을 고려한다면, 사회교환이론 특히 사회교환의 자원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랑은 다양한 자원(애정, 돌봄, 섹스, 재물, 정보, 지위 등)이 교환되는 관계이다. 그래서 연인이든 부부든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교환의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권 교수는 “사회교환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서로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며 “특히 의사소통을 통해 교환의 불균형을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거대한 위협 앞에서 신을 갈구

『사랑의 심리학』의 마지막 부분은 인간과 신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 신을 사랑하는 심리는 무엇인지 권 교수에게 물었다.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했을 때 강력한 존재에게 의존하려는, 매우 근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자연재해, 전쟁, 질병, 죽음과 같은 거대한 위협 앞에서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인식하면서 이러한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갈구하게 된다. 인간의 지혜와 능력을 뛰어넘는 전지전능한 강력한 존재를 추구하게 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신(神)은 인간의 마음속에 구축한 내면적 애착 대상이다. 이러한 신은 내면적인 표상이기 때문에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심리적 위안과 돌봄을 구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신과의 사랑은 커다란 위협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희망과 투쟁 의지를 갖도록 돕는 진화적으로 유익한 기능을 하게 된다. 

권 교수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 내렸다. “사랑은 외로운 두 영혼이 깊이 연결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다. 때문에 항상 타인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 이 연결되는 과정이 사랑을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관계는 스쳐 지나가는 피상적인 인간관계와는 다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을 가져야 하며 그 애정이 뿌리는 내려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헌신하는 상호의존적인 관계 경험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임인재 기자·언론학 박사 mimohh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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