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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노조설립 강요하는 대학현실
[대학정론] 노조설립 강요하는 대학현실
  • 논설위원
  • 승인 2001.08.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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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13 10:46:50

대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신자유주의가 대학가를 유린하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 됐다. 학부제, 연봉제, 계약제, 겸임 대우교수제 등 이른바 교육개혁의 주요 내용들은 한마디로 대학을 기업경영의 차원에서만 보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의 관료적 표현이다.

‘대학기업 경영자’에게만 유리한 이러한 ‘교육개혁’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기는커녕 대학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하고 있음을 교육현장에 있는 교수와 학생들은 절감하고 있다. 특히 지방대학과 사립대학, 전문대학의 교수들은 2002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계약 연봉제를 앞두고 신분불안과 퇴출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의 찬바람이 대학가에도 불어오고 있는 것이다. 다만 대학의 구조조정이 기업의 그것과 다른 점은 한꺼번에 대량해고를 하지 않고 재임용 탈락이나 학과 통폐합, 대학 통폐합, 교원정년 단축, 연금축소 등으로 서서히, 개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학생 수에 비해 대학이 지나치게 많다는 구조적 문제 때문에 이러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정부와 학원경영자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대학이 과연 기업과 같은가 하는 원론적 문제는 접어두고라도 대학의 모든 문제를 교수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마치 부실기업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이러한 교육현실에서 교수노조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민교협은 지난 여름부터 몇 차례의 토론회와 좌담회 등을 통해 교수노조 설립의 당위성과 필연성을 확인하면서 서서히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고, 국교협과 사교련은 준노조 격인 전국대학교수회의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교수노조에 대한 교수 자신들과 언론, 정부당국의 거부감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의 ‘노동자적 계급의식’이 이처럼 확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수가 더 이상 안정적이고 존경받는 평생직장을 보장받는 ‘상아탑의 선비’가 아니라 냉혹한 시장경쟁에 내몰린 ‘지식노동자’라는 자의식을 일깨워준 교육정책과 교육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수노조에 대한 우리사회의 거부감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교수에게 국제수준의 연구실적과 취업을 위한 실용교육, 교육자적 품성과 도덕성을 요구하면서도 교수를 개혁대상으로만 보는 정부, 교수를 사기업의 임시직 종업원이나 계약노동자 취급하는 일부 사학경영자, 교수노조는 또다른 집단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비난하는 언론 등 넘어야 할 산은 첩첩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노동현실에 처해 있으면서도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자부심만을 부둥켜 안고 ‘교수가 무슨 노동자냐’는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교수 자신들의 심리적 거부감을 극복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직업의 안정성도 없고, 미국처럼 교수인력시장도 확보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을 직시하되, 높은 도덕성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바탕으로 대학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선비정신을 더욱 가다듬고 굳굳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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