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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구 사진전
강홍구 사진전
  • 교수신문
  • 승인 2006.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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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네 집-구름 Mickey's House-Clouds, 2005-2006,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90X250cm

강홍구의 최근작에는 초현실적인 숭고의 체험이 가능한 초고속 파괴와 초대형 건설의 현장, 꿈인지 생시인지 알기 힘든 현장의 그 미로 속으로 우리를 끌고 다니는 유인책으로 도시외곽의 재개발 현장에서 작가가 주은 장난감들이 등장한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어 미키네 집이라 칭한 장난감 집이 거대한 포크레인과 철골더미들 사이로 삐죽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장난감 집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의미의 내용에서 보자면 은유적이고, 집의 부속물이라는 완구의 측면에서 보자면 환유이며, 장난감과 사진의 발생적 관계를 강조하자면 인덱스에 해당한다. 알록달록한 장난감 집의 색깔 때문에 폐허화된 무채색의 개발 현장이나 단색조의 자연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 미키네 집은, 서로 다른 프레임의 각기 다른 사진 작품들을 연결해 주는 일종의 하이퍼텍스트 역할을 한다. ©

 

강홍구의 디지털 사진은 작가가 보고 느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디지털 사진의 왜곡을 통해서 일그러진 채로 보여 준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현실의 파편들은 견고하고 완벽한 풍경을 이루지 못하지만 실재감없이 가짜같은 현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상 이는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디지털 사진이 일상의 일부가 되고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지배하는 사회에도 사람의 마음과 주변의 환경은 아직도 우리를 잡아 끄는 무게를 가지고 갑작스러운 변화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화가 아직 진행 중인 것처럼 21세기 정보화 사회라는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풍경의 물리적인 실체는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으며 우리를 살고 있는 현실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강홍구의 디지털 풍경은 디지털로 포착한 풍경일 뿐 아니라 진짜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사회의 만화경을 보여 주는 풍경이다.

▲그린벨트-세한도 Greenbelt-Sehando, 1999-2000, 디지털 사진 인화 digital photo&print, 90X260cm

디지털 카메라가 갓 상품화되어 대중에게 소개되던 시절, 부족한 용량 때문에 여러 사진을 이어 붙여서 만든 풍경들은 좌우로 긴 파노라마를 이룬다. 그러나 이 풍경들은 넓은 시야를 일관되게 포착하여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풍광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 조합들이다. 서울 근교 개발제한구역인 그린벨트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은 도시에 남은 마지막 자연의 보루라기보다 갑작스러운 개발열풍 속에서 뒤쳐진 쇠락과 노후의 흔적들을 보여 준다. 촌락을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는 도시화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졌고 그 과정에 남은 잔재들은 녹색의 이상향이 아니라 회색조의 우울한 풍경을 만든다. ©

 

몇 년 간의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화가를 꿈꾸며 미술대학에 진학한 강홍구는 처음에는 회화를 전공했지만 곧 광고나 영화스틸 이미지를 활용한 합성 사진으로 자신만의 작업방향을 찾기 시작하였다. 작가는 위대하고 독창적인 미술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기존 미술 체계에 대한 저항으로 합성 사진을 시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를 천재 작가인 A급이 아니라 한 급 떨어지는 B급 작가라고 칭하면서 그는 대중매체에서 빌어 온 이미지를 가지고 엉뚱하고 기괴한 가짜 사진을 만들었다. 현실의 갈등들을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을 표현하기에는 손으로 그린 유일무이한 회화보다는 복제가능한 대중문화의 이미지가 더 어울리고, 기계로 인화지를 출력하는 사진은 대량복제의 가볍고 일회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초고속 근대화를 이룬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직접 겪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결합한 이 사진들은 작가의 첫 사진전시 제목처럼 '위치, 속물, 가짜'를 탐구하는 연작을 이루었다.

가짜보다 더 가짜같은 현실을 대면하기 위해서는 엄숙하고 진지한 자세가 아니라 치고 빠지는 가벼운 접근이 더 유용하다. 작가 작업실 주변의 재건축 철거 현장에서 주은 게임 캐릭터 인형으로 연출한 폐허의 장면을 천하를 들썩이게 할 수 있는 수련자의 무공으로 비약시키는 강홍구의 사진은 세상의 변화와 제도의 견고함에도 불구하고 돈키호테다운 여정을 계속해 온 작가의 내공을 보여 준다. 90년대를 지나 계속되는 강홍구의 풍경연작들은 제도와 현실의 무게에 눌려서 고민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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