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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분석: 왜 월드컵에 올인하는가
심리분석: 왜 월드컵에 올인하는가
  • 김정운 명지대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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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과 줄기세포

결핍은 욕구를 낳는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슬프면 울어야 한다. 그러나 결핍이 적절한 방식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이상행동이 나오게 된다. 부족한 부분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는 시도이다. 예를 들어 다양한 형태의 중독현상이 그 예이다. 이 중독현상은 단지 알코올이나 마약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일중독, 성공중독, 쇼핑중독, 권력욕, 자기과시욕 등도 이에 해당된다. 아주 간단한 심리학적 논리다. 이런 식으로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이상행동을 심리학자들은 ‘결핍증후군’이란 이름을 붙여 아주 쉽게 정리해 버린다.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아주 게으른 설명방식이지만 이번 월드컵에 대한 한국인들의 비정상적 몰입행태를 설명하기에는 상당히 적절하다. 

만약 병아리 오줌만큼의 사는 재미도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 월드컵을 즐기는 것 마저 “또라이”를 만들거냐고 흥분하는 이가 있다면, 좀 솔직하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우리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 같은가? 아니다. 정말 축구를 즐기고 사랑한다면 K-리그도 꽉 차야 한다. 유럽인들은 축구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독일의 분데스리가, 영국의 프레미어리그, 등의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경기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자기 도시의 프로팀이 이기는 날에는 동네술집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적어도 이 정도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문화가 있어야 월드컵을 즐길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즐기는 것이 축구가 아니고 과연 뭐란 말인가? 이기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 것도 국가 대표끼리의 전쟁에서의 승리를 즐기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태극전사들, 그라운드에서 쓰러질 때까지 싸워라”며 그 젊은 선수들이 운동장에서 죽을 것을 강요한다. 어찌 운동선수들이 전쟁하는 군인들에 비유될 수 있을까?

결핍증후군은 ‘감정정체(Gefuelsstau)’라는 심리적 장애로 이어진다. 자연스러워야 할 정서적 경험과 표현이 꽉 막혀버리는 감정이 소화불량 현상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인간은 원래 감정표현을 통해 남과 의사소통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소하기도 한다. 성공 뒤의 기쁨의 표현, 실패와 좌절 뒤에는 슬픔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서표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동시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기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울지마, 남자는 울면 안돼”와 같은 감정을 억누르는 교육은 “감정정체”라고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는 호르몬상의 변화를 야기시키며 우울, 강박관념과 같은 정서적 장애는 물론 알레르기, 위장장애, 등의 신체적 장애의 원인이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에 대한 적개심, 분노와 같은 사회적 현상도 감정정체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감정의 일상적 억압은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화장실 소변기 위의 문구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청 앞에서 일어난 집회들로부터 최근의 줄기세포 사태에 이르기까지, 지난 2002년 월드컵 이후 일어난 일련의 정치사회적 집단행동들은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분노와 적개심.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분노와 적개심은 감정정체에 동반되는 아주 전형적인 장애현상이다. 월드컵 열광이 위험한 것은 그 배후에 분노와 적개심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마치 세계최초의 맞춤형줄기세포를 개발했다던 황우석에 대한 온 나라의 광적인 흥분이 무너져 내렸을 때 나타난 분노와 적개심처럼 말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이 결핍되어서 모두들 이러는 것일까. 행복과 재미다. 한마디로 일상의 사소한 재미와 행복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압축성장의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 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다. 현재 한국사회의 주류인 40대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은 대학시절, 암울한 조국의 현실에서 사는 게 재미있으면 불안하도록 의식화되었다.
재미가 획일화 되는 것처럼 위험한 현상은 없다. 재미의 획일화는 문화의 획일화를 뜻한다. 모든 종류의 획일화는 반드시 ‘다른 것’들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동반하게 되어 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일상의 사소한 재미와 행복이 가능한 다양한 문화이다. 한 사회의 건강함은 다양한 재미와 이를 통해 획득되는 행복을 통해 담보되기 때문이다.

김정운 명지대·문화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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