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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물든 한국사회
월드컵에 물든 한국사회
  • 최장순 기자
  • 승인 2006.06.2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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亂場 문화 혹은 21세기 국가주의 … 생산적 해석의 葛藤으로

 

월드컵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최근 문화연대 등 6개 단체는 ‘反 월드컵 운동’을 표방하고 나섰다. KBS를 비롯한 방송 3사의 월드컵 보도 행태와 ‘월드컵 특수’에 참여하려고 혈안이 돼있는 기업들을 비판하고 나선 것. 이와 더불어 스포츠사회학회도 월드컵 신드롬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월드컵 신드롬은 도대체 어떤 현상인가. 교수신문은 왜 월드컵 신드롬이 나타났는지, 그에 따라 한국사회가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 살펴봤다.

군사정권의 ‘스포츠 공화국’이 재도래한 것일까. 혹은 언론과 기업, 붉은 악마, 윤도현밴드,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이 외설스런 ‘스포츠커넥션’일까.  만약 이러한 분석이 백번 지당하다면 우리는 어떤 시민단체의 말마따나 ‘축구 경기보러 집나간 정치적 이성’을 지금부터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월드컵 신드롬은 과연 그렇게 도식적으로 설명되는 단일한 욕망의 구조로 이뤄져 있는가.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축제화된 국가주의 혹은 전쟁의 문명화

조대엽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1987년의 정치적 분출이 국가권력의 억압 속에서 수십 년의 정치적 열망이 누적되어 나타난 광장의 효과”라면 “2002년 이후의 월드컵 신드롬은 정치적·경제적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문화적 분출의 광장 효과”라고 진단한다.

조 교수는 이러한 효과를, 국가 간 경쟁·대결 구도가 지속되는 가운데 “신세대의 21세기적 국가주의가 분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전쟁과 이데올로기를 동반한 20세기적 국가주의와는 달리 ‘축제화된 국가주의’라는 것이다.

전재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월드컵 신드롬에서 ‘저항적 민족주의’를 찾아낸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주의적 요소는 이데올로기적으로 교조화되기보다 자본주의적 경쟁체제와 맞물려 그 모양새가 기묘해진다는 게 그의 지적.

김기봉 경기대 교수(역사학)는 이 둘의 입장을 종합한다. 그는 월드컵 응원 문화를 “자발적 방식으로 전 국민이 동원되고, 자본주의 문화가 개입된 근대적 축제 양식”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는 “그 전체가 새로운 방식의 전쟁, 혹은 전쟁의 문명화 현상”이라며, 이 지점에서 일종의 ‘광기’를 읽어내기도 한다.

파시즘은 지나친 해석…신명나는 굿판 문화

장석만 종교문화연구소(이하 종문연) 연구위원은 “비판의 측면은 충분히 있지만, 월드컵만이 파시즘이라는 식의 비판은 호들갑”이라며 월드컵 신드롬은 “중독에 걸릴만한 요소가 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그 중독성이 “술, 담배와 다르지 않다”며 “광기라고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강정원 서울대 교수(민속학)는 “1920년대까지는 각 지역별로 줄다리기, 단오, 씨름, 별신굿 등 행사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 다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월드컵 거리 문화는 이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굿판 문화가 변형된 형태로 드러났다”는 것.

또 그는 “과거 지역사회 차원에서 이뤄졌던 이러한 놀이 문화가 지역사회의 정체성 상실로 인해, 국가 차원에서 재현된 것”이고, “민주화 이후 국가 제약이 약화돼, 놀이에 대한 대중적 자발성이 드러난 것”으로 분석했다.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 역시 월드컵 신드롬에 놀이 문화적 측면이 강하다고 전한다. “노래방 좋아하고, 단란주점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길거리 응원이 새로운 문화라는 건 뭘 모르는 얘기”라며 “신명나는 거리굿판, 난장 문화는 오랜 민속 전통이고, 원래 우리의 놀이공간은 거리”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거리 문화’가 근대의 모습에 막혀 있다가 사회민주화 계기를 통해 스물스물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월드컵 응원이라는 ‘거리 굿판’에서 문제는 “국가주의가 아니라 상업주의”라고 주장한다. 이 ‘상업적 거리굿’이 경계의 대상이며, “원래 FIFA나 월드컵 자체가 상업적 성격을 지닌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이창익 종문연 연구위원은 “상업주의가 비단 축구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욕망의 상업화 현상이 지나치다”고 평했다.

한편, 전재호 교수는 “언론이 모든 의제의 중심 잣대를 월드컵에 놓고 있다”고 비판한다. “매스컴이 월드컵에만 시선을 쏠아 문화의 다양성을 침해하고 있다”(김기봉)는 것이다. 

획일적 문화 양산 우려된다

이 같은 ‘획일주의’에 대해 문화철학적 비판도 제기됐다. 이유선 고려대 교수(철학)는 “전 세계적 스펙타클 앞에서 자기만의 자율성을 잃어 획일적인 문화가 양산된다”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주로 TV와 인터넷 등 전파매체를 통해 교양을 학습”하고 있지만 “지금의 미디어 환경은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잇따랐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 교수는 “정치인들이나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자기만의 세계 속에서 대중들을 비판만 해왔다”고 꼬집은 뒤, “대중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성찰을 강화하고,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년 전, 천선영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2002년 월드컵 당시 담론지형에 대해 “한 쪽에서는 新애국주의의 가능성을, 다른 한 쪽에서는 상처 입은 민족주의의 극복과 열린 민주주의의로의 상징을, 또 다른 쪽에서는 국가주의적 광기를” 읽고 있으며, 이러한 모든 해석을 거부하고 ‘축제’의 코드를 읽어내는 탈이데올로기적 입장도 존재한다고 분석했다(‘‘해석의 해석’을 위하여’).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들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 교수는 “해석의 갈등을 생산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하고, 그 지속을 위한 창조적 자원들을 충분히 축적”해야 한다고 서술하면서, 담론은 끊임없는 의미의 생성을 통해 動力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언급은 4년째 동일한 논리를 재생산하고 있는 지식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최장순 기자 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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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2006-06-21 19:53:35
선진국들 하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두드리는 것 없애고 맨손으로 박수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시끄러운 꽹가리 등은 금물이다. 외국의 어느 기사는 한국의 응원을 "the cacophony of noise"라고 묘사했다. 경범죄에 해당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