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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을 '한다'는 것
주식을 '한다'는 것
  • 김소영
  • 승인 2023.01.16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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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김소영 편집기획위원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 시어머니가 한국에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남편은 주식, 나는 정치. 이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아 살았는데 코로나 와중에 주식 광풍이 일면서 주식을 안 하는 사람이 바보 같아졌다. 

시어머니의 당부는 2000년대 초 닷컴버블로 주변에 워낙 주식투자로 망한 가장들이 많아서인데, 윗세대는 여전히 주식을 위험한 투기, 심지어 패가망신하는 지름길로 여기는 분들이 많다.

반면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주식 투자할 수 있는 요즘은 막내아들도 (부모 영향인지) ‘조심스럽게’ 주식을 사보았다고 하고, 지도학생 중에도 주식 하는 제자가 제법 있다. 

게다가 주변에 주식 하는 사람들이 늘어 귀동냥을 좀 했더니 나 역시 조금만 주식 공부하면 기본적인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작 지난 주식 상승기에 주식을 하지 못한 것은 너무 일이 많아 그 ‘조금만’의 주식 알아볼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였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주가를 보면서 이번 주말엔 정보 좀 찾아봐야지 하다가 주말까지 실컷 일하고는, 이번에도 망했다, 이런 일을 되풀이했다.

그러다 주식이 내려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인가? 이 단어는 영어나 우리말에 딱히 번역하기 어려워 그대로 쓰이는데, 우리말에 가장 가까운 느낌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를 거꾸로 한 느낌이다. 사촌이 땅을 샀는데 맹지더라.

지금이라도 주식을 할까? 게다가 저점이라 비용도 덜 들지 않을까? 그러기엔 여전히 바쁘다. 지난 주말도 이번 주말도 일, 연말연시 계속 일하고 있다. 그냥 이제 신경 끄는 게 낫겠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주식을 사거나 팔거나 거래한다는 표현보다 주식을 ‘한다’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주식을 한다는 것은 냉장고 음식이나 차 기름이 떨어지면 생필품 사듯이 당연히 하는 게 아니다.

어떤 주식을 언제 사고 팔 지 고도의 계산과 결심, 집중력이 필요한 일이다. 게다가 음식이나 연료는 다 쓸 때까지 계속 지켜보는 게 아니고 떨어지는 즈음 확인해 구입하면 된다.

반면 주식은 아무리 장기적인 가치투자 결심을 해도 궁금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매일 소소한 때로는 상당한 감정 부침을 각오해야 한다. 같이 일하는 어느 박사연구원은 예전에 주식 좀 하다가 그런 이유로 아예 접어버렸다.

근데 이런 핑계를 대고 주식 안 하는 걸 정당화(?)하는 건 그나마 살만하기 때문일까? 내가 20~30대와 달리 주식을 안 해도 먹고살 만하다는 것이 미안하면서 감사한 일이지만 나보다 주식을 안 해도 될 만큼 엄청 부자인 사람도 널려 있다. 

시어머니의 금과옥조를 여전히 능력과 시간 부족으로 지키고 있지만, 지난 3년 영끌, 빚투, 깡통전세의 롤러코스터 한국에서 주식을 “한다”는 것은 개인의 결정이 가장 사회 문제에 맞닿아 있는 행위가 되었다.

동학개미, 서학개미, 이 수많은 개인들이 주식을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정치적인 현상이다. 이들의 가장 사적인 결정이 기업과 정부, 사회의 가장 공적인 정책으로 귀결된다.

시어머니가 주식과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한 게 다 이유가 있었다. 행여나 정치를 하게 되면 주식을 꼭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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