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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이유는 뭘까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이유는 뭘까
  • 박정애
  • 승인 2023.01.2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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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_『미술로 이해하는 미술교육: 감각이 깨우는 지성』 박정애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448쪽

감각 깨우는 이성 계발 위한 시각교육 차원
진리 파악하던 이성은 이후 ‘의미’로 대체

 

미술교육을 강의할 때는 왜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학문적 이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이론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론을 찾고자 하면 미술교육학 자체가 문화 현상이기 때문에 문화의 변화를 양분하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난해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이론 강의를 하면 미술 지식이 전무한 대학생들의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따라서 그 효율성을 매번 의문하게 된다. 교육대학교 학생들은 미술 이론에 거의 관심이 없다. 사범대학교 학생들 또한 대동소이하다. 실기가 미술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미술교육을 실기 그 자체로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실기를 가르치는 목적, 내용, 그리고 방법은 시대정신과 맞물려 다르게 변화해왔다. 

문화현상으로 미술교육론을 가르쳐야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미술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미술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미술을 좋아하게끔 가르치는 것이다. 이는 어떻게 가능할까? 학생들에게 미술작품을 많이 접하게 하고 미술이 그들의 삶의 일부가 되도록 하면 된다. 스스로 전시회를 찾아가거나, 친구들과의 티타임 주제가 감상한 미술작품이나 특별한 미술가가 되는 삶, 즉 ‘미술이 있는 삶’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미술교육을 스스로 탐구할 것이다. 이러한 의도로 쓴 저서가 바로 『미술로 이해하는 미술교육: 감각이 깨우는 지성』이다. 

미술가들의 작품에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삶과 사고방식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렇기에 미술은 ‘문화적 표현’이다. 문화는 한 집단의 삶의 유형과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미술가들의 작품 제작과 미술교육은 같은 흐름 속에 있다. 미술가들이 사실적 재현을 목표로 작품을 제작할 때의 미술교육은 사실주의에 입각하였으며, 낭만주의적 자세로 방향을 바꾸면 미술교육에서도 낭만주의적 경향이 부상하였다.

 

빈 센트 반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De Aardappeleters)」(1885)이다. 그림=위키백과

이처럼 미술가들의 실천과 미술교육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 학생들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시각적인 작품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결코 지루하지 않고, 그들의 가슴에는 여운이 남는다. 그리고 그들은 궁극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 “고흐가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린 이유가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이 방법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에밀』에서 주장한 시각교육과 상통한다. 비록 ‘미술’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루소는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에 시각교육을 숫자와 언어 교육과 함께 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루소에게 이성과 감각(감성)은 분리가 불가능한 ‘감각-이성(sense-reason)’이었다. 루소의 인식론은 이성을 앞서는 ‘감각’이고 그 감각이 깨우는 ‘이성’이다. 18세기 이성의 시대에 루소는 이성을 계발하기 위해 감각을 자극하는 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루소의 생각은 19세기에 페스탈로치로 이어져 공공교육에서 미술교육이 이루어졌다.

 

『에밀』을 썼던 장 자크 루소(1712~1778). 그의 초상화이다. 그림=위키백과

이후 20세기에 극성하였던 모더니즘의 이분법은 이성과 감각을 분리하여 주지학문과 정서가 관여되는 학문으로 나누었다. 루소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분법이다. 미술은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정서적인 학문으로 평가절하되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지식으로서 미술을 가르치는 교육운동이 있었다. 미술에서 창작 행위가 무시되고 아예 학문 영역이 되어 그 본질이 바뀌기도 하였다. 그와 같이 파편화된 미술교육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면서 21세기로 접어들었다.

‘감각이 깨우는 지성’은 바로 루소와 19세기의 칸트, 그리고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인식론이다. 이 저술은 루소의 교육 이론이 기초가 된 근대 미술교육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루소와 비슷하면서도 차이나는 들뢰즈 철학을 이론적 근거로 하여 21세기 미술교육을 개념화하면서 여정을 마무리 짓는다. 미술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창작 활동에 있다. 그런데 미술교육은 창작 활동을 통해 깨달음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것이 루소에게는 감각을 통해 이성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성은 진리를 깨닫기 위한 능력이다.

하지만 니체 이후 현대 철학에서는 ‘의미’가 진리를 대신하고 있다. 깨달음은 의미 만들기의 지적 행위이다. 모두가 다르게 의미 만들기에 임한다. 미술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 나름의 의미를 만들게 하여 내면을 성숙시키는 데 있다. 의미 만들기는 ‘차이’를 인식하면서 가능해진다. 그러한 차이를 통한 의미는 삶을 긍정하게 한다. 따라서 미술 교육과정의 핵심은 내가 만든 작품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작품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감각이 깨우는 지성을 통해 가능하다. 그리고 그 방법은 ‘미술로 이해하는 미술교육’이어야 한다.

 

 

 

박정애
공주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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