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2:30 (금)
문화비평_자서전이냐 연극이냐?
문화비평_자서전이냐 연극이냐?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6.06.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적 활동의 특색은, 그것이 임의로 '반복'될 수 있도록 과도하게 '진지'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젝도 몇 차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흘린다,) '반복-진지'는 물론 어색한 쌍이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에서는 진지한 반복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인생의 근원적 조건인 性과 죽음의 경우에도 진지한 반복은 흔하다. 말할 것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섹스하고, 또 진지하게 죽음을 죽는다.

그러나 '임의로' 반복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금새 논의의 지형은 바뀐다. 죽음은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사적 섹스의 경우에도 포르노 촬영과 같은 임의의 반복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특유의 진지함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물론, 포르노는 그 실재의 양가성 탓에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가령, 사랑의 진정성이라는 환상의 꼭지점은 이 진지함의 원근법적 소실점을 가리킨다.

'문화란 놀이 속에서 시작되는 것'(호이징하)이라는 호모 루덴스의 테제는 결국 문화적 반복과 진지함 사이의 거리를 포착한 것이다. 놀이가 생존의 필요나 당면한 물질적 이해를 벗어난 무관심성(disinterestedness)을 보인다거나 '단지 재미삼아 하는 척하는 것'이라는 그의 설명 역시, 너무 진지하지 않으면서도 임의로 반복할 수 있는 문화적 활동의 성격과 곧장 이어진다. 그렇기에, 割腹의 문화, 전투의 문화, 재난의 문화 따위의 표현은 '외설'(보드리야르)스럽고 어색하다. 할복이나 전투나 쓰나미(津波)는 임의로 반복할 수도 없거니와, 비록 반복할 수 있더라도 그것은 참가자의 생명을 내걸어야 하는 너무나 진지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반 걸음 물러나, 할복 시에 칼을 잡는 자세, 전투시에 포로를 취조하는 테크닉, 태풍이 들이닥쳤을 때 피신하는 방법에조차도 '문화'라는 명칭을 붙이기가 결코 편하지 않다. 아무래도 문화는 생존 이후의 풍경이라는 선입견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일생 평균 3천회 이상을 반복한다는 섹스의 경우에도 '섹스의 문화'라는 표현을 가리고 '성문화'라거나 '사랑의 문화'라고 두루뭉술하게 언급하곤 한다.

아무나의 인생이든 그 자체(그 자체?)를 통으로 보면, 그것은 진지한 경험일 뿐 아니라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 유일회적 사건이다. 따라서 도식적으로는, 인생은 문화와 구분되어야 하며 문화 이상이거나 혹은 그 이하의 무엇인 것처럼 보인다. 자서전을 쓰려는 허영, 혹은 자서전적 태도는 바로 이같은 진지함과 유일무이성의 신화에 근거한다. 이를테면, 내 삶은 문화가 아니라 모종의 實在이며, '독창적인 사랑은 없다'(R. 바르트)는 주장과 달리 내 삶에는 나만이 할 말이 있고, 더불어 그것은 내게 너무도 진지한 유일회적 체험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서전의 허영과 이를 뒷받침하는 생철학적 형이상학은 완벽한 오인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오인은 삶을 내다보지 않고 되돌아 볼 때에 가능한 서사의 욕망이다. 내 삶의 진실(이 있다는 믿음)은 그 삶이 직접 체험되지 않는 여백과 회고의 순간에 나타나는 착시인 것이다.

그러나 삶을 되돌아 보지 않고 내다볼 때 사태는 일변한다. 일단 자서전적 회귀를 통해 삶의 진정성을 수확하려는 본질주의적 욕심은 현저하게 줄어든다; 대신 연극적 실천의 반복적 재구성이라는 기획을 통해, 우리의 남은 삶은 겸허하게 미래화 한다.

이같은 태도는, 삶은 그 자체로 연극적인 것이라는 통속적 메타포에 오히려 충실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더욱 생산적이다. 개성적이려는 몸부림이 그 자체로 오히려 체계에 복무하는 현실 속에서 연극이라는 말은 삶에 대한 모욕이거나 폄하일 수 없다. 도리어, 우리 삶의 하루하루가 과연 연극적 실천보다 어떻게 창의적인가를 되물어야 한다.

회고의 시선 속에 잡히는 삶은 마치 '내부에서 그 내부의 완결성을 증명하려는 체계적 불가능'(괴델)과 유사하다. 그러나 회고와 낭만적 의도 속의 자서전적 태도를 포기하고 연극적 반복의 실천 속으로 나아가려는 태도는 겸허한 용기이며 욕심없는 의욕이다. '삶은 연극'이라는 명제는 우스개도 냉소도 한갓 메타포도 아니다: 과거에 대한 애착이 아닌 한 곧 그것은 미래를 향한 연극이며, 우리의 삶은 오직 연극적 실천의 재구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조형해나갈 뿐이기 때문이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