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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일 하는 작가, 일기 배달하는 시인”…1인 미디어 시대
“청소 일 하는 작가, 일기 배달하는 시인”…1인 미디어 시대
  • 김재호
  • 승인 2023.01.0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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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일상생활자의 작가되는 법』 구선아 지음 | 천년의상상 | 316쪽

“매년 출판계는 불황이라 말하고 사양산업이라고 하지만, 출판계는 망해하고 있지 않다, 변해가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으로 계속 공개하는 글을 쓰면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 바로 작가다. 작가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의 출판·인쇄가 아니라 브런치 같은 플랫폼부터 뉴스레터 서비스까지 작가가 직접 선택하는 시대다. 작가의 이름이 이제 브랜드이다. 구선아 작가는 ‘1인 미디어가 된 작가 10명의 글쓰기’를 소개했다. 바로 『일상생활자의 작가되는 법』이다. 

 

스티븐 킹은 “글쓰기의 목적은 살아남고 이겨내고 일어서는 것이다. 행복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 버티기 위해서 글을 쓴다. 특히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라는 점은 글쓰기가 일종의 의식(衣食)처럼 됐다. 구 작가는 “읽는 사람은 계속 줄어드는 시대에 쓰는 사람은 늘어난다니, 괴상하다”라고 적었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완성된 결과물을 읽는 행위에서 벗어나 ‘과정을 콘텐츠로 즐기는’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독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구 작가는 “바야흐로 취향껏 보고, 듣고, 쓰고, 구독하며 생산하고 소비하는 시대”라고 전망했다. 구 작가가 만난 10명의 작가 중 눈에 띈 3명을 소개한다. 

 

 

구독자·조회수가 더욱 소중한 작가

먼저 1장 개인출판콘텐츠(브런치·독립출판)에 등장하는 에세이스트 고수리 씨다. <KBS> 「인간극장」 작가로 일한 바 있다. 고수리 작가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수오서재, 2021)를 출간했다. 고 작가는 ‘프리워커’다. 에세이뿐만 아니라 각종 콘텐츠에 대한 구성부터 아동문학까지 다양한 글을 쓴다. 그는 브런치북 프로젝트 1회 금상 수상자이다. 

고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고수리 씨는 “내가 내 이야기를 썼다는 것, 그 이야기가 책이라는 물성으로 만져진다는 게 신기했어요”라며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싶다면 사적인 글쓰기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강조했다. “에세이는 사람 이야기잖아요. 다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 걸까 궁금해하고요.”

1천 부, 2천 부의 종이책 판매보다 고수리 작가에게는 구독자와 조회수가 중요하다. 2022년 8월 기준, 고 작가의 브런치 구독자는 1.9만 명이다. 발행글은 370개, 누적 조회수는 2백7십2만775뷰다. 2021년 9월 한 달 동안, 8만2천781명이 고 작가의 글을 읽었다. 고 작가는 김달님 작가나 신유진 작가와 서로 마음을 기댄다. 
 
“내 삶을 돌아보고 마주해야만 무언가 쓸 수 있죠.” 고수리 씨는 인터뷰에서 에세이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에세이는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문학적 특성 때문에” 그냥 편히 쓰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독자들에게 자신의 진성성을 얼마큼 보여줘야 하는지 스스로 정해야 하기에 가장 어려운 글이기도 하다. 고 작가는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연필 자국이 낫다’는 말처럼 에세이 작가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다양한 책들을 읽으면서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존 버거 지음 |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 『긴 호흡』(메리 올리버 지음 | 민승남 옮김 | 마음산책 | 2019) 등을 추천했다. 

 

 

청소 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작가

3장은 전문직업과 글쓰기를 다룬다. 주인공 중 한 명은 작가·일러스트레이터 김예지 씨다. 김예지 작가(활동명 ‘코피루왁’)는 스스로를 “청소 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생의 끝을 고민하다 엄마를 생각하며, 다시 생을 붙들었다. 청소와 그림 그리는 일은 일상을 버티는 작업이다. 

김예지 작가의 첫 책은 『저 청소 일을 하는데요?』(21세기북스, 2019)이다. 구선아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김예지 씨는 “청소 일은 돈을 벌게 하고 먹고살게 해 주는 데 부족함은 없지만 제 인정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해요”라고 토로했다. “대학도 나왔는데, 왜 청소 일을 해요? 라고 물을 때 저 스스로 피해의식이 있었어요. 물론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내 인생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강력하게 알게 돼서요.”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청소 일은 줄이거나 그만두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청소 일을 하면서 창작을 하는 건 내가 하고 싶고 능력과 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하는 일이지만, 작가 일이 잘 된다면 생계 목적만 가진 청소 일은 그만둘 수 있어요. 저를 이만큼 먹고살게 해 준 청소 일이 정말 고맙긴 하지만요.”

죽고 싶었을 때 김예지 작가를 붙들었던 건 엄마였다. 예전에는 서둘로 고통을 빨리 벗어나고 싶었지만, 지금은 천천히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 작가는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못남도 인정하는 사람 아닐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일기 딜리버리’ 일기 배달하는 시인

4장은 뉴스레터와 구독서비스를 다뤘다. 시인 문보영 씨가 인터뷰이 중 한 명이다. 문보영 시인은 직접 독자에게 일기를 배달하거나 읽어주고 상담하는 구독 서비스 ‘일기 딜리버리’(2018년 12월 시작)를 운영 중이다. 일기론에 대한 사적인 기록 『일기시대』(민음사, 2021)을 펴냈다. 문 시인은 2016년 「막판이 된다는 것」이란 시로 스물넷에 등단했다. 인상 깊은 구절은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이라는 부분이다. 

“시는 인과를 깨거나 새로운 인과를 만들고 비틀면서 나아가는데, 소설과 산문은 인과를 잘 조직해야 하잖아요. ... 시를 쓸 때는 똑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그런 점이 좋아요.” 문 시인은 시의 매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스스로 일기 중독자이면서 포르투갈 리스본에 대한 가상일기를 쓴 적도 있다. 

뉴스레터는 문 시인의 플랫폼을 통해 독자로부터 직접 구독 신청을 받았다. 그래서 훨씬 책임감을 느끼고 애정이 있다. 청자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고선아 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이나 능력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문 시인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장난기요. 글을 쓰다 보면 슬퍼지기 마련이어서요. 혼자서도 자기 자신을 잘 웃기는 능력이 있다면 도움이 되더라고요.”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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